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ve 山水-물 ,나무 그리고 깊은잠

안원태 수묵展   2007_0725 ▶ 2007_0731

안원태_wintersleep-nega5_한지에 수묵_210×41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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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25_수요일_06:00pm

2007 갤러리 라메르기획공모-Lamer New Artist

갤러리 라메르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Tel. 02_730_5454 www.gallerylamer.com

내가 바라본 자연은 인간에 의해 훼손되고 방치되어진 채 스스로 자생하고자 하는 애타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을 성찰하여 수묵의 관념에서 말하는 음양오행의 관계를 전복하고 이를 새롭게 수묵조형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으로 陰의 기운이 충만한 초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선 보이고자 한다. 먹과 한지위에 붓으로 그려진 전통적인 회화인 수묵산수이지만 제작의도나 방법에 있어서 기존의 전형적인 방법론에서 벗어나서 제작되고 수묵의 관념과 음양오행의 관점에서 양과 음의 조화가 아닌 음기를 많이 담고 있는 그림을 제작하기에 본인의 산수는 '陰의 山水', 즉 'negative山水'라 한다. ● 현재의 제작되어지고 있는 모든 작업은 미리 제작되어진 작업에 대한 크리틱이라고 했다. 모든 예술에 순수한 창작은 없다는 이 말은 상호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과 영향에 대한 변화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인에게 있어서 산수화가 바로 그러하다. 자연과 선인들의 그림에 대한 정보를 일러주었고 이에 대한 열정이 자연이 곁에 있듯이 항상 그러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연은 이제 더 이상 죽림칠현들이 은거하던 그러한 곳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에 의해 환경파괴나 오염으로 생태계의 기능과 자기조절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고 자연계의 균형관계를 회복을 위해 오랜세월이 소요되기도 한다. 자연과 인간의 구조적 기능적 통합체로서 상호관계는 그 조화로움을 잃은 것이다.

안원태_wintersleep-nega4_한지에 수묵_130×160cm_2007
안원태_wintersleep-nega10_한지에 수묵_130×160cm_2007

본인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자연은 그다지 흔하게 볼 수 있는 풍정이 아니다. 인간의 이기로 인해 자연의 일부분이 훼손되어진 것으로 수몰지구의 '물속에 잠긴 나무'를 그 모티브로 삼는다. 나무와 물은 산수화에 있어 주로 등장하는 소재로 오랜 세월동안 그려져 온 만큼 나무가 지닌 상징성과 물이 지닌 의미는 예술적 의미와 더불어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물속에 잠긴 나무이미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자연계의 균형의 조화로움을 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선대부터 형성되어진 나무와 물의 상징체계나 성격의 개념자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 바로 이러한 점을 주목하여 본인은 수묵화로 물속에 잠긴 나무를 그린다. 수묵회화는 동양사상의 요체가 집결되어진 회화로써 그 사상적 배경에는 음양오행의 흐름이 수묵조형 속에 포함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음양오행속의 나무와 물은 서로 상호 상생관계에 있는데 수몰지구의 잠긴 나무는 물속에서 죽음으로 이르는 완전히 상반되어진 의미로 나무와 물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외관상으로도 물속에 잠긴 나무는 엽록소의 파괴로 인해 하얀색의 나무로 탈색되어지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먹에 있어서 농담의 표현이 지닌 음양의 논리를 반대급부로 해석가능하게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기에 본인은 하얀색의 나무를 습한 기운의 陰氣로 해석하여 물과 더불어 음의 기운이 가득한 화면을 만들어 낸다. 결국 조화를 그 근본으로 삼는 동양회화에서 현대가 만들어놓은 대상의 상호 조화롭지 못한 자연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수묵의 조형성으로 해석하여 '陰의 山水', 'negative山水'를 제작하는 것이다.

안원태_wintersleep-nega11_한지에 수묵_130×160cm_2007
안원태_wintersleep-nega9_한지에 수묵_130×160cm_2007

작품의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물속의 나무'라는 습한 모티브를 농묵보다는 담묵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습하게 처리하여 화면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젖어있는 것과 같게 표현하였고, 이러한 방법으로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어서 寫景山水가 지닌 현실성을 상실하게 하였다. 결국 그려진 나무의 형체를 집중된 자연의 일부와 주위의 상징으로 여기고, 하나의 개체를 주변에서 빼내어 독립한 존재형체로서의 의미를 부여하여 여백을 통해 시각적인 집중효과를 유발하여 보다 靜謐한 상황을 연출 하였다. 습기는 나무속에 침투하여 나무를 더욱 습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나무가 지닌 양의 기운을 잃어버리게 하였다. 그리고 실루엣과 같은 하얀 그림자의 음하게 처리된 나무들과 여백과 검게 처리된 물은 화면의 강한 흑백(陰陽)의 조화로움으로 화면에 이중적 의미를 갖게 한다.

안원태_wintersleep-nega8_한지에 수묵_130×160cm_2007

물과 나무 그리고 깊은 잠 ● 물속에 잠긴 나무를 보았다. 고요하게 잠겨있는 모습이 죽어있는 듯,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물속에 잠겨서 나무의 본성이 변해져 버린 상태로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불현듯 수면이 제자리 진동을 일으키는 모습조차 그 나무의 생명의 맥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 물을 바라보며 깊은 명상속에서 내 가슴속의 울림을 들을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이입이 아니었다. 내 스스로가 내 가슴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나무와 물과 함께 서로 나누는 경험이었다. 물을 통해 물을 바라보며 가질 수 있는 시각적 여유는 내가 지닌 시공간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으로 물의 흐름이나 움직이지 않는 물 밑바닥, 강너머 그리고 먼 하늘에 이르기까지 공허해 졌다. 대상의 실체는 대상의 형상을 통해 나타나며 실체란 보통 그 사물의 본질, 사물이 그 자체로 있는 자기 동질성을 가르킨다. 즉비의 논리로 그 대상의 진실한 본질에 접근하는 것을 결국 대상을 초월하여야 하며 사물의 자기동일에서 그 실재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 검게 칠해진 물의 이미지들은 수평적인 죽음을 나타낸다. 물의 고통은 끝이 없다. 물을 응시한다는 것, 그것은 흘러간다는 것, 분해한다는 것, 죽어간다는 것이다. 나무의 기본적인 이미지는 생명을 뜻한다. 나무의 수직으로 뻗어 나가는 강하고 힘찬 생명력과 가지의 역동적인 힘의 확산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리는 나뭇잎의 율동미와 더불어 매우 아름다운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물속에 잠겨있는 나무는 그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의 죽음으로 이르는 모습은 물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와도 같다. 그림자들은 나무에 붙들려있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나 떨어져 나가면 죽어버린다. 즉 보다 어두운 죽음 속과 같은 물속에 가라앉으면서, 죽어버림으로써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스스로를 다 소모시켜버린 나무와 그늘을 빨아들여서 삼켜버리는 먹이 이상으로 어두워지는 물과의 관계는 나무의 생명과 그것을 삼켜버리는 「죽음」과의 관계와 꼭 같은게 아닐까 (「물과 꿈」, Gaston Bachelard, 1993.) ■ 안원태

Vol.20070725d | 안원태 수묵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