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ganic garden

정용국 수묵展   2007_0904 ▶ 2007_0910

정용국_Organic garden_한지에 수묵_166×13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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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04_화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재)인천문화재단

인천신세계갤러리 인천시 남구 관교동 15번지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1층 Tel. 032_430_1157 www.shinsegae.com/gallery

고원을 향해 질주하는 유기적 정원 ● 정용국의 'Organic garden' 전은 정원수들을 파는 수목원 풍경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인체 내부 장기와 식물 이미지가 중첩되고, 이 복합적인 풍경이 잘 가꾸어진 정원처럼 펼쳐진다. 이 정원에는 육화된 식물과 변형된 기관들로 가득하다. 몸과 피부로 구현되었던 이전의 대자연은 정원, 또는 몸이라는 닫힌 내부로 회귀한다. 내부를 향하지만 그 지평은 더 넓어지고 차원은 다변화되었다. 외연의 확장보다는 내포적 다양성을 지향한다고나 할까. 전시부제 및 작품제목과 관련해서 본다면,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기이한, 또는 상상적인 식물들로 가득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참조대상을 가진다. 그렇다면 그것은 창 너머의 풍경일까? 그의 작업실은 초목이 푸르른 서울 근교에 위치하고 있지만, 넓은 창 너머로 전원 풍경이 펼쳐지는 장소와는 무관하다. 그는 창 밖 대신에 해부학 같은 의학 서적을 주로 탐독한다. 관찰자에게 몸을 가차 없이 개방하고 있는 사체 부위의 사진들을 정글 탐험하듯이 헤집고 다니면서, 몽환적인 이국적 정원의 이미지를 길어 올린다.

정용국_Organic garden_한지에 수묵_40×54×3cm_2007
정용국_Organic garden_한지에 수묵_166×130cm_2007
정용국_Organic garden_한지에 수묵_166×130cm_2007

작품들은 대부분 선에 연결된 다양한 덩어리들이 평평한 가상의 판에 펼쳐진 형태이다. '유기적 정원'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배경 처리도 되어 있지 않은 중성적 공간에 배열된 상태로, 지상에 서식하는 식물보다는 희귀식물들의 표본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탕 없는 화면은 그것이 풍경이 아니라, 분석적 이미지라는 것을 예시한다. 진짜 식물과는 달리, 길쭉길쭉하거나 동글동글 한 것, 외곽선도 밀도도 배열도 다른 다형태의 덩어리들이 줄줄이 연결되며 어디론가 나아간다. 화면 밖으로 연결되는 듯한 배열은 유기체 고유의 자족적 한계를 넘어선다. 무한대로 확장 가능한 연결들로 인해 어떤 화면은 임의적 위치에서 잘려져 나간 듯하다. 그의 '유기적 정원'의 바탕은 인체의 모든 혈관과 신경이 지나가는 가장 복잡한 부위인 목에서 출발하여 허파, 간, 췌장, 십이지장이 죽 늘어선 장면들이다. 신경계와 혈관계가 선을 이루고, 장기들이 덩어리를 이룬다. ● 정용국은 향나무에서 콩팥의 이미지를, 은행나무에서 뇌의 주름을, 침엽수에서 폐의 이미지를, 꽃에서 난소의 이미지를 찾아낸다. 혈관계의 구조는 뿌리와 유사하다. 작가는 동물과 식물의 유사한 형태들을 찾아내 양자를 교차시킨다. 먹이나 짝을 찾아 직접 이동해야 하는 동물은 모든 기관이 안으로 들어가 있고, 정착하는 식물은 자신의 기관을 주변으로 펼치는 차이가 있지만, 둘은 형태적, 기능적 유사성을 가진다. 장기가 펼쳐진 형태가 대부분인 그의 작품은 해부도를 참조하지만, 결과물은 딴판이다. 장기들은 제 위치를 벗어나 배열되는데, 그것은 현실의 파편이 무작위로 출몰하는 꿈같은 장면과 비교할 수 있다. 작업할 때는 위아래가 있지만, 완성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특히 여러 화면을 이어붙인 대작에서 화면 밖으로 넘어가는 형상들은 거의 전면all over 구성을 보인다. 폐나 간 같은 기관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여러 군데 배치되어 있다. 작가는 다른 장기와는 달리, 한 개체의 정체성을 압축하는 심장만은 하나만 그려왔는데, 나중에는 심장도 여럿으로 분열되었다고 말한다.

