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기술: Speaking of unspeakable

2007 국제작가포럼 : 기억의 지속   2007_0910 ▶ 2007_0930

김시연_가시_디지털 프린트_40×4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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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10_월요일_04:00pm

큐레이터 좌담회 2007_0910_월요일_04:00pm / 쌈지스페이스

김월식 퍼포먼스_한국인의 입맛을 위한 요리 2007_0910_월요일_06:00pm / 쌈지스페이스

작가와의 대화 손정은 / 2007_0913_목요일_06:00pm / 대안공간루프 김월식 / 2007_0915_토요일_02:00pm / 쌈지스페이스 김시연 / 2007_0918_화요일_06:00pm / 쌈지스페이스 함경아 / 2007_092_금요일_06:00pm / 대안공간루프

기획_서진석_신현진_양아치_미도리 마츠이_준 옙

주최_(사)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대안공간네트워크) 주관_AFI국제작가포럼 조직위원회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안공간 루프 서울 마포구 서교동 335-11번지 Tel. 02_3141_1377 www.galleryloop.com

쌈지스페이스 서울 마포구 창전동 5-129번지 Tel. 02_3142_1695 www.ssamziespace.com

기억의 기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 기억... 귓속말로 혹은 나즈막히 말을 내뱉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 그것은 화자가 역사적인 사건이나 개인의 주변을 바라보고 기억하는 바를 대외적인 위치로 돌리는 행위이다.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들이란 기억을 선별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기억의 기술: Speaking of unspeakable』전은 작가 개개인의 기억을 주목하고 이들의 독자적인 기억의 기술(technique)을 조망한다. 작가들이 작업을 제작하는데 있어 어떻게 기억해 내고 이야기하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언어적) 테크닉을 사용할 것인가 하는 스토리텔링 기술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기억의 기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전은 기억이 예술로 전환되는 과정을 주목한다.

김월식_오빠의 청춘_설치_2007

모호하거나 복잡한 작업들의 뒷이야기 시대와 유행, 그리고 그에 따라 형성되는 담론들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다. 2007년이라는 현재는 분명 지난 100년간의 서구화와 산업화의 영향력 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미술계의 담론 또한 서구예술 이론의 흐름과 대치 혹은 함께하며 발전을 거듭해왔다. 형식상의 흐름을 보자면, 60년대 이후의 색면추상, 70년대의 개념미술, 80년대 후반 이후의 민중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리고 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대안공간들의 지지 하에 개념적인 미술과 한국적 팝이 이어져오고 있다. 현재 한국의 미술시장의 붐이 미술계에 강력한 원동력으로 대두한 것은 한국적인 팝 아트의 강세를 지속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주도적인 작품경향을 굳이 말로하자면 감각적이고 즉시적인 언어로 대변된다 하겠다. 그러나 이의 반향, 현시대의 요구는 빠른 속도로 이해되고 재기 발랄하거나 감각적인 평면작업이 아닌 작업 자체에 침잠하여 관객을 생각하게 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침잠이라 함은 작업들을 깊이 이해하는데 들여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지시하는 것이며 바꾸어 말하자면 모호함이나 복잡성이라는 변별 점을 갖는 작업을 말한다. 그리고 이 전시에 선택된 작업들은 어느 정도의 복잡성과 모호성이라는 요소를 가졌다는 판단 하에 선정되었다. ● 작업이 모호함을 가진다 함은 작가가 속한 사회에서 통용되는 대외적인 언어와 작업에 사용된 언어와의 간극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대외적인 언어, 즉 패러다임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겪은 공유되는 경험의 산물이다. 우리는 동시에 사적인 경험을 가지면서 각자의 경험을 우리자신만의 모양새로 기억하고 생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지평은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공존한다. 공적인 언어에 가까울수록 명료한 즉시성을 담보하고 사적인 언어는 모호성을 야기한다. 그러나 이 전시는 어눌하기 때문에 모호한 작업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이 들 작업들이 가지는 모호함이란 세상과 동떨어진 작가적 낭만주의에 위치하는 것도 아니며 아이디어와 시각적 상징물의 비논리적 병치와 경계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을 바라보고 작가의 언어를 이해, 평가하는 데있어서 공적인 그리고 사적인 영역 그 양극 사이의 밸런스를 잡으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과거 이 밸런스 잡기의 노력은 종종 예술로의 승화라는 로맨틱한 해답에 의존하곤 했다. 이 전시는 이러한 작가에 대한 로망을 강화하거나 예술작업이 완료되는 순간을 다룸으로 해서 예술적 승화라는 추상적인 영역을 다루겠다는 것은 아니다. 예술적 승화의 끝자락에는 작가의 천재성으로의 귀결이 항상 존재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가진 천재성을 찬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물론 이 전시에 포함된 작가가 굳이 천재가 아님을 강조하려 함도 아니다. 이들 작가들은 이전의 다른 전시를 통해서 경력을 인정을 받은 작가들이다. 결과적으로 이 전시에 포함된 작가는 각기 서로 다른 레벨이나마 좋은 작업을 하리라는 잠재성을 가진 작가들이다. 본 전시의 목표는 잠재성을 바탕에 깔고 있는 작가의 기억과 이미 제작이 완료된 작업의 사이에는 무엇이 존재하는가와 작가의 추상적 기억이 아트 오브제라는 구체적 물질로 전환되는 그 과정을 언어화 하고 신비를 깰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고자 함이다.

