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빨리 늙어 버려줘

김대홍 개인展   2007_0721 ▶ 2007_0731 / 월요일 휴관

김대홍_대안공간 반디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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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21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051_756_3313 www.spacebandee.com

어느 날부터 귀가 어두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귓속에서 윙윙 거리는 소리가 거슬릴 정도로 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일상의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그 소리가 커졌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따귀를 잘못 맞아 귀를 맞았을 때 고막이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과 비슷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깐. 그간은 잘 몰랐으나 윙윙거리는 소음이 귓속에서 나면서부터 일상이 얼마나 청력에 많이 의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볼일을 보기 위해 밖에 나가는 순간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언제 뒤쪽에서 자동차가 올지 모르기에 아주 좁은 골목길이 아니면 항상 습관적으로 뒤 돌아보았고, 또 자주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위협에 시달렸었다. 지하철을 탈 때도 역시 항상 표지판의 글자에 집중해야 했고 무엇이든 편한 일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좁은 골목길이 몹시 편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도시에서 볼 일을 볼 때 차가 다니지 못할 만큼의 좁은 골목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단지 그냥 외국 사진에서 보던 넓은 잔디공원의 평온함과 여유를 소박하게 골목길에서 혼자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김대홍_대안공간 반디_2007

사람들과의 대화는 더욱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에 작게 울리던 윙윙거림이 스트레스였지만 그 소리가 커진 때는 대화 자체가 힘겨웠다. 상대에게 '뭐???' 혹은 '죄송한데 잘 못 들었어요.' 등의 말을 하기 시작했고, 더 상황이 어려워 졌을 때는 그러한 말을 두세 번이 넘도록 하게 되었다. 친한 친구나 동료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이해 혹은 배려 해주리라 믿고 요청할 수 있었으나, 처음 보는 이나 혹은 낯선 자리에서는 그런 말을 두 세 번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모르는 말을 아는 척하는 버릇이 몸에 배였고, 그 것을 알기 위해 여러 가지로 상황을 조합하거나 혼자 고민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 만나는 것을 꺼리거나 피하게 되었고, 또 만나더라도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 그로인해 나는 과묵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사람으로 각인되어 갔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나의 이미지가 실제의 성격인 것으로 단정 지어졌고, 그런 상황에서 나의 뜻하지 않은 실수나, 혹은 소심한 유머들은 꽤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었다. 웃긴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과묵함과 차가운 이미지가 놀랍게도, 나의 실제 성격으로 변하는데 불과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리 과묵하지도 그리고 차갑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친한 친구들과 만나면, 그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거울에 비치는 것처럼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변했다고 생각했었으나, 실제로 내가 과묵함과 차가움을 가진 성격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 결과 많은 친구들과 점점 사이가 소원해 지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아주 친한 친구들 외에는 형식적인 연락만 가지는 사이로 변해버렸다.

김대홍_드로잉_2007

내 스스로에게는 미안하게도 귀의 윙윙거림으로 인한 친구들과의 멀어짐, 사회생활의 불편함, 혹은 장애가 정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가끔 아주 친한 사람들만 만나기에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즉 장애가 아닌 그냥... 그냥의 불편함이었다. 그런 불편함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 크지 않았고, 또 그것을 빌미로 밖의 활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자기합리화하기도 편했고, 덕분에 스스로에게 양심의 가책이나 무능력에 대한 슬픔도 덜 느낄 수 있어서 좋은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 윙윙거림이 많이 커졌을 때 힘듦은 실제 다른 곳에서 만났다. ● 나는 고등학생시절부터 음악 듣는 것이 일상의 작은 행복이었다. 빡빡한 입시 일정 때문에 자주 듣지는 못했고, 매주 토요일 방과 후 내가 좋아하던 "Helloween" 앨범 A, B트랙을 듣는 것이 그 주의 고단함에 대한 하나의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즐겼었다. - 이때부터 곡을 듣는 것이 아닌 앨범을 듣는 습관이 생겼다. - mp3가 대중화된 지금도 CD나 LP혹은 카세트를 이용하고, 들을 때도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다 - 한 앨범을 다 들으면 대략 한 시간 내외인데, 일주일에 정말 한 시간 만큼은 여가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했었고, 그 시간을 기다리며 한 주 동안 틈틈이 토요일에 들을 음악을 기대하는 습관이 생겼었다. 지금은 그때의 작은 것에 대한 기대 따위가 왠지 순수해 보이고 어떤 때는 애처로워 보이지만, 그때 그러했던 설레는 기분은 지금도 지긋이 눈감으면 어렴풋이 느껴진다. ● 대학시절 주변의 동료들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고 음악을 하는 아주 친한 친구도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과 정신적, 혹은 감성적 공감대가 있었고 그것이 유대감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내가 하는 미술작업에 적지 않은 영향도 끼쳤다. 틈틈이 용돈이 생기면 학교 앞 레코드 방에서 앨범을 하나 사서 며칠 동안 꼼꼼히 듣는 것이 무척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모은 앨범이 꽤 많은 양이 되었고, 좀 더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어렵사리 구한 Sansui AU-517 앰프와 친한 친구 M의 조언을 통해 만든 노랗게 채색된 평판 풀레인지(full range)스피커도 긴 시간을 지나서 가지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함께하고 있다.