정용국_Organic garden_한지에 수묵_83×70cm_2007
정용국_Organic garden_한지에 수묵_83×70×3cm_2007
정용국_Organic garden_한지에 수묵_166×130cm_2007

이러한 분열 증식의 이미지는 정용국의 작품이 나무로 상징되는 유기체가 아니라, 유기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리좀rhizome에 가깝다는 것을 알려준다. 주체의 의지로 완전히 제어할 수 없는 묵의 번짐 같은 효과는 이러한 분열증식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듯하다. 장기의 이미지는 실사에 가깝지만 먹이라는 매체를 거치면서 많이 순화된다. 정용국의 '유기적 정원'은 한지에 수묵으로 그린 자연의 풍경에 속하지만, 기존의 산수화 같은 분위기가 없다. 작가는 기존의 먹이 가지는 관념적인 무게나 정신적인 면을 배제하고 물질적인 대상에 집중한다. 그러나 먹은 사진이나 유화가 구현할 수 있는 즉물적 시점을 가지기 힘들다. 그것은 먹이라는 매체의 특수성 때문이다. 정용국은 먹이 한지와 만나는 물질적 순간을 환기시킨다. 그는 붓을 대는 순간 첫 붓자국은 덮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먹은 기술된 것이 모두 남아있다. 처음과 끝이라는 시간성이 추적 가능한 것이다. 되돌릴 수 없음이 수묵의 어려움이다. 획 하나에 몸과 심리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며, 가필이 용납되지 않는다. 화면과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오래 관찰하고 다시 이어붙이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때그때 작용하는 필연과 우연이 복합된 요소가 중요하다. ● 정원은 완전한 자연의 세계도 완전한 인공의 세계도 아니다. 성공적인 예술작품 역시 작가의 의도나 우연성으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예술작품에서 발견되는 형상은 고유의 전개이자 화가의 형성능력에 의해 생겨난다. 롬바흐는 [정원의 철학]에서 철두철미 자연으로부터만, 즉 우연적으로만 생겨난 형상들은 인간에 의해 제작되고 특정한 의도로 생산된 형상들과 마찬가지로 예술작품일 수 없다고 말한다. 화폭에서 형상은 자라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 화가는 정원사처럼 인간과 자연 사이에 있는 제3의 성장원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원리가 내부로부터 자라나는 정용국의 '유기적 정원'에 관철되어 있다. 식물학자 자크 브로스도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적절한 무질서 속에서 자라나는 정원을 언급한다. 그에 의하면 가장 오래된 정원은 바로 다듬어지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자라는 폐쇄되어 있는 공간을 말한다. 정원에서 벌어지는 일은 경작처럼 인간이 어머니인 자연을 가혹하게 다뤄서 길들이는 행위와는 다르다. 그것은 양식을 주는 대지와의 내밀하고 평화스러운 협력관계이며 교감 관계이기 때문이다. ● 정원술과 예술의 닮음꼴을 지나서, 정용국이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것은 식물과 동물의 관계이다. 대지 위에서 마주선 존재인 나무와 인간은 상호적 거울 관계를 가진다. 식물의 씨는 동물의 알과 비교되며, 식물의 수액은 동물의 피에, 그리고 나뭇가지는 동물의 사지에 상응한다. 동물에 앞서 존재한 것이 식물이다. 정용국의 작품 역시 애초에는 식물적인 상상으로부터 자라난 것이다. 로베르 뒤마는 [나무의 철학]에서 나무는 시공간적으로 극대화된 양상으로 자신을 펼치면서 공기와 물과 빛을 수렴하고 종합하고, 정신이 이론적 구상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우주의 한복판에서 물질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무는 대자연의 상징이자, 물질과 모형을 제공했다. 나무는 다원성 속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혼합된 요소들로 생장하는 특성을 취한다. 그러나 정용국의 '유기적 정원'은 외형적 유사를 넘어 그 내부로 파고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무의 전형적인 구조, 곧 뿌리로부터 뻗은 기둥과 거기에서 자라난 곁가지라는 계층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정용국_Organic garden_한지에 수묵_166×130cm_2007
정용국_Organic garden_한지에 수묵_166×260cm_2007

