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소녀 省察記

황희진 회화展   2007_0822 ▶ 2007_0828

황희진_제자리 걸음_장지에 분채_72×104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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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822_수요일_06:00pm

스페이스 아침 서울 종로구 화동 138-7번지 Tel. 02_723_1002 mooze.co.kr

그녀가 보인다. ● 황희진의 첫 개인전. 안으로, 안으로 파고들며 자신을 꽁꽁 닫아건 채 작업을 해온 그녀의 작품들을 만나니 그림 속에 그녀가 보인다. 꽃의 얼굴을 하고 상처와 연약함과 두려움과 욕심과 고집을 안은 채 걷고 또 걷고, 명상하고 또 명상하고, 소통하고 또 아파하고, 두려워하고 욕심내는 그녀의 모습이. 그녀는 꽃이다. 오늘은 모란, 내일은 수국, 화려한 양란이고 우아한 국화이다. 아름답고 화려한, 꽃은 꽃이되 온실 속의 꽃이다. 온실 속에 머물고 싶어하는 꽃은 거칠고 험한 세상살이를 인식하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열망과 갈등의 자기애를 나타낸다. 온실 속에 머무르고픈 마음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다. 여기서는 각박해져 가는 인간 삶에 대한 슬픔이 엿보인다. 그 두려움, 하지만 아름다움을 선망함으로써, 그녀의 작품에서는 세상이 두렵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과 자기 성장의 욕심이 흘러나온다. 쉬지 않고 걷고, 명상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제자리인 듯 반복되는 느낌의 '제자리걸음'에서는 성장에 대한 조바심까지 묻어난다.

황희진_그들과 나_장지에 분채_72×78cm_2007

세상에 대한 두려움, 교감하고 소통하고 싶은 욕망, 열망과 갈등의 자기애, 정적이고 고요한 삶의 지향, 아름답고 싶은 욕심, 끊임없는 명상, 자기 위치에 대한 불안과 조바심, 베풀고 싶은 소망과 그 모습이 자아도취가 아닐까 우려하는 자기검열, 서로 모순적인 수많은 다중 자아를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그대로 들이미는 모습에서는 약지 않은 천진함이 느껴진다. 방어벽이나 유들유들함을 지어놓지 못한 그녀는 그런 모순들이 맞부딪히며 생겨나는 생채기에 아파한다.

황희진_영원한 관계_장지에 분채, 방해말_118×91cm_2007

천진함. 살면서 그렇게 변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려는 모난 부분에 대한 끌질과 망치질이 왜 없었으랴 만은 그대로 여전한 그녀의 고집과 꼬장꼬장함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세상에 방어하듯 거친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표현된다. 깊고 고운 색채 때문만이 아니라 그 속의 진정성이 드러남으로써 보는 이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이다. 그런 표현은 특히 여성적 감수성을 자극하며, 자신을 옥죄는 절실함과 아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신을 검열하는 자기시선 등에 공감을 불러 일으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계급이나 사회 문제 등 거시적인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세상과 담쌓으며 자기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그녀의 그림은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타인과의 교감과 소통을 이루고 있다. 자신을 직시하면서 그대로 표현한 그녀의 솔직함이 소통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런 진정성은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서도 엿보인다.

황희진_다중자아_장지에 분채_130×97cm_2007

호분을 올린 후 밑색을 칠하고, 색을 섞어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완성하고자 하는 색의 반대되는 색을 칠하고 그 위로 다시 층층이 색을 겹쳐 올려 스며들고 쌓이면서 깊은 색감을 만들어내는 진채 기법은 오랜 시간과 노고를 필요로 한다. 상처 입기 쉬운 연약함과 말랑말랑함, 아이 같은 천진함이 이런 채색화의 형식에 이르면 수련과 연마로 자신의 고통을 다스리는 장인정신이 된다. 장기간 끊임없는 반복과 공을 들여야 하는 형식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가 자신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 되어 버린 것을 의미한다. 사용하는 재료와 한 켜 한 켜 칠해가는 채색의 기법을 통해 자기애를 수련의 방식으로 드러냄으로써 성장을 향한 욕망과 변하지 않으려는 고집을 승화시키고, 깊은 색채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구현한다. 노고를 필요로 하는 장인정신으로 스스로의 사유를 표현하고,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에 근거하여 현대에 살고 있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아이 같은 천진함, 진정성과 자기 수련, 고통 속에서 자신을 단련해 나가는 꼬장꼬장한, 그러나 어른스러운 고집, 그러한 것들이 합쳐져서 아름다움이 생겨나고, 그런 수행을 통해 그녀는 아니 꽃은, 꽃을 버리고 다른 꽃이 된다.

황희진_헌정_장지에 분채_104×72cm_2007

호분을 곱게 갈아 아교분을 넣어주면서 손으로 치대고 손가락으로 계속 문지르는 채색화 밑 작업의 촉감은 그녀의 그림에서 묻어날 듯 곱다. 그녀의 그림은 곱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자신의 동경, 열망을 표현하지만 그림 그리는 자세는 절대 곱거나 아름답지 않다. 그런 자세를 고집하는 그녀의 방식에서 그녀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얻게 된다. 천진하고 투명하게 자신의 마음과 말랑한 부분을 내보이는 그녀의 내용과 고집스런 형식의 조화, 두 가지의 만남, 두 가지의 공유가 그녀에 대한 믿음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황희진_교감_장지에 분채_118×91cm_2007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이 될지, 서늘한 불꽃이 될지, 푸르게 날이 선 칼날이 될지, 서슬퍼런 죽비가 될지, 날카로운 싸늘함이 묻어날지, 넉넉함이 배어날지, 혹은 개인의 아픔과 관계에 대한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어 붉은 피를 흘리는 꽃과 상처를 아름답게 보여주며 우리와 소통하려 할지. 그런 기대감을 모두 품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그림 속에서 이미 그런 상반된 내용과 느낌들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피어나든지 간에 그 결과물이 어떤 식으로 건 우리의 영혼에 닿아 파장을 일으켜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림의 선, 색, 면, 질감, 분위기.. 이들을 보고 있자면 그 속에서 수많은 가능성들이 꼼지락 대는 것이 느껴진다. 그녀의 첫 개인전은 그녀와의 소통을 통해 날 것의 정서, 감수성, 느낌, 촉감.. 그런 것들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다음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까지 안고 가게 만드는 그런 전시이다. ● 그녀가 보인다. 그 속에 황희진이 보인다. ● 그리고 그녀가 기대된다. 변치 않으면서 단단해지고 성숙해질 그녀가. ■ 곽경윤

Vol.20070821a | 황희진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