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가는 길

김수진 수묵展   2007_0725 ▶ 2007_0731

김수진_새부처_한지에 수묵_60×32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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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25_수요일_05: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02_734_1333 www.ganaart.com

운주사는 신라말의 선승인 도선이 하룻밤 사이에 천불 천탑을 쌓았다는 전설의 절이다. 어느 절을 가보아도 대웅전에 모신 부처는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위엄이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운주사 계곡에 서있거나 벼랑에 흩어져 있는 돌부처들은 얼굴과 신체가 정상적인 균형을 갖춘 게 하나도 없다. 부처라기 보다는 그저 하나의 돌 같다.

김수진_산부처_한지에 수묵_30×55cm_2007

얼굴이란 감정을 드러내고 정체성과 개성을 반영한다. 눈은 마음의 미묘함을 드러내고 코가 없으면 추함과 사악함을 느낄 수 있듯 형상이 없다는 것은 감정의 불균형을 의미한다. 운주사 돌부처의 얼굴을 보면 조화와 균형이 파괴되고 변형되었다. 코만 크고 긴얼굴, 윤곽만 있는 얼굴, 그나마 마모되어 윤곽도 흐릿한 얼굴. -얼굴들은 얼굴이 아니다. 그러나 지워진 부처의 얼굴에서 부처를 느끼는 것은 왜일까? 아니 더 부처를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김수진_수묵부처_한지에 수묵_74×40cm_2007

운주사의 부처를 바라보며 수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지금의 수묵은 물로 풀어 쓰는 검정물감 같고, 산수 그림은 너무도 친근해 도리어 낯선 풍경화 같다. 마음속에 내재된 부처는 나무, 돌, 풀, 새에서도 찾을 수 있듯이 수묵의 부처는 산으로 가지 않고 일상의 모습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숯 그을음의 결정에 어떤 초과적 의미도 부여하지 않아 더욱 즐겁고 더욱 간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김수진_길부처_한지에 수묵_24×74cm_2007

그렇다면 나의 수묵의 부처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려도 그려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달래려고 운주사로 떠났다가 시작도 끝도 없는 미완의 돌부처 얼굴을 보며 어떤 수묵의 부처를 본 듯했다. 내가 찾던 수묵의 부처는 친근하기만한 풍경도 아니고, 단순한 검정색의 수단도 아니며 그저 일상의 모습을 부유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만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보다는 오히려 수묵의 붓과 손 사이의 긴장감 같은 것이 더 좋다. 수묵의 본질에 가장 솔직하고 단순하게 다가서고 싶어서이다. 운주사의 부처가 그냥 돌이듯이 말이다.

김수진_탑부처_한지에 수묵_75×23cm_2007

이것이 내가 운주사 가는 길에서 돌부처와 만난 수묵의 부처다. 변화하는 마음의 부처는 어디로 향할지, 어디서 가장 부처다움을 만날지는 운주사를 흘러가는 구름처럼 아직 끊없는 여정으로 남아있으리라. ■ 김수진

Vol.20070725e | 김수진 수묵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