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카페 판코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913_목요일_05:00pm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카페 판코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번지 Tel. 02_880_5552 fanco.snu.ac.kr
수양버들 늘어진 잎이/ 가만한 바람을 받아/ 못 속에서 흔들흔들 그림자를 던졌다. ● 간결한 형식으로 선명한 회화적 인상을 남기는 시인이나, 거꾸로 사물의 정서와 분위기를 극명한 시적 공간으로 환기시키는 화가 나무하늘님이나, 한 마당에서 불 피우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강한 문학적 상상력을 지닌 나무하늘님의 그림을 접하면 긴장하곤 해요. 참, 내 아이디가 찔레 인 것 모르시죠? 그림과 시를 한꺼번에 찔러 맛보는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얻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일 테지요. ● 나무하늘님은 표지그림에 수양버들잎을 배경으로 무아지경에 빠진 한 쌍의 벌거벗은 연인을 그려놓았네요. 또한 미풍에 흔들리는 버들잎이 연인의 몸을 어루만져, 감각의 섬세한 광휘를 한껏 내뿜고 있기도 해요. 하지만 나는 정사의 어두운 밀실에서 밀려나와 백자 항아리 같이 담백해진 연인들을 떠올리고 있어요. 나무하늘님이 수줍게 지워놓은 남자의 한 쪽 얼굴과 몸을 살펴보세요. 여자를 꽉 부둥켜안고 있지만, 성적 쾌락의 느낌보다는 적요로움이랄까, 고요랄까, 그런 따스하고 신성한 기운이 더 강하게 번져있지 않나요? 그래요, 그림 '사랑에 대하여'는 재를 만드는 불의 사랑 이야기이기보다는, 삶의 질곡과 상처를 끌어안고 곡진하게 흐르는 물의 사랑, 다시 말하면 치유와 위안이 깃든 천상의 사랑을 꿈꾸는 작품 같아요.
어떤 포옹에 대하여 ● 수양버들을 배경으로 / 한 쌍의 연인이 포옹하고 있다. / 미풍에 흔들리는 버들잎이 / 그들의 몸을 어루만져 / 감각의 섬세한 광휘를 한껏 / 내뿜으면서. // 그래, 그런 적 있었지. / 수줍음이 반쯤 지워놓은 그 때 그 욕망의 / 남은 기척들로 그림 속 남자는 / 여자의 가느다란 허리를 꽉 부둥켜안고 있지만 / 정사의 어두운 밀실에서도 밀려나와 / 이제는 백자항아리처럼 구워진 연인의 몸 / 곡진하게 껴안는 / 저 강한 포옹 속에는 / 정적이랄까, 고요랄까 어떤 치유의 / 신성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 수양버들 넉넉한 품 안으로 / 다시 새들이 찾아오고, 밤이면 가지마다 / 둥글게 불 켜지는 둥지. / 내 그대를 안아 / 물의 사랑으로 저 깊은 포옹 속까지 / 함께 흘러간다면. ■ 백미혜
그림 '수양버들'은 어미 새가 새끼들의 양육을 위해 먹이를 물어 나르는, 우리네 가족이야기가 곁들여진 그림이네요. 90년대 초쯤 되나요? 부산에서 나무하늘님의 그림을 처음 보았었지요. 그 때도「나무」를 주제로 작업을 했는데 잎도, 가지도, 뿌리도 없이 몸통만 뭉퉁하니 남아서 부유하는 통나무 그림이었습니다. 정호라는 이름 대신에 나무하늘이라는 아이디 만이 밝게 빛나던 무채색의 어둡고 두꺼운 화면이었고요. 그 후 몇 번인기 썩은 생선 토막이 그려진 그림을 보기도 하고, 머리와 다리가 끊긴 사람의 몸체가 통나무처럼 떠있는 걸 보기도 했었어요. 그랬는데 훌쩍 15년이 지나가 버렸군요. 하지만 지금도 나무하늘님 그림 속에는 여전히 나무가 들어있군요. 그런데, 그냥 좋아서 그렸다는 최근의 나무 그림 '수양버들'은 가지와 잎사귀가 풍성할 뿐만 아니라, 새들의 둥지까지 품고 있군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땅 속 깊은 곳까지 단단한 뿌리가 뻗어 있음이 느껴집니다. 그래요,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작은 것들도, 우연이 아닌 것을 많은 걸 경험한 후에야 알게 되지요. 세월 따라 변해온 나무의 모습이야말로 일상의 끈에 매인 생활인으로, 보다 튼실한 화가로, 거듭나려고 애썼을 나무하늘님의 자화상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하늘과 땅을 하나로 이어주는 본질적 매개체로서의 나무를, 곤두박질을 거듭하면서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감상객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랍니다.
그림 '나무 아래에서'는 내가 방에 걸어놓고 싶은 작품이예요. 최근 건강이 나빠 단전호흡과 명상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현대판 민화를 보는 듯 편안해서 자꾸 미소가 번져 되돌아 나오곤 하는 것이었어요. ● 두 남녀가 단전호흡과 명상에 몰입해 있는 동안, 버드나무 밑에서 안장을 얹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당나귀 한 마리도 너무 튼실해요 ! 그런데 혹시 저 새까만 당나귀 놈, 호흡과 명상으로 가다듬은 마음을 흔들며, 한 순간 도시의 소음 속에 우리를 내팽개치고, 매연을 뿜고 달아나는 자동차 같은 존재로 돌변해버리지는 않겠지요?
정방형 캔버스에 그린 그림 '깨달음'은 - 각별히 그윽하게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하지만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의 저 사내는 깨침을 얻은 후 더 외롭고, 높고, 쓸쓸해 질 텐데, 그걸 알고 있을까요. 그가 졸음을 내쫓으며 깨달음을 얻는 동안, 까치는 까치끼리, 돌멩이는 돌멩이끼리 대칭 구도로 서로 맞붙어서, 보리수나무도 모르게 얼마나 싸움박질을 해댔는지, 부처님도 감당이 안 되셨을 거예요. 깨달음은 얻은 사람은 더욱 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오히려 미운 까치와 발 뿌리에 차인 돌멩이가 보리수나무의 첫사랑인지도 모르죠.
그림 '숲의 야상곡'은 수런거리는 슬픔의 음표들로 가득 차 있군요. 사랑이 멀어지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 먹구름 몰려가는 소리,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 소리, 꽃 지는 소리, 입술 깨무는 소리 같은 것들로 말이에요. 사실은 우리 가슴속에도 슬픔이 너무 깊어, 음표로도 기록되지 않는 소리들이 얼마나 많이 얼어붙어 있을 런지요. 이 상처의 계절이 지나고 봄이 오면 나도 한 번 소리들을 찾아보아야겠어요. 어쩌면 그렇게 가만히 귀 기울이면, 슬픔의 음표 대신에 개울물 흐르는 맑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지도 모르니까요. ● 댓 글을 마무리짓기 위해 잠시 나무하늘님과의 대화가 필요해요. 그래서 연락을 해보지만 잠 드셨는지 통화가 안 되네요. 가만 생각해보니 밤도 많이 깊었고, 더 이상 무겁게 댓 글을 달 필요도 없을 듯해서, 백석의 시 한 줄 남기고 글을 닫습니다. ● 별 많은 밤 / 하늬바람 불어서 /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짖는다.// ■
Vol.20070913c | 김정호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