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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829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_11:00am∼07:00pm
갤러리 룩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5번지 인덕빌딩 3층 Tel. 02_720_8488 www.gallerylux.net
심미적 시선의 확장 ● 「군인, 841의 휴가」(2002년)에 이어 사진가 이규철이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첫 개인전에서 그는 군대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생활의 단편들을 세상의 수면으로 끌어올려 주목을 받았다. '명령과 복종'으로 축약되는 단순 규칙만이 지배하는 폐쇄적인 공간이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대를 일상적인 시선으로 담아냈다. 거기에도 '삶'은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과감한 앵글과 역동적인 원근법을 통해 그 세계를 에너지가 꿈틀대는 공간으로 보여주었다. ● 이번 전시는 시선이 향하는 대상이나 그 시선을 형상화시키는 형식의 측면에서 첫 전시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선 공간의 확장을 변화의 첫 번째 요소로 거론할 수 있다. 우리 땅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난 풍경과 인간을 대상으로 삼았다. 매우 광범위한 대상이 작업의 내용물을 이루는 까닭에 시선을 단숨에 잡아끄는 힘이 약해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사진의 힘이 대상에서 솟아난다는 오랜 편견의 확장 논리이기도 하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특이한 소재나 시야의 변방에 숨어있던 대상, 의미심장한 사건 등은 사진가의 시각과 무관하게 힘을 갖는다. 오랫동안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 온 작가가 이를 모를 리 없겠지만 그는 오히려 그 단순한 원리를 모르는 체한다.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여 꼼꼼한 시각적 보고서를 만드는 작업에서나 그 원리는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사진들은 세계를 관찰하고 기록한다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주목적과 정확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 그러한 유형의 작업이란 본래 사진가의 시선을 통해 세계를 재구성하는 행위와 유사하다. 거기에서 시선은 일방적이고 소통은 없다. 한편 이번 작업에서 작가는 일방적인 시선을 거두고 풍경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어쩌면 매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세계에 자신의 감정을 내맡겨두는 행위와 비슷하다. 대상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첫 개인전과 달리 이번에는 대상이 스스로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내버려두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진들은 '휴(休)'에 가깝다. 하지만 '휴(休)' 속에서도 그의 시선은 관성처럼 남아있어 세상의 단편을 도려낼 때만은 날카로움을 놓치지 않는다. 이처럼 느슨함과 긴장이 공존하는 시선으로 우리 땅과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이 멈추는 대상은 나무와 꽃,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눈 덮인 산과 대지,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생명을 간직한 배추밭,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탄광촌의 모습은 마치 풍경사진의 전형처럼 보인다. 대체로 풍경사진에서 아름다움을 볼 때는 풍경 자체가 아름다워서라기보다는 그것을 보는 이가 정감어린 시선으로 대상을 대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의 심미안이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세계를 일방적인 시각으로 분석하고 재구성할 때 심미안은 개입할 여지가 적다. ● 리포터라 불리는 이들의 시각에는 심미안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균형 감각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늘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긴장 속에서 대상과 마주해 왔던 그의 시선이 대상과 대상이 만나는 지점에 머문다. 가령 나무와 구름, 산등성이와 저녁 빛, 빛과 잡초, 바람과 갈대, 물결과 물결, 눈길과 여인, 바다와 모자(母子), 달빛과 염부가 만난다.
