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다빈치기프트 블로그로 갑니다.
미술을 통해 아프리카의 꿈을 들여다본다!
다빈치기프트 서울 마포구 서교동 375-24번지 그린홈 201호 Tel. 02_3141_9120 blog.naver.com/64091701.do
'21세기 문화지형도'를 쓴 작가와 대화하던 중에 중국미술이 세계시장에 부각될 수 있었던 이유를 듣게 되었다. 미국 정보기관의 작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들렸지만, 그의 이력을 보면 빈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이제는 무게의 축이 아프리카미술로 옮겨가고 있다고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아프리카관이 만들어진 것도 그런 과정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자신의 뿌리 찾기와 관련하여 유럽이 아닌 아프리카로 향하게 하는 것도 아프리카미술을 띄우기 위한 사전 단계라고 했다. 중국뿐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에 대한 여러 행위들이 결국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고도의 작전이라는 말에 왠지 기분이 씁쓰름해졌다. 중국미술의 호황에 최대수혜자가 중국화상(華商)이 아니라 미국화상(畵商)이었다는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20여 년 전부터 방학이면 트렁크를 들고 아프리카로 향했다. 지도에도 없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잊지 못할 경험들을 많이 가졌다. 트렁크에 하나둘 채워지는 조각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3년 전부터는 지인의 권유를 받아들여 회화를 수집하면서 또 다른 기분을 만끽했다. 조각처럼 그림에도 메시지적인 성격이나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어 그것을 찾아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냥 아프리카가 좋았다. 조각이나 그림에서 나는 사람냄새가 좋았고, 사람에게는 내가 갖지 못한 향기가 나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런데 미국의 아프리카공략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자신이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자본주의의 정체성이 돈이고 그것에 경계가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나 예술을 인간심성(心性) 한 부분으로 남겨두었으면 하는 속절없는 바램을 가져본다. ● "아프리카미술의 현장-숨겨진 꿈"이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행복의 다른 틈새가 보였다. 자료를 정리하고, 인터넷을 뒤지고, 화가들과 연락을 하면서 놀랐던 점은 화가의 사상이나 그림에 대한 내용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에 위로가 된다. 물론 언젠가는 거대자본을 앞세운 화상들이 이런 행복도 뺏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나아진다. 이 책에는 나라별로 유명한 작가 내지는 유망한 작가들과 인터뷰한 내용과 그림을 실었다. 만나보지 못한 작가들은 그림만 실었다. 50여개의 나라들 중에 1차적으로 11나라를 다루었고, 현대미술의 동향을 알 수 있는 몇 편의 글도 정리해서 올렸다.
시작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부족한 점이 많아 도록으로 내려고 했지만, 아프리카회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국내현실을 감안하여 용감(?)하게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생각은 각국의 현대미술 동향과 아프리카에서 열리고 있는 10여개가 넘는 비엔날레의 성격들을 분석하고 싶었다. 그러나 '숨겨진 꿈'이라는 부제를 달아놓고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이제부터는 관객의 몫이다. 다만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아프리카회화는 조각과 마찬가지로 예술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족이 문자가 없던 시절, 그림은 전통사상이나 위정자의 생각을 전달하는 메시지와도 같았다. 그림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읽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 그것은 숨겨진 꿈이 일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세계에서 꿈은 이미 꿈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지탱하는 구체적인 힘이 된다. 그 힘은 아프리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뿌리가 되는 개념적인 성격(identity),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서사적인 내용(tolerance) 그리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동력인(intention)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한 가운데에 아프리카미술은 기도의 내용이자 형식으로 존재하여 또 다른 꿈을 꾸게 하고 있는 것이다. ■ 정해광
지은이소개_정해광 ● 성균관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스페인의 마드리드국립대학(Univ. Complutense)에서 한국인 최초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89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15차례에 걸쳐 아프리카의 오지인 중서부를 주로 돌아다니며 수집한 조각과 회화가 500여점에 이릅니다. 그 중 카메룬의 '바문족 잔 조각'은 세계백과사전에 실릴 정도의 귀한 작품이며, 세계적인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작품만 해도 80여점이 있습니다. 지금은 대학과 교도소에서 문화철학과 인간학 관련 강의를 하면서 잠실에서 '갤러리 아프리카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마두는 "신이 인간을 떠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떠났다."고 말한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몸이 길쭉한 여인은 신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는 마음의 길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드라마틱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하늘에 맞닿은 탑과 같은 인간, 그녀는 신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세계로 내려오게끔 하는 계단의 역할을 하는 탑이다. 