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7_0912_수요일_06:00pm
갤러리 자인제노 서울 종로구 삼청동 109-1번지 Tel. 02_735_5751
그리드는 정사각형의 두변의 길이가 같다는 수리적인 기억에서부터 출발하여 무한의 숫자로 반복되는 규칙이었다. 본인에게는 이상적인 사고를 나타냄과 동시에 정밀한 즐거움이 있는 규칙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인은 쾌이며 안정감을 의미하는 그리드를 화면 전체에 적용하게 되었다. 혼돈의 상태가 완전히 통제된, 최소한의 공간으로 압축되는 과정을 반복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본래 화면이 가지고 있는 열려 있는 가능성은 상실되었지만 감정적인 것은 걸러졌으며 모든 성분들이 엄격하게 조제되어서 실수가 없는 상태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새로 주입된 지시물과의 관계에서 의미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의미로의 작업이라고 믿었던 과정 중에 불안의 제거를 위해 선택한 규칙이 오히려 본인을 흡수하여 규칙 안에서 맴돌게 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드의 원칙대로 반복되고 짜여 져서 주체적인 위치가 모호해짐과 동시에 사라져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와 다르게 그리드는 전체 화면에 합리적이고 환각적인 모습으로, 공허만을 낳는 공간으로, 상징적 교환의 장소로서 스스로 살아남게 되었다.
본인은 이러한 허무함을 완벽함으로 대체하고자 그리드를 견고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드위에 더 집중되고 규제되고 채워진 것으로 뒤덮이도록 하였다. 결국 화면 전체는 그리드에 의해 그어지고 교차된 부분에 차별 없이 동등한 +기호들에 의해 한 번 더 일정하게 눌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 화면 속에 +는 자체의 무게감을 더해가면서 펼쳐진다.
본인이 이러한 시도를 하는 이유는 의미의 공간을 나타냄이 아니라 허무의 공간 속에서 보이는 표피적인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반복에 의해, 재 시도에 의해 남는 것은 축적이고 오로지 과도한 축적을 통해서만 의미적인 사실감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면 위에는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고 축적에 의한 의미의 다발만을 묶어 놓은 듯한 인상만이 남게 된다. 차갑고 서늘한 쾌감, 미학과는 상관없는 기능적인 쾌감, 대수학적인 쾌감, 기계적인 쾌감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화면 가득히 남아 있는 것은 프로그램의 세세함에 대한 정직한 준수이다. 현기증 나고 속은 듯한 정확성의 전율, 거리가 떨어지면서 동시에 확대되는 전율, 축적이 뒤틀린 전율, 과도한 투명성의 전율뿐인 것이다. ■ 갤러리 자인제노
Vol.20070912i | 김현성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