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애감에 대하여 On Pathos

이지연 회화展   2007_0822 ▶ 2007_0906

이지연_밤-바다-여행_캔버스에 혼합재료_91×116.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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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822_수요일_06:00pm

갤러리 벨벳 서울 종로구 팔판동 39번지 Tel. 02_736_7023 www.velvet.or.kr

나의 그림은 기본적으로 오래된 독서의 경험과 문학적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어릴 때 읽고 본 이야기'들에 대한 향수가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그림들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동화, 전설, 아더왕과 성배 이야기들(Arthurian Romance), 신화와 모험담의 각종 변주들. 내 그림들 안에서 주축을 이루는 소재와 이미지들은 이 이야기들에 대한 기억 속에서 살아 나온 것들이다.

이지연_파르치팔 (Parzival)_캔버스에 혼합재료_91.5×61cm_2007

'뚜렷한 형태가 없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텍스트들에 대한 삽화' 라고 내 작업을 정의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아니 앞으로 도 아마 그 정의는 유효하리란 생각이다. 내 그림 안에서 텍스트-원전-들이 해석되어 시각적 이미지들로 나타날 때, 그것들은 단지 한 개의 이야기-그림으로 보여 지지 않으며, 작업의 과정 속에서 복잡하고 불균질한 것이 되고 만다. 달리 말해, 내 작업은 경험과 기억 속의 여러 텍스트들이 돌출하고 섞이는 과정의 결과물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텍스트 없는 삽화' 일지도 모른다.

이지연_세계의 중심 part.2_캔버스에 혼합재료_76×76cm_2007

내 그림 속에는 몇몇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무엇을 열심히 쓰고 그리다가 잠시 창밖으로 눈길을 던지는 인물은 중세 필사본 미술가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이다. 비록 일정한 규범에 따라 베껴 쓰고 장식하는 일이었지만, 개인적인 해석과 필치의 차이를 나타낼 수밖에 없었을 필사(筆寫)의 과정처럼, 비슷비슷하게 주어진 삶의 과정을 살아가면서도 다른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또 다른 인물들은 수많은 영웅 신화, 로망스, 모험담 속에서 편력(?歷)을 거듭하는 주인공들의 현현(顯現)이다. 그들은 순례자, 여행자, 이주하는 자들이며, 신화 속 영웅들처럼 어떠한 욕구나 소명에 따라, 스스로를 구속하는 한계를 벗어나 저 너머를 향한 여정을 떠나는 이들이다. 그리고 매 작품마다 거의 빠지지 않는, 화면에 가장 큰 힘을 부여하는 위치에 놓인 동물의 이미지들이 있다. 그들은 초월과 변신의 상징이며, 태고로부터 인류와 함께 자연을 이루는 '대칭성의 한 축을 맡으며'(나카자와 신이치) 때로는 얼터에고(alterego)로서, 때로는 경외의 대상으로서 기능하며 함께 조화로운 세계를 이루었던 존재로, 인물들의 여정에 동참한다.

이지연_이주자들_종이에 혼합재료_65.5×50.5cm_2007

세상과 마주 선 기사-영웅, 책 또는 그림과 마주 앉은 필사가. 동물의 가면을 쓰고 변신함으로써, 기괴한 수문장이 지키는 관문을 통과하고, 정체불명의 조력자를 만나고 이러저러한 고역을 치르는 것. 또는 깊은 숲 속이나 마음 속 어두운 방 안에서 명멸하는 생각의 파편들을 꿰어 맞추는 수고로움과 괴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 이렇듯 내 그림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모티브는, 갖가지 신화 체계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 - 한 젊은이가 통과 의례와 자기 적멸(寂滅)을 통해 더 큰 세계로 상승하고자 하는 - 의 원형을 표현해 보고픈 욕구에 기인한다. ●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 주는 가교인 것이다. ...관문과 관문을 차례로 지남에 따라, 영웅이 고도로 갈망하는 신의 모습은 점점 커져, 이윽고 우주 전체에 가득 차게 된다. 영웅의 마음은 마침내 우주의 벽을 깨뜨리고 모든 형상의 경험을 초월하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변의 空에 대한 자각이다."(조셉 캠벨 Joseph Campbell,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이지연_숲 속으로_캔버스에 혼합재료_46×61cm_2007