정용국의 작품에서 펼쳐진 오장육부는 서로 연결된 순환상태에 의해 규정된 구심적 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에서 둘이 되고 둘이 넷으로 갈라지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분기를 상징하는 나무의 이미지를 벗어난다는 점에서, 나무보다는 근경rhizome을 닮았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개의 공원]에서 리좀의 주제를 심화시킨다. 그들에 의하면 자연에서 뿌리는 축처럼 곧게 뻗어있지만, 이분법적으로 분기하는 것이 아니라, 측면으로 원모양으로 수없이 갈라져 나간다. 더 나아가 [천개의 고원]의 저자들은 나무가 왜 그토록 서양의 현실과 모든 사유를 지배해 왔는가를 묻는다. 나무는 뿌리, 기초, 바닥, 토대라는 형이상학적 초월성을 상징하는 거대한 도식이었다. 반면에 정용국은 뿌리가 아니라 중간, 즉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복잡하게 착종된 관들을 가지는 또 다른 개체의 이미지에 주목한다.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은 식물과 동물을 끝없이 교차시키고는 있지만, 전형적인 유비analogy의 사고를 벗어난다. ● 미셀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유사함의 패러다임을 분석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유사한 어떤 것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이나 식물, 아니면 지상의 어떤 사물이든 간에 그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것에 내재하거나 그것에 덧붙여진 기호의 두꺼운 층 전체를 한데 모으는 것이다. 유사관계를 발견할 수 있으려면 명확한 메시지의 텍스트를 형상화하는 기호전체가 그 사물들의 표면에 존재해야만 한다. 유사물들에 의해 뒤덮인 공간은 거대하게 펼쳐진 한권의 책처럼 된다. 지식을 구성하는 강력한 원리인 유사성resemblance의 사고에 의하면 땅은 하늘을 반영했고, 사람의 얼굴에는 창공의 별이 반영되며 회화는 공간의 모방이었다. 유사성과 공간과의 연쇄에 의해, 말하자면 유사한 사물들을 한데 모으고 인접한 사물들을 동화시키는 힘에 의해 세계는 하나의 사슬처럼 서로 연결된다. 인간은 이 유비의 공간에 의해 사면팔방으로 포위되어 있었다. 유비는 '총총한 그물을 통해 우주 전체, 즉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를 파악하려는 사유의 기본적 성향'(카시러)이다. 인간이라는 소우주와 삼라만상을 포괄하는 대우주의 상응이라는 사고방식은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절정을 이루다가 점차 사라지긴 했으나, 인간과 우주를 잇는 신비의 끈이라는 사고방식이 인간의 뇌리에서 완전히 잊혀진 적은 없었다. 정용국의 그림을 이루는 각 요소들은 일견 정교한 눈속임 기법trompe-l'œil처럼, 유사성에 호소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어법은 푸코의 분류에 의한다면, 유사가 아니라 상사similitudes에 해당된다. 푸코는 유사와 상사를 구별한다. 유사하다는 것은 지시하고 분류하는 제1의 참조물을 전제로 한다. 반면 비슷한 것(상사)은 시작도 끝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서열에도 복종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달라지면서 퍼져 나가는 계열선을 따라 전개된다. 재현에 충실한 듯한 정용국의 그림에는 어떤 참조 틀로도 고정시킬 수 없는 상사체들이 활강하고 있다. 푸코는 그림의 이러한 상태를 '출발점도 지주도 없는 이동들'이라고 묘사하면서, 이러한 이동들을 통해 오직 그들 자신에게만 속하는 질서, 즉 무질서를 개입시킨다고 해석한다. ● 유기체처럼 자연스럽게 생장하기 보다는, 연기나 에테르처럼 피어오르는 듯한 분위기를 가지는 정용국의 '유기적 정원'은 안개 속에 가려진 채 일부분만이 간헐적으로 드러나는 신비적 풍경을 닮았다. 어디로 뻗어나갈지 예상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선들은 무한한 연상의 얽힘을 낳으며 표류한다. 기착점이 모호한 착종된 장기들은 뿌리줄기를 이룬다. 정용국의 작품에서 오장육부는 구근이나 덩이줄기처럼 생겼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식물들은 뿌리를 갖고 있을지라도 언제나 어떤 바깥을 가지며 거기서 식물들은 항상 다른 어떤 것, 예컨대 바람, 동물, 사람과 더불어 리좀 관계를 이룬다고 한다. 정용국의 주요 모티브를 이루는 것은 동물성이지만, 떼를 지은 형태가 리좀의 형태와 관련된다. 그것은 어떤 지점이건 다른 어떤 지점과도 연결 접속되어 있다. 리좀을 이룬 형태들은 어떤 곳에서든 끊어지거나 깨질 수 있으며, 자신의 특정한 선들을 따라 혹은 다른 새로운 선들을 따라 복구된다. 여기에서는 모방이 아니라 생성이 중요하다. 이 리좀의 형태 안에 나무나 뿌리의 구조가 존재한다. 역으로 나무의 가지나 뿌리의 갈래가 리좀으로 발아할 수도 있다. ● 망상적인 조직이 나무를 형성하고, 나무는 또다시 리좀적인 줄기를 뻗는다. [천개의 고원]의 저자들은 리좀이 어떠한 구조적 모델이나 발생적 모델에도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리좀은 발생축이나 심층구조같은 관념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나무나 뿌리라는 재현모델에서 벗어나 있다. 이처럼 나무와 리좀은 대조된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으로 분지되는 나무의 논리는 복제(=재생산)의 논리이다. 리좀은 사본이 아니라, 지도이다. 지도가 사본과 대립한다면 그것은 지도가 온몸을 던져 실재에 관한 실험 활동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용국의 장기들은 해부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고른 판 위에 최대한 열어놓는다. 고른판 위에서 펼쳐질 수 있는 선형적 다양체들이 구성되며, 펼쳐진 장기들은 지도처럼 모든 차원들 안에서 연결접속될 수 있다. 언제나 많은 입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리좀의 중요한 특징이다. 지도는 다양한 입구를 갖고 있는 반면, 사본은 항상 동일한 것으로 회귀한다. 과학적 표본이라는 사본을 지도로 바꿔 놓는 과정이 정용국의 주요 작업이다. 지도처럼 배열된 배치물들은 복제해야할 세계가 아닌 바깥을 향해 있는 것이다.

