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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06_목요일_06:00pm
갤러리 눈 / 2007_0906 ▶ 2007_0920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7번지 미림미술재료백화점 2층 Tel. 02_747_7277 www.110011.co.kr
안성시민회관 / 2007_0915 ▶ 2007_0920
관념과 이상의 산수경 ● 목판의 묘미는 정갈하고 담백한 표현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화려한 치장과 세련된 분위기의 도시적 미감이 아니라 풋풋하고 소박하지만 강단이 있어 야무진 시골 처녀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이는 목판이라는 표현 방식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조건이 그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이 조형적 표현으로 오롯이 수용됨에 따라 발현되는 독특한 심미감이라 할 것이다. 목판을 칼로 새기고 끌로 돋우는 과정은 일종의 노동이다. 그것도 물리적인 힘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가장 원초적 형태의 노동이다. 단단한 목판과 날카로운 칼날이 조응하는 과정은 일종의 충돌이자 대립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서로는 상대를 용인하며 절충하고 타협하여 조화를 이뤄 내게 된다. 문명의 첨단을 구가하며 기계적인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 세태에서 굳이 이러한 원초적 표현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세태에 뒤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추구하는 이들은 오히려 그 풋풋한 원시적 표현 방식과, 이를 통해 발현되는 건강한 생명력에 더욱 매료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목판작가로서 유연복이 판을 마주하며 그 속에 삶을 새겨 온지도 벌써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는 젊은 시절 온몸으로 세상을 호흡하며 거침없이 발언하고 행동하며 청춘을 내던졌었다. 당시 그에게 있어 목판은 단순한 표현의 수단이나 예술의 형식이 아니라 실존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기록의 방편이자 증거였을 것이다. 적극적인 사회 참여와 거침없는 표현으로 일관하던 그의 작업은 이어 삶의 소소한 내용들에서 채집한 내용들을 통하여 그만의 독특한 철리와 사색을 드러내는 작업으로 본연의 열정을 다스리며 변화하였다. 둥실 하늘로 떠올라 가볍게 날아오르는 민들레 홀씨의 풋풋한 서정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든 민초들의 삶과 애환에 대한 그의 노래였으며, 간결하고 담백한 표현을 통하여 언뜻 언뜻 드러내는 촌철의 해학과 비유는 그간의 삶을 통하여 그가 길어 올린 사유와 사색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신작들은 금강산과 독도라는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두 곳의 빼어난 경관이나 상징성이야 새삼 부연할 필요가 없는 곳들이다. 그는 금강과 독도의 절경들을 몇 가지 특징적인 내용과 요소들로 취합하여 이를 연작으로 수용하고 있다. 마치 공중을 부유하는 듯 한 부감의 시점을 채택하여 대상이 되는 사물을 관찰하고 이를 함축적이고 간결하게 개괄한 그의 화면은 마치 전통적인 동양회화의 시점과 표현 방식을 차용한 듯 하다. 사실 평면적인 전개를 바탕으로 사물과 사물간의 관계에 주목하되 적극적인 취사선택의 과정을 통하여 대상을 개괄하여 표현하는 방식은 동양회화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금강산이나 독도는 모두 거칠고 웅장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를 개괄하여 표현하는 것은 바로 전통회화의 준(?)과 다를 바 없다. 물론 동서양을 구분하고 장르를 나누는 것이 의미 없는 것이지만, 분명 그의 화면에는 충분히 감지될만한 전통적인 동양회화의 요소들이 다분히 내재되어 있다 할 것이다. 그의 화면에서 전통 산수화의 기운을 감지하고 그것이 지니는 독특한 운율을 느끼며, 화면 속의 공간을 소요하며 즐기고 노닌다는 화론의 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말하는 것은 별반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대상에 대한 개괄과 취사선택은 대상에 대한 객관적 재현이 아닌 이상화를 의미한다. 대상이 되는 사물의 객관적 이미지를 취합하여 이를 작가만의 이상적 화면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은 바로 작가의 심중에 자리하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풍광의 구현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하여 과감히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시점을 포기하고 평면적인 서술로 이루어진 산수화식의 공간 운용을 도입한 것이라 여겨진다. 빼어난 자연을 표현함에 있어 그 자체는 분명 일정한 서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만, 이를 주관적인 해석과 가공의 과정을 거쳐 재구성할 때는 종종 문학적 상상력이 더해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때로는 자연에 대한 예찬일 수도 있으며, 또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물을 빗댄 고도의 은유나 상징의 세계일 수도 있다. 작가는 이에 대하여 주관과 객관, 사실과 이상의 절묘한 경계에서 굳이 선택을 유보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작업이 서구적인 합리적 이성과 동양적인 이상의 관념을 두루 관계하고 있듯이 절충과 조화의 접점에서 그저 빙긋이 미소 지으며 보는 이의 판단과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는 이번 작업을 소멸법을 이용하여 작품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하나의 목판을 작업 과정에 따라 점차 변화를 주어가며 진행하다 종내에는 판본 자체가 없어지게 되는 기법이다. 이러한 기법의 장점은 화면에서의 다양한 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전의 담백한 화면과 간결한 표현과는 상대적으로 대비되는 색채의 사용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축적되어진 결과물인 셈이다. 면과 면이 반복적으로 조우하고 색과 색이 중첩되는 과정을 통하여 화면은 깊고 그윽한 변화를 내재하지만 그 화면은 번잡스럽지 않다. 이는 판각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 손끝 재주가 다스려지고, 판본을 반복하여 찍는 과정을 통하여 지나치게 화려하고 생경한 색채들이 걸려 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으로 그의 금강은 상투적인 화려함보다는 침착하고 진중한 자태를 하고 있으며, 독도는 수려하지만 경망스럽지 않은 것이다.
거침없이 시대를 내 달려온 작가 유연복의 삶은 어쩌면 판을 세기고 면을 돋우는 과정을 통하여 순치되고 도야되어 그만의 독특한 관념과 관조를 지니게 하였다고 여겨진다. 그것이 치열한 사회참여의 현장에서이건, 혹은 소소한 일상의 발견에서 이건, 또는 이번 경우와 같이 빼어난 경관과 일정한 상징성을 지닌 자연 경관을 대상으로 한 것이든 모두 일관되게 감지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소슬하게 비어있는 듯 한 허정한 적막감과 굳이 꾸미고 다듬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방치하듯 용인하며 그 결과를 주시하는 제삼자적 시각이다. 비록 자신의 작업과 그 사유를 강요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지만 그는 언제나 보는 이들의 양태와 표정을 관찰하며 은근하지만 부단하게 자신의 내면을 지향하는 그의 의식은 어쩌면 둔탁하고 투박하지만 소박하고 건강한 목판의 세계와 잘 부합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가 이번에는 금강과 독도의 기행을 우리들 앞에 내어 놓고 예의 천진하지만 복합적인 웃음을 지으며 보는 이의 표정을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기왕에 가는 길 주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장산곳을 날던 매이건, 혹은 창공에 흩어지던 민들레 홀씨이건 그의 길은 언제나 강요하거나 억지를 부리지 않았었기에 차분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 속에 빠져 들어 볼 일이다. 그것은 육안으로 인식되는 객관의 세계가 아니라 관념과 이상으로 가공되어진 사색과 사변의 길임을 염두에 두면서.... ■ 김상철
Vol.20070912e | 류연복展 / YOOYEUNBOK / 柳然福 / printma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