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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10_월요일_07:00pm
갤러리 하늘을 나는 코끼리 기획공모 선정전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하늘을 나는 코끼리 갤러리 서울 송파구 삼전동 49-4번지 기업은행 3층 Tel. 02_414_5476 blog.naver.com/iss003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홍이랑의 작품은 세속의 욕망을 그대로 담고 있다. 따라서 홍이랑의 투명 풍선에 담긴 것들은 작가 자신이 가진 욕망의 발현임에 분명하다. 자동차, 정원이 딸린 집, 명품을 의미하는 구두, 핸드백 등 현대를 살아가는 이라면 한번쯤 동경해마지 않는 아이콘일뿐만아니라 아예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것들이다. 홍이랑은 이것들을 단색으로 채색, 그것에 대한 자신의 욕망이 단순함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는 그 욕망의 이중성, 즉 '꿈'과 '욕심'이라는 양면적 성질을 극대화한다. 극대화된 욕망은 부푼 풍선이 한계 용량을 버티지 못하고 터지는 물리 현상을 야기하듯 언젠가 깨질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하는데, 욕망의 깨짐은 그것을 이룩했을 때와 그것이 실현 불가능함을 인식할 때라는 두 경우의 결과이다. 홍이랑 작품은 위 두 가지를 모두 인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꿈은 욕심이고 욕심은 꿈이다」라는 순환논리의 타이틀이 걸린 홍이랑의 작품은 말랑말랑하고 투명한 풍선 안에 작가 자신의 욕망을 채워넣고 있는 형식이다. 처음 그녀의 이러한 작업은 드로잉 작업으로 구현하나 이번 전시에서는 구체적인 형상을 직접 채워넣고 그것을 띄워놓는 형식을 취했다. 그 아래에는 단단한 투명 아크릴 케이스에 충족된 욕망이 구두굽이라는 파편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듯 시간이 흐르면 욕망도 구체화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드러나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욕망도 구체화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의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구체화하여 인식하는 욕망이라는 삶의 신화를 깨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음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욕심과 꿈의 모호한 관계. 무엇을 욕심이라 부르고, 무엇을 꿈이라 부르는가. 이번 전시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욕심과 꿈의 관계이다. 꿈보다는 욕심에 많은 초점을 가지고 있다." (작가노트에서) 우리의 자본주의는 그것을 우리식으로 맞게 계량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렸고 글로벌리제이션화된 세계 질서의 재편과 맞물려 그것의 능동적인 운용의 묘를 잃어버렸다. 감정없는 자본의 침투는 우리의 삶을 극단적인 현실주의로 몰아버렸고 돈을 앞세우는 일이 더 이상 천박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혜택을 한껏 입은 젊은 작가가 그 천박함을 당당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홍이랑은 그 천박함을 깨기 위해 자신의 욕망을 성찰한다. 욕망을 꿈과 욕심으로 나누면서 그 실체를 파악하고 그것을 신화화한 내외부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그녀는 솔직해지기로 결정한 것이다. 즉, 앞에서 살펴본 홍이랑이 제시하는 고도화된 물질주의 내 삶의 방식, 현재의 자본주의를 살피는 성찰의 태도 등은 고전적인 의미에서 '고결함'의 수식을 받는 정신적인 것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오히려 직접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자본주의의 아이콘들로 환원하여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이 단순히 보여주기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번에 홍이랑이 제시하는 그녀의 욕망이 얼마나 감미로운 것인지를 입구에 마련된 사탕을 음미하며 느껴보기 바란다. 달콤함은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겠고, 아니면 그 자체가 현실이겠거니 만끽할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다보면 홍이랑이라는 신출내기 작가가 자신이 신화화하는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환상을 깨는 첫 걸음을 대딛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황석권
Vol.20070910g | 홍이랑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