정용국_Organic garden_한지에 수묵_198×556cm_2007
정용국_A tree_한지에 수묵_83×70cm_2007

정용국의 작품에서 몸을 이루는 단위들은 리좀처럼 시작도 끝도 갖지 않고 언제나 중간에서 자라고 넘쳐나며 움직이는 방향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리좀적인 선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묘사하듯이, 재현과는 반대로 아무것도 제한하지 않고 어떠한 윤곽도 그리지 않는 선으로, 항상 수평선과 수직선으로부터 비껴 나오며 부단히 방향을 바꾸는 선, 즉 바깥도 안도 또 형태도 배경도 또 시작도 끝도 없는 변이하는 선이다. 연속적 변주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 선들은 재현된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보다 먼저 재현의 형식이며, 나아가 재현을 주체에 결합시켜 주는 감정을 가리킨다. 이 열광적인 선은 인간이 바로잡고 유기체들이 가둬두었지만, 물질을 가로지르는 흐름과 도약으로 표현되는 생명의 역량을 해방시킨다. 요소들 간의 빠름과 느림의 관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유기적 형태의 운동과 기관들의 한정을 벗어난다. ● [천개의 고원]은 리좀이 고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외부나 초월적인 목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재적인 강렬함이 진동하고 연속되는 지역이 바로 고원이다. 표면적인 땅밑 줄기를 통해 서로 연결 접속되어 리좀을 형성하고 확장해 가는 모든 자양체가 고원이라면, 정용국의 정원은 고원으로 도약한다. 뇌처럼 미세한 균열들을 가로질러 서로 소통하는 고원들로 이루어져 있는 그곳은, 유기체나 조직을 넘어선 공간, 즉 외연적 공간이 아니라 강렬한 내포적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은 '고른 판'-들뢰즈와 가타리의 또다른 개념인-에서 가능하다. 고른 판은 어떤 것이 지지하고 설 수 있는 일관되고 균일한 판으로, 그것은 만물의 존재 기반이 되는 내재성의 판으로 정의된다. 정용국이 장기들을 늘어놓는 장은 어떤 구체적인 몸체가 아니다. 몸체가 가정된다면 장기들의 흐름은 홈이 패인 판 위에서처럼 방향이 정해질 것이다. 그러나 고른 판 위에서 선들은 어디로 흘러갈지 예상할 수 없다. ● 정용국의 정원은 나무의 위계적 체계가 아니라, 중심이 없는 체계이다. [천개의 고원]의 저자들에 의하면 리좀은 조직화하는 기억이나 중앙 자동장치도 없으며, 오로지 상태들이 순환하고 있을 뿐인 하나의 체계이다. 나무는 혈통관계이지만 리좀은 결연관계이다. 나무는 '-이다'라는 동사를 부과하지만 리좀은 '그리고...그리고...그리고'라는 접속사를 조직으로 갖는다. 여기서 소통은 임의의 두 이웃 사이에서 일어나고 줄기들과 수로들은 미리 존재하지 않으며, 개체들은 모두 서로 대체될 수 있고 특정 순간의 상태에 따라서면 정의된다. 정용국의 작품에서 복잡하게 짜인 다양체들의 그물망은 고른 판 전체를 덮을 때까지 늘려진다. 고른 판 속에서 여행하는 것은 그것은 제자리에서의 여행이다. 제자리에서의 여행은 아주 어렵고 불확실한 생성이다. 바깥을 향하는 추상적인 선, 도주선, 또는 탈영토화의 선은 끊임없이 유기체를 해체하고 순수한 강렬함들을 끊임없이 통과시킨다. ■ 이선영

Vol.20070904d | 정용국 수묵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