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aoze Xie Solo Exhibition

Xiaoze Xie 개인展   2007_0904 ▶ 2007_1007 / 월요일 휴관

Xiaoze Xie_Chinese Library No. 35_캔버스에 유채_121.9×168.9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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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04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가인갤러리 서울 종로구 평창동 512-2번지 Tel. 02_394_3631 www.gaainart.com

축적된 것들이 드러내는 시간, 기억, 그리고 역사 ● '축적(accumulation)'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사물을 모아서 포개는 행위나 그렇게 된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축적은 단지 쌓는 행위나 쌓인 상태 자체뿐 아니라 쌓거나 쌓이는 데 필요한 시간의 소요를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물질적 범주의 축적은 시간이라는 비물질적 범주의 축적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샤오제 시에(Xiaoze Xie, 1966- )는 '축적된' 책이나 신문을 그림의 주된 소재로 삼는다. 그의 작품에 있어서 역시 축적은 물질적 의미와 비물질적 의미 둘 다를 가지고 있다. 책이나 신문이 쌓여 있는 형태가 그의 그림에 있어서 형식적인 측면의 중심 요소라면, 쌓인 혹은 쌓여 가는 책이나 신문이 담지하는 시간과 역사에 관한 의미가 그림의 주제적인 측면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책장 선반 위에 책들이 횡으로 종으로 정렬된 모습을 그린 시에의「도서관 연작(Library Series)」회화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초반 무렵이다. 미국으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어느날 학교 도서관 서고에 들어섰을 때 그는 책들이 여러 층으로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들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모습에 압도당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에게 그 모습은 일종의 건축적 형태이자 특정한 시각적 패턴으로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사실상 초창기 그의「도서관」회화들은 책등이 만들어내는 직선들이 화면을 기하학적으로 분할하고 있는 회색톤의 단색회화에 가깝다. 현재까지 세계 여러 도서관 서고에 쌓인 책들을 조금씩 다른 기법과 형태로 그리고 있는 시에의 대부분의 그림에는 외견상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사실적으로 책을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책 자체가 지닌 직선의 형태와 그것들의 규칙적인 반복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화면에 일정한 기하학적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적 특징은 시에의 그림이 정밀한 사실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일정 정도 미니멀하고 추상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시작된 그의 신문 연작에서 한층 부각된다. 접힌 채 쌓여 있는 신문의 단면이 드러내는 패턴은 곡선을 내재한 부드러운 직선의 반복으로 인해 책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며, 부분적으로 신문 기사의 글자나 사진이 드러남으로써 사실적인 묘사가 주는 재미 또한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Xiaoze Xie_Chinese Library No. 37_캔버스에 유채_81.3×154.9cm_2007

그러나 시에가 책과 신문의 축적에 집중하는 것은 단지 그 형태적 특징 때문만은 아니다. 그림의 조형성을 이루고 있는 단위들이 비물질적 차원의 '시간의 축적'을 담고 있는 책과 신문이라는 점에서 역시 그것들은 매우 중요하다. 책은 당대의 인류 지식이 담긴 저장소로서 그러한 개별 책들의 축적은 곧 지식의 역사가 된다. 그가 책의 낱권을 그리지 않고 도서관에 정렬된 책들을 그리는 것은 지식을 담고 있는 책 자체의 특징보다 그것들이 오랜 시간동안 쌓여 이루어내는 지식의 역사라는 상징적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까닭일 것이다. 그가 그리는 책들이 주로 손때 묻거나 벌레 먹은, 닳고 낡은 오래된 책인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다. 오래된 책들은 새로이 등장하는 책들의 토대가 됨에도 불구하고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오랜 시간 잠들어 있게 된다. 따라서 이 부패해가는 책들은 그것이 언젠가는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상실감과 쇠퇴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신문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신문은 본디 그 날 하루에만 효용되는 것으로 일상에서 대부분 그대로 버려지거나 재활용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그것은 그야말로 날짜 단위의 세세한 역사적 흔적이 된다. 날짜 순으로 정리해놓은 도서관의 신문들을 몇 개월 단위로 끊어 그 축적된 상태의 단면을 보여주는 시에의 회화 연작「일상의 조용한 흐름(The Silent Flow of Daily Life)」은 그러한 신문의 일시적인 특성과 시간의 축적을 잘 보여준다. 1995년 이후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는 이 작업은 우리가 별 생각없이 흘려보내는 일상의 날들이 역사의 미세한 단편들이며 시간은 지금도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시에가 그리는 오래된 책과 신문은 지나간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것이 결코 과거로 끝나지 않으며 지금의 것이 영원할 수 없기에 시간 속에서 계속해서 축적되어 가는 '현재'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Xiaoze Xie_Shanghai No. 15 (China Three-Gorges Project News)_캔버스에 유채_76.2×152.4cm_2006

