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승 수묵채색展   2007_0829 ▶ 2007_0904

유희승_흥취 Inspiration_화선지 천배접, 먹, 석채, 금분_190×30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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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829_수요일_06:00pm

동덕아트갤러리 A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8번지 동덕빌딩 B1 Tel. 02_732_6458 gallery.dongduk.ac.kr

현대 사회의 이중성 - 그 전통적 표현 ● 서양미술도, 동양미술도, 그 근원은 자연의 재현, 형사(形似)였다. 일세기에 걸친 서양식 교육의 결과, 한국의 추상일변도의 화단은 구상에 근거한 작가를 찾기 힘든 형편이어서 전통과의 단절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올해 세계 비엔날레를 보면, 한국화단이 세계화되어 세계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2007년 카셀의 도큐멘타는 구상으로도 현대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담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어, 우리의 추상은 너무나 심정의 변화에 경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독일의 'skulptur projekte muenster 07(2007.6.16-9.30)'의 조각이나 그 이전의 조각이 도시와 잘 어울려, 마치 그것이 옛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과 잘 어울리는 것이나'Documenta Kassel'의 작품들이 삶과 과학과 어우러지면서 미술만의 다양한 시각으로 사회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 등은 우리의 미술이 고층화, 대량화되어가는 현대산업 도시의 자연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나 카셀에 중국작가들이 많이 초대받은데 비해 우리 작가가 초대받지 못한 것 등을 볼 때, 아마도 교육투자 면에서 세계적일 듯한 한국에서, 한국 미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고 우리미술을 반성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 미술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유희승_응시-空Ⅰ Gazing-Emptyness_화선지 천배접, 먹, 석채, 금분_200×268cm_2007

사랑-미 ● 플라톤은, 미는 사랑(eros)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우리 미술의 큰 숙제는 바로 우리가 자기, 자기의 사회, 자신의 국가를 사랑하지 않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미(美)는 없다. 우리미술의 현주소는, 하나는 우리가 우리문화를 사랑하지 않아 우리의 사상과 방법을 전수하지 않고 개발하지 않아서 생겼을 것이요, 다른 하나는 한자교육부재 때문에 한자로 된 우리문화가 묻혀서 일 것이다. 가까운 일본이 80년대부터 한자교육을 강화하여 교육의 효과를 거둔 것은 '가나'라고 하는 문자의 특성상 그렇기도 하지만, 그러나 한자가 상상력을 키워준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유희승_응시-해탈 Gazing-Emancipation_화선지 천배접, 먹, 석채, 금분_200×308cm_2007

천공(天工)과 청신(淸新): 문제는 소동파가 자신의 유명한 시의 시작에서 "형사(形似)로 그림을 논하는 것은 아동과 같은 것이다. ...시(詩)를 지으면서 반드시 이 시이다고 하는 것은 정녕코 시인을 아는 것이 아니다. 시와 그림은 일률(一律)이요, 천공(天工)과 청신(淸新)이다"라고 했듯이, '천공'과 '청신' - 수잔 부시는 이것을 '천재와 독창성'으로 해석했다-, 이것이 예술을 좌우하고, 이점은 어느 예술이나, 동서고금이 같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이 예술의 역할중 하나는 전달이다. 문인화나 톨스토이의 말에서 보듯이, 인간에게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출하려는 의욕 외에도, 그것을 전달하려는 의욕이 있다는 것이다. 1960-70년대 이응로나 남관 등의 작품에 문자가 씌어진 것도 문자만한 언어가 아직 창출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고, 이것은 시(詩)·서(書)·화(畵)를 한 화면에 담아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완벽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우리문화의 한 단면이었을 것이다. 칸트가 말했듯이, 예술의 제일 특성은 독창성(originality)이지만, 보편타당해야한다. 사실상 '독창성'과 '보편타당성'은 예술이 지녀야 할 동전의 양면이다. 상술했듯이, 소식은 독창성을 '청신(淸新)'이라고 말했다. 맑으면서도 항상 새로운 것, 그러나 누구나 공감하는 것, 이것이 예술이다.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사회는 예술가를 대접한다. 우리 작가에게 청신은 있는가? 청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고 묻고 싶다.

유희승_풍자 Joke_화선지 천배접, 먹, 석채, 금분_130×200cm_2007

유희승의 회화세계는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우리를, 그리고 한국의 여성을 보여준다. 그녀의 주제나 사색하는 모습은 여성적이고 조심스럽고, 수묵과 먹의 사용과 색, 인물의 표현은 다분히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이다. 필자에게 눈에 띄는 것은 작가의 주제요, 그 표현방식이다. 이 땅의 젊은이답지 않게 그녀는 보수적·전통적이다. 적극적인 현대의 젊은 여성과 달리 그녀는 우리를 고요히 응시하거나, 탈이라든가 승무(僧舞)의 고깔, 피에로의 복장 또는 화장 속에 숨어서 숨겨진 현대인의 복잡성이나 이중성을 응시하고 있다.

