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ILESS

장준석 영상·설치展   2007_0901 ▶ 2007_0910

장준석_장준석_Fantasiless_철판위 도색_150×150×14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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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901_토요일_06:00pm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단기입주작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전시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2098번지 Tel. 016_521_4919

우리들은 이미 이미지 홍수 속에 살고 있다. 그 것이 현실이던 가상이던 시각과 청각으로 인식되어진 기억이라는 이미지를 축적하고 자신의 틀 속에 가두어 버린다. 그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몸이 움직이는 활동 반경에 따라 세상을 이해하고 보고 듣고 정보를 수집한다. 지구 저편에 이루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 볼 수 있으며 텍스트, 영상으로 세상읽기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 여기서 장준석의 작품은 수없이 떠돌아다니는 정보들의 실체와 현실의 존재를 찾아 유랑 하 듯 머나먼 여행을 시작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인간의 욕망으로 채워진 존재를 잃은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 생명을 유지하며 이데아를 꿈꾸며 사는 개인들의 삶 속에 과연 불변진리의 실체가 존재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집이라는 구조 안에서 사회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차를 타고 출근하며 차창 박으로 보이는 풍경만을 보고 사회의 온갖 소리들을 다 들으며 일상을 연다. 그리고 주어진 주변공간에서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이 일상을 하루라는 개념을 묶어두며 사회의 실체를 바라보기를 거부한다. 우리는 세상을 다 안다는 큰 착오 속에서 산다. 그리고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우리는 판단할 수 있는 기준조차 상실한 체 지금 현재의 모습만을 우리는 지각이라는 정신주의적인 틀 안에서 고정시켜 버린다. 여기서 우리라는 것은 이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일 수 도 있으며 지금 현재의 시대정신일 수 도 있다.

장준석_Fantasiless_폴리코트_23×19×9.5cm_2007
장준석_Fantasiless_접시에 ABS플라스틱_45×45×10cm_2007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인 어두운 사각공간에서 작은 빛들이 존재의 가느다란 끈을 놓지 않으려는 듯 잔잔하게 움직이며 스틸 영상 같이 한 컷 한 컷 넘어가며 꿈틀거린다. 영상은 몽환적이다. 뚜렷한 형체 없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실체와 허상의 중간 경계를 흔들어 놓는다. 이 때 시각적으로 순수하게 보여 지는 화면의 영상이 예술로서의 순수한 형상만을 바라보게 하고 사고의 영역으로서 해석하려 하지만, 영상의 실체를 알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실체의 형상이 바로 우리가 어렸을 때 「가위, 바위, 보」 놀이에서 점을 치기 위한 미신과 같은 행위인데 두 손을 모아 하늘로 올려 손가락 사이로 태양의 빛이 어떻게 들어오느냐에 따라 선택을 했던 과거 기억의 편린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기억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것 또한 과거의 유년시절에 겪었던 기억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 속에 떠도는 편린을 형상화한 현재라는 시간성을 갖는 현실이다. 이렇게 동일한 관념의 기억과 영상이라도 시공간에 어떻게 꾸며지느냐에 따라서 실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장준석은 이런 경계의 모호함 속에서 진실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을 타인과 즐기는 자체에 진실을 부여하고 있는 듯 하다. 마이크가 있다. 관람객이 마이크 앞에 서서 시각과 청각의 짧은 기억을 동시에 경험하도록 설치되어 있다. 관람객이 마이크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면 그 음성은 들리는 한계까지 도달하며 톤이 점점 작아진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메아리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다음 사람이 곧바로 체험하게 되면 각기 다른 음성들이 혼재되어 울려 퍼지는 묘한 시점이 연출된다. 관람객들은 이 혼재된 연출 작품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집중하게 되며 그 청각적인 경험자체를 통해 몇 분전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청각적인 경험을 하는 동안, 앞에서 비춰지는 조명을 받고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시각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꽃이란 텍스트가 눈의 잔상에 남겨져 전시장의 작품을 보는 동안 내내 따라 다닌다. 메아리치는 자신의 음성과 한동안 따라 나니는 꽃이라는 텍스트의 잔상은 같은 의미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 것은 관념적으로 인식하는 꽃의 형태와 보이지 않는 소리로서의 자신의 또 다른 객체로서 존재를 느끼도록 도와준다. 자신의 음성과 각인된 꽃 텍스트 이미지의 잔상이지만 그 것은 실체를 떠나 떠도는 이미지일 뿐이며 복제일 뿐이다. 허구와 현실이 복잡하게 뒤엉킨 새로운 현실을 직접 경험하도록 유도한 작품을 통해 그림자처럼 현실을 따라 다니는 그 잠재적 형상들을 우리 앞에 풀어 놓는다. 그 덕에 우리가 보던 뻔한 세상에 감추어진 다른 세계를 보게 한다. 그리고 실재와 가상사이의 짧은 체험을 통해 시지각적인 잔잔한 충격을 느끼게 한다.

장준석_Fantasiless_잔디에 ABS플라스틱_180×77.5×90cm_2007
장준석_Fantasiless_디지털 프린트_56.5×75cm_2007

장준석은 이런 일련의 관심사를 꽃이라는 텍스트의 입체로 옮겨놓는다. 자연채광이 들어오는 전시공간에 꽃을 대변하는 붉은 색의 텍스트 입체가 바닥에 꽂혀 있고 그 반대편에 꽃의 의미를 상실한 작은 입체들의 파편이 어딘가에서 떨어져 흘러내리듯 쌓여져 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꽃 텍스트의 입체가 꽃이라는 기호로서 이미지만을 남긴 체 콘크리트 바닥에 기생하듯 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꽃으로서 생명을 다한 작은 텍스트들은 진짜 꽃처럼 자연의 대지로 다시 돌아가듯 생명의 흔적을 감춘다. 이 꽃들은 그저 인간중심의 경험을 토대로 관념화된 기호로서의 꽃일 뿐이다. 탁자 위, 잔디에 핀 안개꽃 같은 꽃 텍스트도 마찬가지다. 현실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이면, 즉 기호로서의 꽃을 울타리 밖,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선에서 바라보게 함으로서 진정한 실체를 인지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장준석_Fantasiless_사운드시스템 조명장치_2007
장준석_Watching the sky No.2_단채널 비디오_00:05:50_2006

작품을 대할 때 신비감을 느끼는 차이는 실체에서 벗어난 예술을 존재로서 획득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밝혀진다. 이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작품은 현실적인 인식의 구도로 돌아와 생명력을 잃게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바라봐야 할 것은 실제와 허상의 공간 사이에서 무수히 방황하는 이미지들에게 이름 붙이기 따위의 행위를 통해 진실의 실체를 찾으려는 의지들, 진실에 대해 갈망하고 표현하려는 의지들이 예술의 힘이며 곧 예술의 미래일 것이다. 우리의 눈 속에 기억된 이미지는 더 이상 우리의 갈증을 덜어 줄 수 없다. 그리고 또 다른 대용적인 이미지가 우리를 덮어줄 수 없도록 무엇인가 현실이 이미 많이 변해버린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지의 효능은 공통의 영역에 자리 잡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신비감을 잃지 않고 존재하고 있으며 재현기술에 의해 투명하게 진실을 바라보는 예술이 있는 이상 존재할 것이다. 사회 저변에 유량하고 있는 구조의 인식, 기억의 파편, 기호들은 순수성을 부여 받고 원래에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는 창조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봄으로써 사회를 치유하고 다시 꿈을 꿀 것이다. ■ 김민기

Vol.20070901g | 장준석 영상·설치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