손정은_할머니_스타 샷_2004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는 것 ● 『기억의 기술: speaking of unspeakable』전에서 기억에 해당하는 부분은 작가가 소재로 선택한 이야기에 해당한다. 소재일 수도 있고 이야깃거리라는 의미에서 서사라 바꾸어 말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너무나도 방대한 이 전제조건은 전시 전체를 어느 하나로 아우르기 힘들게 하고 있다. 부제인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라는 것은 모호한 작가나 복잡한 층위를 가진 작업들을 말하는 것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제작 행위 상에서의 논리를 언어화하려 함의 어려움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작업들의 문법들이 현재 유통되는 담론과 패러다임, 형식과 어긋나는 간극이 있다면 그곳에 작가의 잠재성이 위치하므로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전시는 그 간극을 작가들이 이야기(소재)를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명료성과 예술성을 담보하기 위해 취한 시각적 요소를 그들 나름대로 위치시키는 노력으로 보고 그것들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국내외 여러 큐레이터들이 모였다. 이들은 6인의 작가의 작업을 각각의 다양한 논리구조의 연구한다. 이 전시에서의 큐레이터의 노력은 소개되는 작업들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방법 또는 테크닉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큐레이터의 테크닉은 비평의 영역 안에 있으며 언어와 문자라는 한계는 즉 이렇게 언어화된 작업의 구조는 명명이 되는 순간 언어구조의 한계 안에서만 표현 가능한 가능성 중의 하나만을 활자화하는 동시에 그 나머지 요소를 지우는 것일 뿐이고 이미 작업을 과거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시도는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가 된다.