인간이 신에게 가까이 가거나 신이 인간세상으로 내려오게 하는 매개체가 바로 탑이라는 것이다. 이때 인간과 신을 맺게 하는 상징적 도구가 등장한다. 바로 그녀가 물고 있는 담뱃대이다.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향을 피우는 의식(儀式)과도 같은 것으로 연기를 함께 마신다는 것, 이는 인간과 신이 생명의 숨결로서 함께 호흡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여전히 신이 살아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신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그 이유는 신이 자신의 곁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곁에서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리아는 두 딸이 미술의 길로 접어드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캔버스에 자신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그녀가 붓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무겁게 누르는 이별, 슬픔, 고통을 만남, 기쁨, 행복으로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인간은 나약하지만 용기가 있고, 고통스럽지만 인내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원색의 강렬한 대비를 통하여 인간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표현한다. 매혹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하여 선과 음영의 분배를 간결하게 하고, 필요 이상의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함으로서 자신에 대한 이해를 유도하기도 한다. 정체성에 대한 주제가 숨겨져 있기에 그녀는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사용해서 그림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크리스토프의 그림에는 여자가 항상 등장한다. 이유를 물었다. 그는 "어렸을 때 누이들과 어머니 품에 있었던 것이 행복했다고 한다. 여자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릴 때면 같은 행복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그 역시 좋은 기억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보면 좋은 기억 하나가 좋지 않은 여러 기억을 덮을 만큼 누런 흙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어머니의 너그러운 마음처럼 보인다. 길에 널려 있는 보통 흙으로 작업을 했단다. 평범한 흙으로도 보기 좋은 작품이 나오듯이, 일상 역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값진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작가의 지론이다.
'아프리카의 피카소' 혹은 '포스트 피카소'라고 불리는 보템베의 작품을 보며 피카소 그림과 비슷하다는 말을 던졌을 때, 그는 "피카소는 피카소고, 나는 나다."고 했다. 그가 피카소를 좋지 않게 생각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피카소는 아프리카 조각의 형태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것에 담겨있는 의미나 메시지에는 안중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미술을 상품으로 본 피카소에게서 상인의 마음이 보였다고 한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 그림이나 조각은 예술행위이면서도 전통적인 사상이나 통치자의 생각을 알리는 언어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피카소는... 그러면서 그는 아프리카의 '색'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흰색은 시간상으로 대과거이면서 시조신과 연결되고 있다. 축제 때 몸에 바르는 흰색은 자신의 뿌리가 되는 시조신과 접촉하고픈 마음의 색이다. 노란색은 시간상으로 가까운 과거나 조상신을 뜻하는 것으로서 자기 마음속에 남아있는 추억내지는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색이다. 흰색과 노란색이 과거의 시간을 뜻한다면, 붉은색은 현재의 색으로 어려운 현실을 뚫고 나가는 의지의 색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검은색은 피할 수없는 숙명적인 현재의 시간과 생명 탄생이전부터 존재한 우주적인 시간을 내포하고 있다."는 해석에 아프리카 그림을 다르게 봐야할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글로버는 팔레트 나이프를 통하여 색채자유주의라는 독특한 화풍을 연 작가이다. 색채자유주의란 나이프를 통한 반복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운동감'과 기름의 작용을 극대화 시킨 '색감'을 아프리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가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시장이나 원색의 옷을 입고 나들이 가는 여자를 중심 테마로 삼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가 않다. 그러면서 그는 색채자유주의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심상(心象)을 역설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군중의 모습은 무질서하지만 역동적이고, 여자는 화려한 옷에 갇혀있지만 생동감이 있다." 인간의 행위와 욕구를 색으로 풀어내는 색채자유주의는 인간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 차례_수록작가 가나 Ghana-글로버 Ablade Glover 남아프리카공화국 RSA-요카 Yoka Wright 말리 Mali-우마르 Oumar Kamara 부르키나파소 Burkina Faso-크리스토프 Christophe Sawadogo 부르키나파소 Burkina Faso- 아메드 Hamed Ouattara 세네갈 Senegal- 마마두 Mamadou Wade 세네갈 Senegal- 비람 Biram Thiombane 수단 Sudan- 아마르 Salah Ammar 우간다 Uganda- 폴 Paul Ssendagire 콩고공화국 Congo- 세르지 Serge Mienandi 콩고민주공화국 DRC- 레마 Lema Kusa 콩고민주공화국 DRC- 보템베 Roger Botembe 탄자니아 Tanzania- 릴랑가 Georges Lilanga
Vol.20070819a | 아프리카 미술의 현장 1 / 지은이_정해광 / 다빈치기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