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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817_금요일_05:00pm
2007 유엠갤러리 젊은작가 공모선정展
유엠갤러리 / 2007_0817 ▶ 2007_0827 서울 강남구 신사동 542-4번지 세비앙빌딩 B1 Tel. 02_515_3970 www.umgallery.co.kr
무심갤러리 / 2007_0904 ▶ 2007_0914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사창동 253-5번지 Tel. 043_268_0070 www.moosimgallery.co.kr
"여여(如如)"의 경계가 만드는 "연연(然然)"의 세계 ● 분홍빛 화면 가득 수많은 튤립 꽃송이가 부유하듯 떠있다. 화면은 거의 비슷한 크기와 색상의 평면적이며 반복적인 튤립 꽃송이가 만들어내는 배열의 절주, 즉 꽃송이의 방향성이나 아주 작은 차이의 집중과 확산에 의해 변화가 감지될 뿐 전체적으로 매우 평온한 정적인 세계 속에 있다. 그림 속의 튤립은 꿈같은 몽상에 의해 계속 반복 혹은 분열 확산되며 관객을 점점 비현실의 상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서국진의 작업을 형식적인 측면만으로 보면 20세기 대중문화의 선봉에 섰던 팝아트를 연상시키기 충분하다. 앤디워홀의 실크스크린「마릴린 2면화」에서 보이는 것처럼 튤립 꽃송이는 아주 작은 떨림의 변화만을 간직한 채 거의 동일한 이미지 형태로 반복 혹은 분열된다. 다만 앤디워홀의 마릴린이 격자의 짜여진 틀에서 물감의 농도차와 스크린 망의 굵기에 의하여 이미지가 변화하고 있다면, 서국진의 작업은 이미지의 배열이 보다 자유롭고 모필의 움직임에 따라 그 미세한 차이가 드러난다.
이러한 반복 혹은 분열의 양태는 서국진의 또 다른 연작인 접시꽃을 소재로 한 작업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접시꽃의 반복이미지는 한 화면에서 다양한 구조의 변화와 관계의 긴장이나 소밀로 표현되지 않고 독립된 다른 프레임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 이미지의 미세한 차이에 의한 끊임없는 분열은 계속된다. 만약 상하좌우의 공간 제약이 없다면 그 분열은 끝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도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서국진의 접시꽃 연작은 접시꽃의 이미지가 파괴되지 않을 정도의 가시권 안에서 한눈에 작품 전체의 이미지가 모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이미지를 반복 배열하고 있다. 단독 프레임으로 나타낸 접시꽃의 이미지를 좌우로 배열하든 아니면 상하로 배열하든, 관객이 최소한의 접시꽃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는 가시거리를 벗어나지 않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움직이거나 다리를 움직여 공간이동을 하여야만 한다. 작품이 걸리는 물리적 공간 밖은 이제 관객의 상상에 의해 복제, 반복, 분열되는 세계이다.
그러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서국진의 작업은 앤디워홀의 마릴린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나 기호(記號)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앤디워홀의 작업은 획일화의 시대, 복제의 시대, 대중문화의 시대의 대표적인 화려한 기호 혹은 상징 마릴린을 통하여 관객과 대중과 호흡하기 위한 코드를 만든다. 서국진의 작업은 이러한 대중문화의 코드와는 전혀 다른 개인의 체험과 인식론의 바탕위에 서있다. 그의 작업 안에서 접시꽃이나 튤립은 언제든지 다른 소재로 바뀔 수 있는 것들이다. 그에게 있어 접시꽃이나 튤립은 당시의 개인적인 기호(嗜好)에 의해 선택되어진 것들일 뿐, 소재 자체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이 그의 작업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 그의 관심은 세상을 보는 작가의 눈과 그것을 보여주는 형식의 표현방식에 있다. 그가 표현하는 세계의 인식론적 기초는 동양적 심학(心學) 전통에 매우 가깝다. 그의 작업은 객관적 세계에 대한 반영이나 재현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인 심적 상태에 대한 기술(記述)에 가깝기 때문이다. 튤립에 대한 관조 속에서 튤립이 작가의 인식에 들어오는 순간, 튤립이외에 다른 사물은 그의 인식의 범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즉 주관적 나와 객관적 사물사이의 거리가 소멸된 상태로의 몰입과 그 예술적 감흥을 수없이 복제된 아니 반복과 분열로 이루어진 이미지로 표현한다.
서국진은 이러한 몰입의 상태를 "연연중(然然中)"이라 명명한다. 사물에 대한 인식에서 인간의 문화적 논리와 이성적 사유가 제거된 상태를 스스로 그러한 상태, 자연의 본래의 모습이라고 여기고, 그러한 상태의 순간을 그렇고 그러한 상태의 순간이라고 부른다. 언어와 논리를 초월한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새롭게 명명한 이 개념은 사실 유식(唯識)에서 세계를 해명하는 진여(眞如)와 생멸(生滅)의 두 가지 방식 중 일심의 본질적 측면을 강조한 진여의 개념과 유사하다. 진여는 여여(如如)나 여실(如實)과 같은 말로 모든 법의 실상을 나타내고 있는 '있는 그대로'의 존재양식을 진리로 생각하고 어떠한 특수한 원리에 근거한 진리를 배척한다. ● '있는 그대로'의 존재양식을 천연이나 자연이라 부르고, 이 자연을 모든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사유방식은 적어도 한중일 삼국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인식론의 기초였다. 이때 자연은 물리적 환경이거나, 그 물리적 환경을 가능하게 하는 이치를 의미하며 인간의 인식활동보다 선행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우리가 판단하는 미추(美醜), 호오(好惡)의 가치 정당성은 '자연'이라는 선험적 조건에서 유추되는 것이며, 그 전제는 조화의 법칙이다. 이미 조화로운 세계 혹은 아무 선입견이 없는 그대로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점에서 이성이나 논리를 배제하고 직관을 사용하는 방법은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며, 또 다른 측면에서 예술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업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라는 점에서 그의 작업에 보이는 튤립이나 접시꽃 같은 형상적 이미지는 예술적 감흥을 이끄는 매개체의 역할을 할뿐, 그의 작업이 주는 궁극의 예술적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가 표현하는 예술적 효과의 전달은 대부분 색조에 의해 표현된다. 튤립이 보여주는 분홍의 환희나 접시꽃의 이미지에서 드러나는 검은 적막 같은 색조는 작가의 감흥의 정도와 관련되어 예술의 본질적 측면인 운(韻)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 이처럼 형식적 측면의 시대성의 반영과 내재적 사상의 전통에 대한 계승은 근대이후 한국의 화단이 고민해온 측면이라는 점에서 서국진의 작업은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방식을 보여주는 시사점이 있어 매우 주목된다. ■ 김백균
Vol.20070817a | 서국진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