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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0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온 서울 종로구 사간동 69번지 영정빌딩 B1 Tel. 02_733_8295 www.galleryon.co.kr
무서울 때는... ● 내 자신이 무서움을 가장 많이 느낄 때는 어떤 장소를 막론하고 홀로 있을 때다. 따스하고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도 나 혼자가 되는 순간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하는 공간이 되어 버린다. ● 어린 시절 아무도 없던 텅 빈 성당의 스산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무서움의 전율로 다가왔던 감정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일까? 내 어린 기억 속 성당이라는 공간에 대한 무서움의 이미지를 성인이 된 지금 사진이라는 사각의 이미지 속에 구체화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 핫셀 블라드라는 정사각형 프레임의 중형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성당의 웅장함 보다는 붉은 카페트, 누군가 앉고 지나간 흔적의 자리, 흐트러진 방석 이런 것이었다. ● 나에게 무서움과 두려움의 대상은 공간의 거대함이나 웅장함 보다는 하나 하나의 오브제였던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 카메라의 시선은 자꾸만 사진적 소재가 되어버린 일부분을 보게 되었다. 이후 납골당이라는 좀더 직접적인 공간을 찾게 되었고 성당과 납골당의 두 공간을 병행하며 작업을 하였다.
이번 작업은 우리가 느끼는 죽음 보다는 현실과 죽음의 경계선상에 놓여 있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오직 심리적으로만 느낄 수 있는 두 공간의 모호한 감정을 카메라라는 기계를 이용하여 표현하고자 했다. ● 특정 장소로써의 공간인 납골당은 주관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성당과는 달리 카메라를 통해서 내 주관적인 의미의 '두렵다`,'무섭다`가 아닌 객관적인 의미의 두려움, 무서움을 이야기한다. ● 납골당이라는 친숙하지 못한 특수한 장소의 의미는 당연히 우리에게는 어둠의 의미, 두려움과 긴장감이 서려있는 암울한 공간으로 인식되어 있다.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서려있는 그러한 공간에서 어둠의 그림자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안에서 나는 그저 바라만 보는 인간이 아닌 체험과 동시에 그것을 공유, 공감하는 죽음에 근접하는 시선으로 대상을 접근 할 수 있었다. ● 성당과 납골당이라는 소재가 가지는 특이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접근 하였으나, 공간과 나의 중간에서 그 관계를 매개하는 카메라의 개입은 성당이나 납골당의 공간에서 발산되는 원초적 공포감을 희석시켜 공간이 가지는 특이성을 무기력하고 일상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 내 자신이 가진 그러한 공간에 대한 선입견이 사진으로 재현되는 매 순간 순간 점점 그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배기우
배기우의 눈-의미의 재현과 재현의 의미 ● 배기우가 포착해온 이미지들은 다분히 사소하고 몹시 주변적이어서 대다수에게는 주목을 끌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이는 일상적 공간의 우연한 모습인 경우가 많다. 타고 가던 버스가 잠시 멈춘 동안이나 사람을 기다리는 짧은 한가함 속에서 잠시 눈길을 끌었다가는, 이내 원래의 목적을 의식하게 되거나 또 다른 무엇에 눈길을 돌릴 때까지만 망막에 남았다가 사라져 버리는… ● 서로 다른 것이면서도 흡사하고 흡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러한 장면들이 특별히 의미 있게 여겨지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무의식 속에 축적됨으로써 기시감 아닌 기시감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 이러한 장면들일 것이다. 이렇게 언젠가 본 듯한, 우리의 기억이나 경험 속에 남아 있는 것을 끄집어낸 듯한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이 배기우의 작업이다.
