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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12_수요일_05:00pm
2007년 모로갤러리 기획공모 선정전
모로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16번지 남도빌딩 1층 Tel. 02_739_1666 www.morogallery.com
그린 부분과 그리지 않은 부분, 만든 것과 만들어 지지 않은 것. 여백은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열리는 사건의 공간을 의미한다. 나의 예술관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무한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이며 그 탐구이다. 무한이란 자기로부터 출발해서 자기 이외의 것과 관련을 맺을 때 나타날 것이다. 제작은 하나의 초월이며 비약이다. 그러하므로 작품은 자기와 타자가 상호 매개를 하는 비약의 장이어야 한다. 작품이 외계와 내면의 자극적인 만남의 장이었으면 한다. 나의 그림은 최소한의 터치나 스트로크의 호응관계를 촉구하며 주위의 무 규정한 영역에 작용하여 무한감을 이끌어 내려는 장이된다. 작품이 무한성을 띠게 되는 것은 여백으로서의 공간의 힘에 의한다. 이렇게 하여 현실과 관념을 호흡하면서 동시에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마티스의 위대한 점은 자연스러움이나 사물의 리얼리티, 깊이 등 온갖 삼차원 공간성을 무시하고 화면에서 회화라는 의미의 대발을 추방하는데 전 생애를 바쳤다는 것이다. 이제부터의 회화는 외계와의 관련과 대응에 있어 스스로의 타자성과 미지성을 환기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리하여 의식과 신체를 매개로하여 이쪽과 저쪽에 중계항을 두고 맺어주는 건전한 창조력의 날개를 뻗어 나가야 한다. 표현을 재현적인 것에 한정하는 한, 이제 부터의 인간에게 다시 그러한 것이 득망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화가가 마무리나 완성을 지향하지 않는 것은 그 행위가 지적 체계와는 다른 위상을 지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린다는 행위를 고상하게 말해봤자 그것은 자기로부터 떨어져 세계를 만나는 트레이닝, 즉 산다는 것의 영위 정도가 될 것이다. 회화는 현실 그 자체도 관념 그 자체도 될 수 없다. 어차피 그것은 하나의 설정 공간인 것이다. 현대 회화의 성립은 무엇을 그리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회화일수 있는가를 묻는데 있다. 회화의 설정성(매개성)에 주목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캔버스에 하나의 점을 그린다. 터치와 논터치의 긴장과 상호 침투의 간섭 작용이 환기시키는 여백현상이야말로 회화를 열린 것으로 만든다. 회화의 설정성은 현실적 이로든 관념적 이로든 비약이 가능하다는 것을 약속해 줄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 송인
Vol.20070912c | 송인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