김대홍_대안공간 반디_2007
김대홍_대안공간 반디_2007

귓속의 윙윙거림이 커져서 밖의 생활이 어려웠을 때 이러한 음악의 위안은 정말 달콤했다. 하루 종일 좋아하는 레코드를 듣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그때의 흥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설렌다. 처음에는 하루에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16시간 이상씩 들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름대로 들을 앨범의 순서를 정하고 계획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들었다. 그러던 중 오랜 시간 듣다보니 체력이나 듣는 자세에 문제가 생겨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술도 줄이려고 애썼고 방의 모든 구조를 앨범을 듣는 것만을 위해 다시 배치하였다.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등받이 베게와 다리를 얹을 수 있는 쿠션, 소리의 반사를 위해 스피커의 위치조절과 가구와 책 그리고 다른 것들을 옮겨 놓았다. 모든 것이 듣는 것을 위해 배치되었다. 덕분에 한 번씩 찾아온 손님들은 산만하고 무질서한 내부에 대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 한 참을 지났을 때다. 나는 좀 더 쾌적하게 음악을 감상하기 위한 오디오의 기계적 세팅을 찾고 있었다. 적당한 볼륨이라고 생각되는 내가 가장 듣기 편안한 위치인 vol.15에 놓고 이퀄라이저를 조정하고 음의 반사를 위해 스피커 주변에 반사판이 될 만한 것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있었다. 친구인 M이 그러한 내 모습을 보고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이제는 그만하라고……. 사실 그때는 귀의 윙윙거림이 너무 커져서 대화가 어려웠다. 입술을 읽는 것도 대략적인 것만 알 수밖에 없을 만큼 서툴렀고, 또 내가 말하는 소리가 머리에 울리는 것이 너무도 불쾌해서 친구들과는 컴퓨터 워드를 통한 타이핑으로써 이야기하곤 했기 때문이다. 워드를 통한 대화는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만큼 자연스럽지는 못하지만 적당한 스피드도 있었으며, 구두 대화와는 달리 내용이 기록된다는 색다른 재미도 있었다. 자주 만나지 않는 이와는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하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이러한 불편함을 잘 모르지만, 친한 친구인 M은 그러한 나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상세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화를 못할 정도로 귓속의 소리가 커졌는데 음악은 무슨 음악이냐고, 불쌍하게 그렇게 소극적으로 지내지 말고 힘들더라도 극복하고 활동하라고……. 아마도 그러한 걱정의 말을 M은 '이제는 그만하라고…….'라는 말로써 대신 한 것 같다. ● 그러나 M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물론 M은 믿지 않았겠지만 대화나 사물에게서 나는 소리를 귓속의 소음 때문에 거의 들을 수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나의 노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음악만은 들린다는 것이다.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귓속의 윙윙거리는 커다란 소음이 과거의 그러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듯 거짓말처럼 아주 작게 들리게 하였고, 그로인해 나는 음악의 세밀한 부분까지 실제로 들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어떻게 스피커의 위치를 잡을 수 있으며 이퀄라이저를 만질 수 있단 말인가. 물론 M은 이러한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러한 상태는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에 이러한 상황을 설득 하는 것은 M에게 염려를 끼치는 것 같아 일부러 그가 올 때는 음악을 듣거나 기계를 세팅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냥 컴퓨터로 웹서핑 하는 척 할 수 있도록 웹페이지를 띄워 놓는 흉내를 낼 뿐이었다. 그러한 제스추어로 인해 M은 나에게 희망과 계기를 주려고 애썼고, 나는 그의 그러한 배려를 한 편으로는 감사해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귀찮아하였다. ● 그렇게 나름대로 행복함을 추구하며 만족스런 삶을 지내던 중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겨버렸다. 듣고 있던 앨범들이 서서히 지겨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지겹다'라는 단어를 쓰기는 미안했지만 솔직히 너무 많이 들었던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의 대부분을 앨범을 듣는데 투자했고, 일상이 음악을 듣는 것 위주로 짜이다 보니 1000장이란 많은 양의 앨범도 구석구석 신비함이 없어질 만큼 들었던 것이다. 하루의 일과 중 가장 주요하고 중요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니 자연스레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었고 하루하루가 그리 즐겁지 않고 짜증만 많은 날들의 연속이 되었다. 귀에서 나는 소음으로 인해 사람들을 만날 수 도 없었으며 지겨움으로 음악을 들을 수 도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 그렇게 지내던 중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앨범을 살 계획을 가졌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의 근래의 앨범과 그간 잘 접해보지 못한 클래식을 그 목표로 했다. 그러한 계획을 추진하기 위하여 책과 웹을 통해 정보를 수집해 나갔고 앨범의 목록을 만들었다. 또 그러한 목록을 만들면서 그간의 듣던 것과는 다른, 기대감이라는 설레는 행복을 느꼈었다. 뭔가 새로운 것은 항상 들뜨게 만든다는 것을 그간 잊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김대홍_대안공간 반디_2007
김대홍_드로잉_2007