이번 전시에는「일상의 조용한 흐름」의 최근작들과 함께 중국 고서를 소재로 한「중국 도서관 (Chinese Library)」연작이 소개된다. 「중국 도서관」은 오랜 시간 훼손되어 왔고 현재도 조금씩 부패해 가는 중국 도서관에 안치된 고서들을 그린 것으로 역시 1995년부터 지속되어 온 작업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최근작들은 1930-40년대 일본의 침략 기간 동안 도서관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손상을 입은 베이징의 한 대학 도서관의 소장서로서 상당 부분 타거나 검게 그을리고 물에 젖어 찢어진 모습이다. 이 책들은 시에가 그리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의 증거가 된다. 또한 외견상으로 다른「도서관 연작」과 비교할 때 책의 심하게 훼손된 낱장들이 쌓여 있는 책들의 규칙적인 직선을 가리는 다소 복잡한 형태와 풍부한 색채나 질감으로 인해 기존의 다른 도서관 연작들에 비해 기하학적 추상의 느낌보다는 사실주의 회화의 느낌이 훨씬 더 강조되는 특징이 있다. ● 한편 이번 전시에서 규모나 형태 면에서 다른 작품들과 구분될 만한 그림이 한 점 있으니 그것은 특정한 공간을 그린 대형 회화「유산(Legacy)」(2007)이다. 책이나 신문이 쌓여 있는 부분만을 그린 다른 회화들과 달리 공간 전체를 강한 구상성으로 담아낸 이 회화는 시에의 역사와 정치에 대한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책들과 오래된 가구, 잡동사니들이 담긴 짐 보따리와 종이 상자들로 어지러운 방 한 가운데 마오쩌둥의 흉상이 뒤돌아 놓여져 있다. 이 그림은 2000년도 중국 남부지방의 한 작은 도서관이 새로운 건물로 이사하기 전 임시로 물건들을 쌓아놓은 공간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재현한 것이다. 늦은 오후의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낡은 물건들과 마오의 흉상이 놓인 방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 이 장면이 그에게는 중국 사회의 과도기를 상징하는 극적인 순간으로 보였다고 한다. 시에는 자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새로운 가치들로 전환기를 겪고 있는 오늘날 중국에 공산주의 이념과 같은 낡은 가치들이 표면상으로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역사의 흔적들이 도처에 '유산'처럼 살아 숨쉬고 있음을 이 그림을 통해 암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는지 모른다.

Xiaoze Xie_Shanghai No. 16 (Southern Weekend)_캔버스에 유채_76.2×181.6cm_2007

사실상 시에의 많은 작품에 그의 정치적 관심이 잠재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관심이 아닌 인간과 역사에 관한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시에가 태어난 1966년부터 열 살이 되던 1976년까지 십 년간은 마오쩌둥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지식인과 그 소산물을 탄압한 문화혁명이 지속된 시기다. 또한 그는 대학생 시절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희생된 중국 최대의 민주화 운동인 텐안문 사태를 겪었다. 이처럼 중국의 정치 사회적인 역동기를 경험한 시에의 작품에 정치적인 이슈가 배제되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정한 정치적 진술을 하는데 관심이 없다. 책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특정한 책의 내용을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다만 그의 관심은 역사 속에서 일부 힘있는 자들에 의해 남용된 권력이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에게 끼친 막대한 영향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그가 쉽게 버려지고 잊혀지는 일상의 보잘것없는 신문들이 역사의 각 단면을 이루고 있듯, 역사에서 부각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그 역사를 이루고 있는 개별자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Xiaoze Xie_May 2005_Zhongshan No. 5_캔버스에 유채_55.9×111.8cm_2005