이처럼 작가는 심미안이 이끄는 대로 자신을 내맡겨 우리의 자연을 재해석해내고 있다. 야성의 자연이란 본래 거칠고 투박하며 사나워야 할텐데 그가 보여주는 야성에선 오히려 공들여 가꾼 듯한 유려함이 먼저 느껴진다. 이 역시 그가 자연을 심미적인 태도로 마주하고 있음의 반증일 것이다. ● 이러한 태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눈 덮인 산길이나 해변에서 마주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공간을 지배하는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풍경의 일부처럼 등장한다. 작가에게 자연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모습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길거리에선 우연히 만난 사람이나 소금을 나르는 염부 모두가 그에게는 심미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달빛이 스미는 새벽, 염전에서 소금을 퍼 담는 염부의 모습은 이러한 작가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노동현장에 대한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의 형식과 달리 그는 노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서정적인 자연풍경에 통합시켰다. ● 그렇게 해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자연과 삶, 양자의 매개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심미적 해석으로 제시했다. ■ 박평종
연민의 흔적 ● 겨울 강은 얼어 있었다. 살그락 살그락 얼음 깨지는 소리를 보았지만, 그 소리가 그를 평생 이끌 것이라는 사실을 사진 찍는 이규철 그 자신도 몰랐다. '가출'에 대한 욕망을 처음 감지하던 날의 풍경은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남아 있지만, 여덟 살 소년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지금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 전주 봉동 외가에서 대구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버지가 앞서고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그가 뒤를 따랐다. 저 다리 하나만 건너면 모든 건 '일상'이다. 그는 갑자기 등을 돌려 겨울 속으로 무작정 걸었다. 그렇다고 해서 외가 쪽 방향도 아니었다. 눈물이 흘렀다. 물론 어머니가 그를 발견해 무사히(?) 돌아왔지만, 그의 영혼은 늘 길 위를 서성이곤 했다. ● 첫 가출을 감행하던 그 날이 실은 그에게는 외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혹여 그 일은 소년이 막연히 감지할 수 있었던 '인연'과 '관계'에 대한 연민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탱고의 거장 아스트로 피아졸라가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안에 있는 두 개의 영혼 중에서 생각하는 영혼이 행동하는 영혼보다 더 멍청하고 늘 늦게 찾아온다"고. 길을 나서는 이들을 이끄는 것은 예민한 소리다. ●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우리에겐 몹시 행복한 일이지만 그건 천형(天刑) 같은 것이다. 그의 사진에서 나는 '소리'를 본다. 때때로 여덟살 소년의 눈에 들어온 '살그락살그락'깨지는 얼음 소리처럼 말이다. ● 누구나 자기 안에서 부딪히는 예민한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그 소리를 따라 나서는 이는 드물다. 채 거두어들이지 못한 배추밭에 눈이 쌓인 검푸른 날, 나는 믿는다. 그 쓸쓸함이 그를 기어코 세상 밖으로 밀어냈다고. ● 이처럼 '낮은 것들에 대한 시선'을 견지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도 그가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놓치지 않았음을 안다. ● 여기 놓인 사진들은 우리 땅 구석구석에서 울리는 소리를 따라간 '연민의 흔적'들이다. 특히 그의 가출 혹은 여행길에 동반한 소리는 한국을 포함한 우리가 주변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제3세계 음악들이다. 특히 쿠바의 오마라 푸르토 운도(Omara Portuondo)의 '플로르 데 아모르(flor de amor)'는 눈 오는 정선 길을 같이 밟은 음악이다. 흔히 쿠바의 국보급 여가수 인 그녀를 두고 '낙관을 품은 애절함'이라 평한다.
그의 사진에도 이런 '낙관을 품은 애절함'이 담겨 있다. 쓰르륵 쓸어내는 파도소리를 닮은 듯한, 뒤돌아보고픈 마음을 애써 숨기며 걷는 산 길 위의 여인, 잠들지 못하는 태백시 철암면 탄광촌의 막막한 겨울밤, 밤새 내린 비에 몸을 눕힌 풀들의 뒤척임 같은 것들 말이다. ● 또 이곳은 어떤가. 저녁별이 돋을 때까지 끝나지 않은 염전의 고된 노동은 이 염부는 분명 달빛의 노래를 들었으리라. 그러나 슬픔이 묻어나는 검푸른 빛깔 안에는 어쩐지 알 수 없는 달콤함도 묻어난다. 그의 세상에 대한 관심이 결코 슬픔이나 절망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뜻일 게다. ●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견디어 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빛에 대한 그리움'과 '따뜻함'으로 이 고단함과 화해하고 있다. '연민'은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공통적인 연대감이 아닐까. 중국의 작가 위화도 '살아간다는 것'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간다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 그의 사진이 태생적으로 매우 '음악적' 일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그는 음악보다 더 음악적인 장르가'사진'이라고 믿는 듯하다. ● 아마도 그는 길에 대한 욕망, 가출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가 길 위를 서성이길 바란다. 음악이 우리를 달래주듯, 그의 작업 역시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 천수림
Vol.20070831c | 이규철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