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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06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www.brainfactory.org
올리비아 그르빅(Olivia Glebbeek)은 한국에서 태어나 5살 때 네덜란드에 입양되었다. 그의 사회적 위치는 네덜란드 국적과 그곳 방식의 이름, 언어, 교육을 통해서 형성되어왔기 때문에, 한국과 그의 관계는 잃어버린 기억과도 같이 의식의 표면 아래에 잠겨져 있는 추상적이고 확인 불가능한 실체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변할 수 없는 신체적 특징과 마찬가지로 그르빅의 정체성을 주관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어왔다. 'I got you under my skin'이라는 전시 제목은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노래에서 차용한 것으로, 옛 가수의 향수어린 사랑 노래는 잃어버린 기억들에 대한 그르빅 자신의 향수를 투영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러나 그르빅의 작업은 모국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하는 감상적 사랑노래가 아니다. 외부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자신 안의 고유함을 지켜나가고 발견해나가기 위한 치열한 자기탐색 과정의 일부로서, 과거의 기억들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브레인 팩토리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의 첫 개인전이다. 지난 해 국립 창동 스튜디오 거주기간 동안 부분적으로 보여졌던 작업 개념이 브레인 팩토리 공간 안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결집된다. 자신이 태어난 서울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탐색의 여정으로서 이루어진 작업들이 전시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주는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올리비아 그르빅의 작업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삶 속에 침입한 존재들이 증식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조건들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다루어왔다. 이러한 관심은 그르빅의 사적 경험에서 비롯되었지만 보편적인 인간 삶의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외부 세계와 내면적 세계의 대립 혹은 공존, 낯선 외부 환경 속에서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투쟁과 성장의 과정은 그르빅의 작업이 다루고 있는 주요한 테마이다. 작품 속에 야생적 정글 혹은 생태적 정원과도 같은 형태, 생물들이 증식하는 듯한 이미지가 반복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그의 작품 속에 종종 등장하는 이상스런 열매들은 인간 내부와 외부의 힘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들, 혹은 욕망의 덩어리를 상기시킨다. 토끼를 쫓는 사냥개의 모습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삶의 투쟁을 드러내는데, 그르빅 자신은 이 투쟁의 장에서 사냥개가 되기도 하고 토끼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그의 작품 속에서 그림자 연극과도 같은 검은 실루엣으로 종종 등장하고 있다. 이런 요소에 대해 그르빅은 스스로 "실루엣은 편편하기 때문에 그 위에 상상의 이야기와 성격을 부여해서 자기 마음대로 깊이를 줄 수 있다"고 언급한다. 작가 자신의 주관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하였지만, 관람자들 각자가 이미지를 보고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식물, 토끼, 개, 마스크를 쓴 얼굴과 같이 몇개의 반복되는 캐릭터들을 통해서 관람자들은 이야기를 만들고 자신의 심리를 투사시켜 일종의 심리적 역할극(role-playing)을 구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르빅이 구현해온 불가사이한 세계는 신비로운 동화 이야기나 화려한 서커스 같으면서도 위험스럽고 야생적이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이 기묘한 차원을 형성한다. 이러한 배경에 전반적으로 깔린 정서는 심리적 위태로움이다. 그 안에는 내적 공간과 외부 공간 사이의 긴장과 낯선 세계에서 경험하는 두려움과 경이의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두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 브레인 팩토리의 공간구조는 그르빅의 작업이 다루고 있는 두 영역을 표상하는 장소로 활용된다. 작은 방과 같은 안쪽의 공간에 쳐지는 텐트는 그가 추구하는 안식처, 자신다울 수 있는 내적 공간에 대한 표상이다. 텐트 바깥쪽의 공간은 외부 공간, 사회적 세계를 암시한다. 이 외부의 공간에는 토끼를 잡기 위해 달리고 있는 개들의 공격적인 이미지가 검은 실루엣의 벽화로 그려지고, 텐트의 일부로는 쇼핑하는 고등학생, 젊은 군인, 달리는 오토바이와 같이 그르빅이 서울에서 찍은 이미지의 실루엣이 천위에 덧붙여 길게 드리워진다. 텐트 안에는 천들, 쿠션, 담요와 같은 부드러운 촉각적 재료가 설치되어 외부 공간의 불안스럽고 빠르고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에 대조적인 연약하고 정태적이며 퇴행적인 공간으로서 구현된다. 이 작고 촉각적인 내부의 공간은 그르빅 자신의 욕망이 갈등없이 구현되는 안식처이고, 바깥 세계의 투쟁과 무관하게 유아기로의 퇴행을 허락하는 에로틱하고 신체적인 공간이다. 텐트 바깥과 그 안의 두 세계는 서로 충돌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와도 같이 상호보완적으로 존재한다. 그르빅의 작업에서 내적 공간과 외적 공간의 상호작용은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내적인 심리는 언제나 외부 공간에 투사되어 자신이 바라보고자 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조직화하며, 외부 공간의 사건들은 다시 내적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 올리비아 그르빅은 텐트 안과 바깥이라는 두개의 장소를 통해서 외부 공간에의 적응과 투쟁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인 안식처(home)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 두 가지 영역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그자체로 삶에 대한 메타포이다.
최근 그르빅의 작품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인간 안에 존재하는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개인적인 세계가 공적 장소와 어떻게 접촉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6년 네덜란드의 한 정신병동에서 정신장애자들과 했던 프로젝트, 최근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의 워터밀 센터(Watermill Center)에서 이루어진 어린이들과의 워크숍이 그 일환이다. 또 하나의 방향은 작업 개념이 담긴 티셔츠나 담요, 쿠션과 같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제작하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영역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이지만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점에서 동시에 매우 보편적이다. 그르빅의 작업은 개인성이 보편성과 만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을 통한 인간적 소통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안겨준다. 마지막으로 정신병동 환자들과의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던 그르빅의 편지 속에서 눈길을 끈 구절을 인용해본다. "내 작업의 목표는 당신이 당신 내부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고무시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이 내적 세계는 희망, 열정, 갈등과 창조성의 세계이다. 당신이 그 세계와 접촉한다면 당신 주변에 온통 있는 희망, 열정, 모순과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은주
Vol.20070914g | 올리비아 그르빅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