이번 전시에 새롭게 소개되는 사진 연작은 이러한 시에의 역사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암흑 속에서 허공에 책들이 불타오르는 듯한 형상을 재현한 이 사진들은 권력에 의해 책이 강제 폐기되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암시한다. 중국의 고서가 불타오르는 사진 연작「무제(중국 책)」(2007)는 멀게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을, 가깝게는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는 지금도 열 살 무렵 중학교에 재직 중이던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폐기하려고 쌓아놓은 고서들을 몰래 들춰 보던 기억을 떠올린다. 한편 니체, 마르크스, 사르트르, 보르헤스 등 서양 근대 이론가나 문학가의 책들이 소각되는 모습을 유사한 방식으로 포착한 또 다른 사진 연작「무제」는 그의 초기 설치작 「야상곡: 나치에 의한 책 소각(Nocturne: Burning of Books by the Nazis)」(1995)을 사진으로 재현한 것으로 나치에 의해 금서들이 불태워지는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렇듯 시에의 사진들은 인류 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자행되어 온 수많은 책의 금기와 폐기에 관해 다루고 있다.

Xiaoze Xie_Untitled (Chinese Books #07)_디지털 프린트_60×90cm_2007

이들 사진 연작은 책에 대한 시에의 또 다른 주제적 접근인 동시에 사진에 대한 시에의 또 다른 형식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카메라를 분신처럼 늘 가지고 다니는 그는 인상적인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회화로 조심스럽게 옮겨낸다. 특히 도서관 서고라는 제한된 공간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일이 사진을 찍어 두어야 했을 것이다. 이렇듯 시에의 모든 회화는 사진을 토대로 그려지기에 사진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매체이다. 그러나 회화를 위한 중간 단계로서의 사진이 아닌 최종 결과물로서의 사진을 전시에 선보인 것은 드문 일이다. 스튜디오에 인공 조명을 설치하고 허공에 책을 던져 그 순간을 포착해낸 이 사진들은 그의 회화들과는 또 다른 방식의 조형성과 생생한 느낌을 준다. 이는 그간 간간이 설치나 프린트 작업을 선보여 온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작품마다 주제에 맞는 매체를 선택하려는 의도이자 매체에 대한 적극적인 실험이기도 하다.

Xiaoze Xie_Untitled (Nietzsche in Turin)_ 디지털 프린트_60×90cm_2007

그러나 시에에게 주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회화이다. 그것은 그의 작품들 중 회화가 차지하는 비율이나 그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도 면에서 그러하다. 사실상 그의 회화적 기술은 동시대 어떤 작가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을 그대로 답습하여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그의 회화 속 대상물은 원근법과 눈속임(trompe-l'oeil)에 의해 잘 구성된 것이라기 보다 사진에 있는 사물이 놓여져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사진을 토대로 한다고 해서 사진을 똑같이 재현하는 극사실주의와도 거리가 있다. 어느 단계가 지나면 그림은 그의 눈과 손이 결정하는 대로 흘러가며, 그의 붓질은 빈틈없이 견고하고 또렷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 느슨하고 흐릿하다. 이는 그러한 기법이 시간과 기억, 역사의 일시적이고 덧없음이라는 그의 주제를 표현하기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축적된 책'이라는 소재를 형태와 의미 면에서 동등하게 중요시하듯, 책의 파기라는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이라는 매체를 선택하듯, 시에는 자신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회화적 기법을 적절히 구현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건드리며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이유는 이처럼 내용과 형식을 대등한 무게로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어가려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 신혜영

Vol.20070909d | Xiaoze Xie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