그러나 중요한 일은 그때 일어났다. 막상 앨범을 구입하려 밖에 나가기가 망설여졌다는 것이다. 귀의 윙윙거림으로 인해 레코드 방까지 가는 것이 힘들어서가 아닌, 정말 친구M의 말처럼 내가 음악을 듣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 물론 M에게 설득 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새로운 것을 만나는……. 그것은 그때, 설렘 보다는 두려움 이었다. 새로 산 앨범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간의 나의 생활은 무엇이며, 나의 신념이든 무엇이든 간에 혼자만의 세월과 소중한 것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결국 나는 나의 공간의 입구 앞에 서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며칠간 이것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스스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무언가 중요한 문제를 혼자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잔혹한 일인가! ● 그 후 나는 새로운 앨범을 구입하는 것을 보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용기가 부족한 것을 그때 알았고 무엇이 더욱 소중한지 한 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나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새로운 앨범을 구입하는 것을 포기했지만 '지겹다'라는 미안한 단어를 썼던 예전의 앨범들을 즐겁게 다시 듣고 있다. 다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부분이 많았으며, 좀 지루한 곡이라고 생각 했던 것이 더 깊이 있고 흥미로운 면을 알게 되니 다시금 듣는 재미가 예전과 유사해졌다. 자기 위안을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스스로 의심도 해봤지만, 그렇지 않다고 할 만큼 확신에 대한 근거도 생겼다. 그렇게 해서 일상은 예전처럼 돌아왔다. ● 나는 M이 찾아오는 날만 빼고는 웹페이지를 켜놓지 않았고, 옆에는 오늘 들을 앨범을 순서대로 쌓아 놓으며 스피커와 이퀄라이저를 세팅하는, 다시금 모든 것을 음악을 듣는 것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만약 나의 이러한 고민을 누군가 알았다면 그 용기 없음과 스스로의 양심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비난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러한 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또 말 할 수 도 없었으며, 말한다 한들 뾰족한 수 도 없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때의 사건은 지금, 혼자만의 과거의 비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일상속의 평범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으며, 자연스레 밖의 활동을 하지 않다보니 주변 사람들은 과거의 추억 속에 단편적인 모습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 그때의 일로 인해 무언가를 좀 더 즐기기 위해서는 계획이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고 나는 그것을 즐겁게 대하기 위해 향후 몇 년간의 계획과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또 태도가 형태로 이루어지도록 만들 것이다. 지금도 스피커에서는 'Radiohead'의 'Let down'이 흘러나오고 있다. ■ 김대홍

Vol.20070722c | 김대홍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