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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24_화요일_05:00pm
갤러리 우덕 서울 서초구 잠원동 28-10번지 한국야쿠르트빌딩 2층 Tel. 02_3449_6072
이우림- 숲길에서 꿈꾸다 ● 이우림의 그림은 정교한 사실주의에 기이한 상황성이 가미되어 있다. 거의 사진에 흡사할 정도로 사실주의기법으로 그가 그려놓은 대상은 정밀하고 산뜻한 묘사로 응집되어 있다. 그러나 각각의 대상들은 일관된 맥락아래 놓여져있다기 보다는 낯설고 허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 눈에 봐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트릭 같은 균열이 은연중 숨겨져 있는 식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구사하던 '뜻밖의 만남'같은 연출이 두드러진다. 그런가하면 동일한 상징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서로 연결되어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일종의 문장과도 같다. 한결같이 인물화와 사물을 그린 그림에 풍경이 덧붙여진 형국이다. 그것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나 드라마의 세트장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 자신만의 심리적인 드라마,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인물과 옷, 풍경, 빛과 그림자 등을 배치한다. 모종의 장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이자 그의 그림이다. 모든 그림은 현실로부터 출발해 그 현실의 내부에 가려진 부위를 드러내거나 볼 수 없는 그러나 분명 감지하고 느끼고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를 그려내는 일이다. 현실의 대상에 저당 잡힌 구상미술이나 사실주의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 눈에 보이는 부분에 상상으로 본 것을 결합해낸 그런 상상되어진 구상화다. 진부한 사실주의나 상투형의 구상화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의 하나가 이 같은 환상성을 가미하거나 초현실주의적 연출 내지는 미묘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상황연출이다. 최근 회화의 추이가 바로 이러한 경향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극사실주의에 환상과 초현실주의, 그리고 팝 적인 이미지가 결합되는가 하면 디지털시대에 따른 이미지편집과 재구성의 영향을 반영하는 자의적인 구성과 현실과 비현실의 착종 같은 기법과 방법론이 바로 그것이다. 거의 자폐적인 그리기에 판타지와 허구성의 미묘한 어울림은 동시대 미술문화의 초상이다.
작가는 '몽'이란 제목을 단 이야기그림을 통해 독특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 장면은 작가의 상상력/의도에서 나온 것이고 그 상상력이란 결국 작가 자신이 이해하는 현실과 비현실, 꿈에 해당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그와 동시에 구상화, 극사실주의를 유지하면서 이를 자기 식으로 변형하거나 독자적인 스타일로 만들려는 의도 아래 이루어진 그림이라는 인상이다. 그런 모든 것은 '몽'이란 단어에 내재되어 있다. 작가는 숲과 인간, 남자와 여자, 빛과 어둠, 사람과 계단 등 상반된 요소들을 배치하고 그 두 개의 다른 세계가 결합되어 파생하는 에너지(분위기나 느낌)에 주목한다. 그 에너지는 긴장감이나 낯설음, 이상한 혼란, 혹은 나른하고 몽롱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것은 분위기, 전체적인 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림에는 한결같이 숲과 출입문, 계단이 주 무대로 설정되고 빛과 어둠, 하늘과 숲, 남자와 여자, 단색과 원색의 꽃무늬 등이 대비되어 있다. 그것은 구체적인 장면이자 현실 장면인 것 같으면서도 그것과는 어딘지 어긋나 보인다. 이러한 장면연출과 상황성은 초현실적이기도 하고 몽롱하면서도 비현실감이 감도는 미
묘한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에서 나온다. 작가는 자신이 그림을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이상한 공간,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접점으로 들어오기를 권유한다. 인물과 꽃무늬 옷, 앵무새와 살찐 소파, 토끼 등은 보는 이들에게 궁금증과 호기심,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개가 된다. 그 매개를 징검다리 삼아 그림 안으로 들어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게 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그림에는 대부분 배경으로 숲이 등장한다. 모두 역광으로 비치는 햇살에 의해 숲의 경계는 녹아내리고 투명하게 부서진다. 반면 그 안쪽은 상대적으로 깊은 어둠과 심연을 드리우면서 더욱 짙고 캄캄하다. 그 사이에 인물이 돌연 출현해 자리한다. 그/그녀는 앉아있거나 뒤돌아서있다. 남자의 초상이 관자를 향해 얼굴을 보인다면 여자는 주로 뒷모습만을 보여준다. 어둡고 눅눅한 숲을 배경으로 하거나 그 숲을 향해 서있는 누군가의 모습은 자연과 영적인 교류를 나누거나 그 기를 흡입하거나 또는 내밀한 명상을 하는 중으로 보인다.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는 매우 짧은 머리에 동안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데 흡사 티벳 승려의 얼굴을 닮았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모호한 나이를 지닌 남자다. 그는 단독으로 혹은 한 쌍으로 계단이나 물속에 쭈그리고 앉아 있거나 숲을 등지고 있다. 남자의 초상은 초점을 잃거나 망연한 눈망울로 몽롱한 잠에 취해있는 듯, 꿈을 꾸고나 상념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오수를 즐기는 듯하다. 아니 한여름 낮 시간에 몽상에 잠겨있는 듯 하다. 그것은 일종의 구도와 상념에 잠긴 표상이자 동시에 현실과 비현실이 사이에서 경계에서 잠겨있는 그런 얼굴을 보여준다. 보여주는 얼굴과 감추어진 얼굴이 교대로 등장한다. 여자는 온몸을 화려한 꽃무늬 천으로 감싼 옷을 입고 있는데 그 패턴, 문양은 녹색/단색의 숲과 연관되어 그로부터 도출된 원색의 꽃들을 보여준다. 길데 딴 머리를 하고 숲을 향해 뒤돌아서있거나 앉아있는가 하면 계단에 누워있다. 숲에서 나온 손, 그 손이 마치 숲이 애무하거나 붙잡고 있는 듯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다. 여기서 자연은 의인화된다. 인간과 자연의 내밀한 교호와 은밀한 접촉, 교류는 이 그림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국 자연과 함께 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묵시적인 이야기다. 자연/ 생명체와 인간이란 존재는 분리되거나 유리될 수 없다. 여전히 인간은 자연을 통해 아름다움을 깨닫고 문명과 도시에서 비롯된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 비로소 명상과 휴식을 갖는다. 인간이 꿈꾸고 다른 세계의 비전을 갖는 것 역시 자연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우림은 그런 자연과의 내밀하고 비의적인 접촉과 만남을 통해 현대인이 상실하고 망각한 본원적인 힘과 영성을 새삼 환기시킨다. 그 안에 이미지의 주술성과 신비스런 힘에 대한 동경과 믿음이 얼핏 스며들어있다. ■ 박영택
Vol.20070724a | 이우림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