한편으로 그림 속 인물들은, 내가 이해하는 '예술가/작가'의 알레고리이자, "그의 화폭에 줄기차게 등장하는 Quest-motive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재현(전예완)"이라는 내 그림에 대한 지인의 해석처럼, 그림들을 그리는 나 자신을 그대로 투영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어쩌면 세밀화적인 장식들, 세심하게 묘사된 이미지들, 즉흥적인 드로잉들을 계속 그리고 지우고 덧칠하며 그림마다 거듭하는 나의 행위 속에서 나타나는,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고 어느 순간 뒤섞여 버리는 요소들은 오랜 세월 동안 변형되고 흩뜨려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의 원형 -그러나 어디에도 있을 법하지 않은-을 다시 추적해 들어가려는 욕망의 결과들일 것이다. 그림 그리는 행위는 결국, 그 종착점에 가 닿기까지의 부단한 여정일지 모른다. ● "근원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자화상은 수도승의 모습을 띤다. 덧칠하기를 통해 원형을 '드러내야' 하는 불가능한 임무. 이것이 예술가의 소명이다."(전예완)

이지연_비애감에 대하여_종이에 혼합재료_25.5×18.5cm_2007

내가 이렇게 조금씩 다르면서도 비슷한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변주하게 만드는 동인(動因)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왜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줄기차게 반복하는가. 일련의 '순례자-필사가 연작'(편의상 지칭하자면)을 막 시작하려 할 즈음, 나는 유년의 기억과 독서-문화적 체험을 그림에 불러 오는 일의 의미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 "몇 겹의 필터를 통해 본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의 이야기들은 나에게 있어 최초의 트라우마(trauma, 外傷)였다. 나는 매혹됨과 동시에 깊은 상처 또한 안아야 했다. 그런 이야기 속의 슬픔을 느끼면서 동시에 이 감정이 요원한 무엇을 향해 내지르고 버둥대는 외침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유리되어 있고, 가로막혀 있고, 고립되어 있으며 외롭다는 것을 알았다. ...그 근원적 고독감이 어쩌면 내 작업의 발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이지연)

이지연_사냥꾼_종이에 혼합재료_25.5×18.5cm_2004

이 시기는 캠벨(Joseph Campbell)의 신화학의 영향을 받기 전이었으므로, 말 그대로 본능적이고 개인적인, 내적 필연성으로 작업을 대하고 있었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시간과 경험이 쌓여갈수록, '화살처럼 꽂혀오는 어떤 강렬함'의 개인적 느낌이 좀 더 큰 틀로 확장됨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이야기-서사를 담금질하거나 현상을 냉철하게 바라봄으로써 본질을 꿰뚫는 수많은 예술작품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줄기,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한 지점에 대한 일종의 공통감과 연관을 맺고 있다는, 미약하나마 나름의 통찰을 얻게 된 것이다. ● 나는 그것이, 결국은 현상과 세계를 오롯이 홀로 마주하면서 느끼는 낯설음과 괴리감을 극복하고 그 불가해한 구조에 부단히 질문을 던지는, 무수히 많은 비근한 삶들에 대한 '비애감'이라고 생각한다. 저 옛 신화 속 바리데기와 파르치팔(Parzival)의 모험으로부터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와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소설까지, 드가(Degas)의 날카로운 그림들로부터 '내용 없음, 의미 없음'을 힘주어 말하는 정수진의 호두와 박카스병 그림들까지도 내포하고 있는.

이지연_바리데기의 여행_종이에 혼합재료_42.5×64cm_2004

(자칫 아슬아슬한 일반화일지언정) 나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중이다. 그리고 당연히 나 또한, 그 비애감의 정서를 나타내려고 하는 욕구로 내 그림들을 지금껏 힘겹게 이끌어 나가고 있다. 자신의 한계점을 밀어내고, 거듭되는 시험과 관문을 통과하고, 내면의 심연으로 들어가 답을 듣기 위해 애쓰는 우리들의 모습에 깊이 공감하며 그것을 그려 보고 싶다는 일견 단순하고도 절박한 이유가, 내가 그림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원인일 터이다. ● "삶의 원형들을 지금의 삶 속에서 계속 찾아보려 하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차라리 싸움이다. 우리는 책을 읽듯 세계를 읽을 수가 없다. 세계라는 책은 너무 크고 복잡하여, 그것의 구조를 곧 선명하게 드러낼 수 없다. ...나는 내 자신이 불행이고 결핍이다."(故 김현)이지연

Vol.20070823d | 이지연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