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사색과 관조의 풍경...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단순히 화가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니라 화가의 사상을 불어넣는 철학적인 행위에 해당한다. 예술은 시대성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화가는 자기 작품의 정신적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며 다양한 방법을 찾아 고심한다. 그러나 고전도 현대도 그것은 작가가 어떠한 것들을 섭취 하느냐하는 영양소일 뿐 온전히 작가의 자기화 과정만을 통해 새로운 예술의 영역은 탄생하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본인의 그림은 인간의 심리를 주제로 하여 일상적 관계들 속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나타내는데 관심이 있었다. 그렇기에 주체는 항상 인간이었고, 조형요소로서 자연의 이미지를 해체하여 혼돈스러운 감정을 이입했다. 최근 작업의 핵심은 인식의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 미적체험의 대상적 존재를 표현해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화면 속의 인물은 주체로서 뿐 아니라 객체로서 양면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꽃이나 다른 이미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은호_생(生)-개화(開花)_한지에 먹, 석채, 수간안료_190×390cm_2007

이은호_생(生)-락(樂)_한지에 먹, 석채, 수간안료_180×454cm_2007

'꽃이 내가되고 내가 꽃이 되었다.' ● 이는 장자의 물화(物化)의 사상과도 일치한다고 볼 수 있으며, 바라보는 나와 보여 지는 나와의 분리를 통해 내가 인식하는 세계의 확장을 염원하고 내 속에 있는 기운을 일깨워 사물의 이치를 알아 가는 것이다. 꽃도 되고, 호수도 되고, 나무도 되고, 홀씨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존재도 될 수 있다. 그것은 발상에 대한 확장이고 자유로움에 대한 구가이다. 발상에 대한 확장은 시야의 확장과 표현의 확장을 동반한다. 이전의 작품들이 현실에 근거한 사적인 자기표현이었다면 최근의 작업은 우주자연에 대한 근원적 물음과 탐구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식의 주체이자 객체로서 나를 바라보다 보면 나는 점점 작아짐을 느낀다. 그리고 사물의 근원을 내가 얼마나 느끼느냐하는데 관심이 생기면서 감정을 이입하는 다양한 조형요소를 차용하게 되었다.

이은호_생(生)-희망(希望)_한지에 먹, 석채, 수간안료_130.5×162cm_2006

한지위에 애송하는 詩를 빠르게 써 내려갈 때 나는 이미 그 시의 내용과 하나이다. 화선지 위에 먹으로 쓰여진 시는 화면에서 하나의 조형적 요소로서 작용한다. 그것은 인생의 물결이 되고 인간은 그 속에서 유영한다. 그 물결이 거셀 때도 있고, 잔잔할 때도 있으나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나를 잊고 물결을 느낀다. 또 꽃잎이 되기도 하고 여인의 옷이 되기도 하고,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환치된다. 양귀비 꽃 역시 명칭과 닮음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마음을 담는 호수도 되고, 눈과 마음을 빼앗는 세속의 욕망을 상징하기도 하고, 삶을 찬미하게 하는 사랑스런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본인의 작품에서 인간과 자연은 다른 객체들이 아니다.

이은호_생(生)-희망(希望)_한지에 먹, 석채, 수간안료_130×162cm_2006

하나의 화면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의 조합은 혼란스러움을 야기 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의도된 것일 경우 형태의 유사성이나 조형적 안정감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시각적 자극을 주게 되고 의문을 갖게 한다. 본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요소들을 어떻게 새로운 조형언어로 확보해 내느냐 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하다. 장자는 "소리가 없는 곳에서 소리를 듣는다"(聽於無聲)고 했다. 이는 자기만의 감각으로 소리를 들으라는 뜻이다. 그림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본인은 우리의 오감으로 듣고 볼 수 없는 세계, 아직 보지 못한 세계를 화면에서 재창조하는 것, 형(形)에 매이지 않고 정신(情神)의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것이다. "삶은 심미(深美)하는 것이다"이 말은 너무나 감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이런 마음이 없다면 삶은 너무나 잔인하고 흉포하며 힘들게만 느껴진다.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여러 사물들과 관계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면 새롭고 아름다운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본인은 이러한 발견들을 그려냄으로써 마음의 위안과 삶의 생동감을 느낄 때 행복하다.

이은호_생(生)-개화(開花)_한지에 먹, 석채, 수간안료_130×162cm_2007

이은호의 작품에서는 '중층구조'가 보인다. 하나의 화면에 단일한 공간의 구성이 아니라 하나의 화면에 또 다른 공간을 장치하여 화면을 분할하고, 그 분할된 화면은 서로 다른 층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잡해 보이기도 하며 드러난 공간이 아니라 저 내면 깊숙하게 잠겨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전면에 인물과 꽃이 등장하여 하나의 층위를 이루고, 인물과 꽃의 배경으로 설정되어 있는 공간은 분할되어 몇 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꽃과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다양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화면의 배경에서는 새로운 공간이 마치 몽타쥬와 같이 생경하게 입체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여 작품구조를 무한한 상상의 공간으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 오세권

이은호_생(生)-희망(希望)_한지에 먹, 석채_43×96cm_2007

이은호_생(生)-희망(希望)_한지에 먹, 석채, 수간안료_45×98cm_2006

The middle layer structure is shown in LEE, Eun-Ho? works. It is not single space composition on one canvas, it divides canvas with installation another space on one canvas, and the divided canvas forms layer that different each other. Therefore, it looks complicated, and it is understood as new space which is not exposed space as well, but it is under interior. For example, characters and flowers appear on the whole surface and it completes one layer, the space which is established as background for characters and flowers is divided and consisted several space. It interacts with flowers and makes new meaning diversely. In another canvas?background, new space expressed three-dimensionally and lively as if a montage, so it changes structure of works into boundless imaginary space. ■ OH, Se-Kwon

Vol.20070905h | 이은호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