아나 프르바키_The Wild Goose Step_단채널 비디오_00:01:20_2007

준옙은 예술제작과정이 포함하는 정치적 구조를 살피기 위해 작업제작 행위에 초점을 맞춘 아나 프르바키의「야생거위의 걸음마(그리고 그녀가 말했다)」를 제시하였다. 작가는 본 작업을 제작함에 있어 비디오 작업의 배경음악을 친구에게 먼저 선택하게 하고 비디오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사전계획도 없이 찍도록 하는 등 협업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우연적인 예기치 않은 제안들의 개입과 수렴을 작업의 과정으로 끌어들인다. 제목의 뒤쪽부분인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는 작가가 큐레이터인 준옙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한 글귀이다. 결과적으로 작가는 작업의 제반 요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가 고유의 권리이자 권력을 포기 함으로써 모호함 즉 비평으로부터의 불통을 자초하는 한편 관객에게 더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 ● 신현진은 김월식의 작업「다기조아 10호점」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문화 코드가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현시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주변인적 지식인이라는 화자의 페르소나를 다룬다. 그의 작업은 변두리 후라이드 치킨집 싸장님이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소위 싸구려 저급의 미감을 종합해놓은 기념비이다. 작가는 이러한 오브제들이 상징하는 문화코드를 순수예술 전시공간에 위치시킴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저급과 고급문화의 차이가 서구화의 정도를 의미히는 것은 아닌 지를 자문하도록 한다. 결과적으로 전통의 계승의 문제를 떠올리는 리얼리스트의 입장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심각한 작업에는 유머가 읽혀지는데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싸장님이 고른 인테리어 소품과 한국 맛도 미국 맛도 아닌 닭튀김을 능청스럽게 소개하는 작가와 그 페르소나와 읽도록 관객에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 ● 미도리 마츠이는 타로 이즈미의 작업을 소개하면서 동시대 일본 젊은 비디오 작가들에게서 발견되는 새로운 비디오 편집언어를 소개한다. 그는 이러한 경향을 마이크로 팝이라 명명하고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장면장면들의 편집을 활용한 이들의 서술 테크닉을 후기사업시대 일본의 현실과 일상을 대면하는 작가들의 태도로 풀고 있다. 이즈미는 자신의 사소한 일상 안에 자발적으로 가두고 자신의 생각이 흘러가는 궤적을 극대화하여 이를 현상학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비디오작가이다. 재미난 물건들을 만들거나 상황을 초 미시적인 감각의 층위에서 서술하는 그의 서술과정은 관객의 시점을 다른 차원으로 인도 한다. ● 서진석이 다룬 김시연 작가의「Barricade」작업은 작업에 임하기에 앞서 쓰여진 픽션의 텍스트가 그 상황자체에 대한 감정을 함축한 비구상적 조형물과 함께 병치된 작업이다. 어느 소심하리만치 개인적인 한 가정주부의 스토리가 그가 가진 불안감을 상징하는 비누를 날카롭게 깎아 만든 조형물로 비약하면서 이 작업의 모호함은 시작되고 있다. 서진석은 이야기가 묘사하는 구체적인 그러나 허구의 영역과 날카로운 조형물로 이루어진 비구상적인 영역을 바라보면서 두 영역이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불안한 한 가정주부의 무의식 속에서 유기적으로 압착되어 호흡하는 현상으로 파악한다. ● 양아치는 손정은의 작업을 일종의 컴퓨터와 같은 기계장치로, 그리고 작품은 인터페이스로, 그리고 논리는 그 인터페이스의 알고리즘으로 전환 해석하고 있다. 손정은의 작업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여성성, 죽음, 감각, 생명, 상처 등과 같은 여성주의적 경향 등은 매개 변수로 활용되는데 여기서 사용되는 알고리즘은 임의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전시장에 따라 출력이 달리 된다. 결과적으로 손정은이 만들어낸 낙원은 우리들 각각이 쇼윈도우나 일상에 복원하는 낙원처럼 편재하며 그만큼의 공허함을 읽을 수 있다. ● 김희경이 찾은 함경아의 기억의 기술은 몽타주이다. 작가는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에 나오는「오데사의 계단」을 만들었는데, 전직대통령이 그의 집을 리노베이션하면서 버린 폐기물 문짝과 변기, 골프공과 의자, 목욕탕타일과 대리석으로 계단을 몽타주-설치하였다. 전직 대통령의 집 인테리어 자재와 물건들을 발로 밞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동안 권력과 역사에 대한 기억을 곱씹으며 몽타주 하게 되고, 과연 쓰여진 역사가 진짜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함경아_허니 바나나_설치_광주비엔날레_2006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경험을 기억에 남기고 그 중에 선별된 기억을 예술작업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은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소통이 수월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모호함을 무릅쓰고서라도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개개의 작가들은 작업을 완료하기까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소통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혹은 스케치로 작업의 비주얼적인 요소를 구성해 나간다. 여기에는 노련한 기술이 뒤따라야 한다. 이전시의 큐레이터들은 작업이 완료되는 시점까지의 이 말로 하기 어려운 기술 부분을 말로 구체화 하면서 작업제작에 연루되는 권력구조의 분석, 두 개의 상반적인 페르소나를 동시에 가진 아저씨의 목소리로 말하기, 구상과 추상적인 영역의 여행, 개인의 가장 사소한 생각의 궤적을 극대화하기, 컴퓨터의 프로세싱, 그리고 상징적 오브제의 몽타쥬를 사례로 들고 있다. 이 전시가 작가의 논리를 굳이 기술이라고 명명하고 예술작업을 만들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을 천재성이 아닌 잠재성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는 이들의 기억의 기술을 예술로의 승화라는 미신적인 단어로 작업 자체를 잊혀지게 하기보다 작업의 메시지가 우리의 피부에 와 닿기를 바람에서이다. 그리고 그 미신의 가치를 폄하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 깨뜨리려 보려는 노력에서이다. ■ 신현진

Vol.20070910a | 기억의 기술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