유희승_응시-空 Gazing-Void_화선지 천배접, 먹, 석채, 금분_163×175cm_2007

소극적이나 이중적인 인간: 그녀의 그림은 현대인으로서, 그녀가 사는 모습의 반영이지, 그것에 대한 해답이 아니다. 현대인은, 특히 현대의 한국인은 근대인의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다중인격체일 것이다. 한국은 영국이 200년 걸린 현대 산업화를 40년간에 이루었다고 한다. 우리는 산업화를 위해 지난 40년간, 앞만, 그것도 경제발달을 위해서만 달려왔다. 그녀의 피에로 시리즈가 10여 년간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녀의 인물그림 대부분이, 화면 윗부분에 주제가 되는 인물의 두부(頭部)가 집중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그것이 그녀의 세상에 대한 마음자리의 불편함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우리도 그녀와 함께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고, 우리조차 그 공간으로 사라져 버릴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 그녀의 관심은「흥취」,「응시-해탈」,「화음」,「화음-율(律)」,「음양(陰陽)의 조화」,「응시-공(空)」,「응시-고뇌」,「응시-공허」,「시선-공(空)」과 같은 제목을 통해서도 간취된다. 작품에서는 인물의 수묵선이 주도하면서도 여백-공(空)이 강조되고, 세상에 대한 응시의 공허함을 말하면서도, 그녀의 응시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응시」작품들은 피에로의 빨간 코, 빨간 입술을 응시함으로써 어느 순간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추적을 멈추고 그녀의 다양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전한다.

유희승_응시-애수 Gaze-Sorrow_화선지 천배접, 먹, 채색_35×67cm_2007

먹과 먹면을 이용한 화면구성 ● 그러나 그녀의 조용한 조우(遭遇)는 우리의 병풍문화 탓인가, 모든 화면은 전통적인 비례의 여러 폭 그림으로 되어 있다. 현대 회화 쪽에서 보면, 이것은, 한편으로는 구성에 따라 다양한 그림이 나오게 하는 면도 있겠지만, 작가의 기획 역량을 줄이는 면도 있다. ● 그녀의 그림의 중요구성 부분은 먹-선염과 발묵-이요, 먹선이요, 먹 면이다. 이것은 그녀가 감성으로 주제에 접근하고 있음을 말한다. 화면은 전통적인 수묵선과 선염이 주도하면서도,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오방색의 청(靑)·홍(紅)이다. 선(線)으로 이루어지면서도, 전체화면은 먹면과 그림 화면이 같이 가고 있다. 그리고 그 먹면에는 마치 하늘의 색, 현(玄)의 색 같이 노랑 파랑, 빨강 등의 조그마한 점들이 산재해, 우리를 마치 검은 화면, 밤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을 느끼게 한다. 그럼으로써 이들 대상들은, 마치 이 세상의 대상이 아닌, 마이클 설리반이 중국의 산수화를 '영원의 상징'이라고 한 것처럼, 화면을 화면 밖으로 확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화면 넘어(beyond), 저 영원한, 거대한 공간으로 안내'한다.

유희승_응시-염원 Gazing-Desire_화선지 천배접, 먹, 석채, 금분_44×28cm_2007_부분

은현(隱現), 장로(藏露)의 미학과 개방공간: 동양화의 특색 중 하나는 은현(隱現), 장로(藏露)의 미학인데, 이것은 동양화의 공간이 서양화와 달리 개방공간이요 사차원적인 세계이기에 가능하다. 유희승은 여백을 이용하여 '숨김(隱·藏)과 드러냄(現·露)'의 미학을 조금이나마 시작하고 있다. 인물들의 생략된 하반부나 손, 그러한 그림의 결격사유를 그 옆 화면에 다양한 먹의 층차와 발묵(潑墨)과 선염(渲染)을 사용한 먹 면을 한쪽이나 두 쪽을 붙여, 그 먹 화면이 지지하게 하는 방편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인물화에서 중요한 것은, 고려불화에서 보듯이, 시선, 손끝, 몸의 방향이고, 그 방향에 의해 공간이 확대되고 있다. ● 현재 한국의 교육은 서양일변도로 진행되고 있어서 젊은 화가들에게는 서양이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한국의 현대인은, 피는 한국·동양이고, 정신은 서양을 지향(志向)하는 기형체이다. 그러나 유희승은 동양화의 전통적인 선과 먹, 여백이나 오방색을 사용하여 오늘의 우리의 상황이나 생각에 의문표를 던지고 있다. 그녀가 이야기하듯이, 우리는 모두가 이러한 이중적인 피에로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 김기주

Vol.20070830b | 유희승 수묵채색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