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노암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817_금요일_06:00pm
노암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3번지 Tel. 02_720_2235 www.noamgallery.com
화가의 시선 ● 자주 느끼는 거지만, 화가들은 본다는 사실에 특히나 민감한 것 같다. 물론 화가들만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본다는 사실이 보는 이와 보이는 것의 마주 대하는 관계가 아니라 원래부터 애매하게 섞여 있음을 화가들만은 동물적으로 지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에서 이다. 이러한 사실은 얼마 안 된 지금에서야 일반적으로 정당화되었고, 또한 사유되면서 나타나고 있으나 근대철학으로는 허용할 수 없었던 문제였다. 왜냐하면 근대에는 인간의 주체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보여 지는 것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감각하는 신체를 객관적인 몸으로 규정했다. 현대에 와서야 자신들이 보여 지지 않는 한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양한 철학이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껏 합리적 이성에 도움을 준다고 여겨졌던 화가들은 진즉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멀리 짚지 않고도 확인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시선의 교차를 확인시켜준 반아이크의 작품「아르놀피니의 결혼」이나, 벨라스케스의「라스메니나스」가 제작된 시대가 데카르트적인 시대 - 전자는 이전 사람이긴 하지만 - 이었음을 봐도 알 수 있는데다가, 훨씬 이전부터 대부분의 화가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는 점도 이를 충분히 뒷받침해 주는 증거가 된다. 여하튼 현대에 와서야 일반화되고 있으나, 우리가 알게 된 개념적이든 미학적이든 무언가를 본다는 것이 동시에 무언가에 의해 보여 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화가들의 공로로 인정해야 한다.
박지혜는 시선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앞서 말한 시선의 섞임을 그녀는 몸소 잘 이해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림에는 온통 시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림에서 시선의 흐름을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우선 그릴 때 화가의 눈으로 보여 지고, 그 다음 화가의 손에 의해 그려지는 모티브(대상)들이 화가를 보고, 세 번째로 관람자에 의해 보여 지고, 마지막으로 모티브들을 통해 보여 지게 된다. 말하자면 약간은 복잡한 단계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간단한 문제인데다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바인데, 보여 지고 보는 행위 내에서 만큼은 시선의 섞임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그림이 나를 보고, 나는 그림에 의해서 볼 수 있다." 세잔이 쌩빅투와르 산을 그리면서 "풍경이 나를 보고,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라고 항상 되뇌었던 말을 살짝 고쳐 쓴 거긴 하지만, 박지혜의 그림에서는 유난히 그러한 시선의 섞임을 잘 확인 할 수 있다. 잠시 여기서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본다는 것은 이성이나 정신에 의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지 눈에 의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 포함된 모든 것들은 이미 전부 시선의 주체이다. 외설스러운 목덜미, 가슴팍의 옷 레이스, 또는 머리를 한껏 올리고 있는 손도 보는 주체이다. 간혹 직접적인 시선을 피하기 위해 가면을 그린다거나 썬그라스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노트에 '거죽'을 그린다고 쓰고 있는데, 이러한 점에서 그 '거죽'은 실제 나의 피부와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여 지는 나의 다른 측면에 있는 시선으로서 작용하므로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도 없겠다.
시선을 주제로 그리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앞서 되짚었던 이러한 사유가 잘 드러나는 그림은 만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화가들이 시선의 관계를 몸소 체험하고 예민하게 잘 느낌에도 불구하고, 표현하려는 순간, 항상 그려지는 모티브를 완전히 파악된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실적인 기법을 고수하는 작가들에게는 이러한 난제가 더욱 풀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시선의 동적인 순간을 경직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박지혜는 유심히 쳐다봐야 할 작가이다. 그녀의 그림은 단지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시선을 잘 그리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그림을 시선이라고 명명했듯이 그녀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림에 가득 채워져 있는 시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다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말이다. ■ 박순영
Vol.20070817c | 박지혜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