이번 작업이 이루어진 공간은 오래된 성당과 납골당이다. 그는 이들 공간의 사소하거나 통상적인 모습의 한 구석을 포착해 보여주고 있다. 그는 홀로 남았을 때의 성당을 가장 무서웠던 어린 시절의 공간으로 기억한다. 높은 천정에 빛이 잘 들지 않는 침침한 물리적 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어린 영혼에 지워진 죄와 벌, 그리고 죽음과 연관된 정서적 두려움, 그러한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성당의 기물들과 공간들, 신자들의 엄숙하고 가라앉은 분위기, 그리고 그곳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공기의 중압감… 문득 그곳에 혼자임을 깨닫는 순간, 그 누구라도 뒷골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을 느낌직하지 않을까. ● 하지만 그는 그 두려움의 근원을 붉은 카펫, 누군가 앉고 지나간 흔적이 있는 자리, 흐트러진 방석 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 찾는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제단의 중앙이나 주변에 앉은 신자들의 움직임에 맞추어지는 초점 넘어 늘 그렇게 있어온 공간이나 발 아래의 후미지고 사소한 곳. 습관적으로 시선을 움직이는 동안 초점을 맞출 새도 없이 흘려버리던 그 곳들에 눈길이 멈추는 순간, 갑작스레 튀어나오듯 시야 안으로 달려들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평소에는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던 그 곳들은 이미 잠재의식 속에 남아 존재하고 있었기에 분명 어디서 보았던 기시감으로, 또한 문득 맞닥뜨리는 낯섦으로 시야 안으로 육박해 오는 것이다. ● 납골당이라는 공간 역시 그에게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곳은 죽음과 그를 둘러싼 두려움에 맞닿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직접적인 대상이나 이유와는 별개로 그곳에 늘 존재해 왔던 평범한 구조물이나 공간을 의식하는 순간 느껴지는 무언가 다른 두려움을 똑같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배기우의 카메라는 이렇게 일생 동안 무수히 보고 경험해 왔으면서도 제대로 기억해두지 못했던 사소하고 무의미하게 여겼던 모습들을 굳이 찾아내서 우리 눈앞에 재현한다. 그들 가운데 어떤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의식 깊숙이 꼭꼭 묻어 두었던 괴롭거나 쓰린, 혹은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막연한 그리움,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쾌함이나 따뜻함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 장면들은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수없이 중첩되어온 타자들과의 관계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학습이나 경험을 통해 두려움으로 인지된 대상을 마주하고 있음에서가 아니라 이렇게 뜻밖의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들이 일상에서 잊고 있던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게 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 아닐까. 수 없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축적되어온 공간 속에서 그 관계들에게 미약하게나마 의미를 맺어주던 사소한 기물과 공간에 맞닥뜨리게 됨으로써,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야 스스로의 의미를 확인하고 비로소 안심하는 지극히 유한하고 불완전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
그래서 그의 카메라가 무의식적으로 멈추는 곳은 바로 언젠가 그가 맺은 타자와의 관계의 그물이 감지되는 그곳이다. 그리고 그에 의해 재현된 그곳에서 우리 역시 각자가 맺고 있던 관계의 그물을 떠올리는 것이다. 언젠가 어디서 본 듯한, 그래서 뚜렷하게 집어 올릴 수는 없지만 지금 나의 사고와 판단, 그리고 정체의 줄기를 엮어낸 무수한 가닥 가운데 하나를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장면. ● 그의 사진들은 깔끔하게 정돈된 구도나 포치를 보여주지 않는다. 불안정한, 혹은 구도 같은 것은 의식하지 않은 듯한 장면들이다. 포착하는 순간의 느낌에 충실하기 위해서 라고 하는 이러한 화면은 우리의 눈에 우연히 들어온 모습에 가까운 날것의 느낌을 강화해 준다. 마치 우리가 아무도 없는 성당이나 납골당에 들어서서 무심코 한 공간에 마주친 듯한 모습인 것이다.
이렇게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을 장면을 굳이 우리 눈앞에 들추어내고 그 의미를 환기시키는 일은 카메라이기에 가능한 일에 하나일 것이다. 하나의 조형장르로서 사진만이 가지고 있고 또한 보여줄 수 있는 미덕에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이는 근래에 수많은 사진전을 보게 된 우리의 물음이기도 하고 그 수많은 사진전들이 좇는 물음이기도 하다. 동시에 배기우가 굳이 자신만의 앵글을 찾아 이곳 저곳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이미 충분히 낯익어 장르화한 사진을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육안의 습관적 시야와 렌즈의 과장됨을 버리고 자신의 감수성으로 그 경계의 영역을 만들어내려는 그의 '눈'이 반갑다. ■ 박정구
Vol.20070910f | 배기우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