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암진경 2001 - 2007

류장복 회화展   2007_0721 ▶ 2007_0820

류장복_2001.1.20 15:00 철암천변 정북방면_종이에 흑연_39×5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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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21_토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_2007_0721_토요일_05:00pm / 사생회화의 즉물성

태백 석탄박물관 건립 10주년을 기념展

후원_문예진흥위원회

태백석탄박물관 철암역갤러리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166번지 Tel. 033_552_7730

우리는 세계라는 거대한 구체의 안 쪽 면을 보기 때문에 결코 전체를 지각할 수 없다. 무한한 세계는 잠재성으로 존재한다. 마치 작은 물고기가 떼로 다니며 만들어 내는 거대한 상을 각각의 개체는 보지 못하듯이 절대타자로서 세계는 존재한다. 철암은 거기 그렇게 있다. 물고기 떼의 우두머리가 없다. 철새들처럼 한 마리가 선두에 서서 떼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세 가지 습성, 주변의 물고기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행동과 유영을 방해받지 않을 만큼 일정한 간격을 두려는 행동과 같은 방향으로 헤엄치려는 행동으로 몇 십만 마리의 물꼬기 떼는 자기조직화가 가능하다. 각각의 개체는 무작위로 자유로이 유영하지만 무리의 일부분으로서 결코 이탈하지 않는다. 철암은 일상은 그렇게 영위된다. 예술가라고하는 종이 하는 짓이란 각각의 개체들 사이를 헤엄치면서 언뜻 언뜻 비치는 전체의 상을 훔쳐보려는 것에 다름이 아닐까. 세계라는 거대한 물고기가 어쩌다 방향을 틀 때 몸통을 이루는 대열의 가장자리 틈으로 머리부분이 힐끗 보일 때가 있지 않겠는가. 뛰어난 예술가는 기꺼이 꼬리지느러미에 해당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전체의 윤곽을 더 온전하게, 더 자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예술가는 태생적으로 세계 내를 가로질러 세계를 넘보려고 하는 불온함을 품은 자일지 모른다. 나는 철암이라는 수면 위에 동심원을 만드는 소금쟁이다. ■ 류장복 '불온한 유영,' 2006.12.17 생활그림일기

류장복_2003.1.14 09:30-12:00 월천동_종이에 목탄_54×75cm

류장복은 철암이라는 장소를 이해하고 속성을 파악하고 그 분위기와 체취, 시간과 세월의 흔적, 나아가 그 대상으로 인해 파생되는 자신의 신체와 감각의 변화 및 인식과 호흡까지 그리려고 한다. 그러한 제작행위, 그림 그리는 태도를 그는 '생물'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생물적이란 말은 "대상에 대한 그리는 사람의 주관과 작위적인 개입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며, 이는 주체가 객체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식의 그리기가 아니라 대상 속에서 본질적인 것들을 일구어내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그린 철암 풍경은 자신의 신체적인 체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풍경이 지시하는 장소의 특수성과 작가의 신체가 결합'되어야 비로소 작품이 된다. 그런 면에서 그의 그림은 시각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통감각적으로 구성된 신체적 회화이며 생물적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박영택 2007 문화예술 325 Summer p.107

류장복_2003.1.14 12:45-15:20 월천동_종이에 목탄_56×76cm

류장복의 목탄은 겹치고, 문질러지고, 눌리고, 짓이겨지는 신체적인 과정들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정신과 마음을 드러낸다. 그가 강원도 철암을 사랑하는 모습이 한 예가 되고도 남는다. 그가 어떻게 철암을 만나고, 쓰다듬고, 애무해 왔던가를 보라! 그러면 금방 알 수 있듯, 류장복에게 대상은 없다. 관심을 갖고 다가서고, 애정을 쏟아야하는 상대가 있을 뿐이다. 철암을 방문할 때마다, 사실 그는 (그래서 자신의 것이기도 한) 인간사의 한 상징적 함축을 만나 왔던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철암을 그린 그의 드로잉들은 훌쩍 소박한 풍경을 넘어서, 역사와 문명, 폐허와 희망의 어둡고 밝은 생각의 결들이 수북이 쌓인 퇴적층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류장복은 사물을 아는 대신 이해한다. 보는 대신, 만지고 끌어안는다. 그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세계를 자신의 안으로 불러들인다. 류장복에게 회화와 드로잉은 '볼만한 세계(pitoresque)' 의 재현이 아니다. 류장복에게 세계는 결코 볼거리가 아니며, 볼거리가 되어서도 안 될 숭고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 "눈앞의 대상이 나를 본다. 나는 그를 마중하려하지만 목탄을 긋는 순간 그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나와 대상과의 거리가 사라진다. 목탄이 짓이겨져 부서진다. 목탄의 알갱이만이 감각할 수 있는 실재로 매순간 다가온다.(...) 최초의 자유가 거기 있다. 자유로운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시작의 자유다."(류장복) 작가와 세계 사이에는 우리가 '대화'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유사한 어떤 수평적이고 인격적인 교환이 있다. 이것은 가다머가 데카르트적 '방법'을 버리고 취한 '정신적 분별감(Takt)'으로 사물에 다가서는 것에 보다 해당되는 것이다. 이성이 아니라 직관을 인식기관으로 삼는 것이다. 세계 앞에서 류장복의 위치가 중요한 의미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류장복은 야외에서 그린다. 기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대상 앞에 실제로, 그리고 신체적으로 선다. "류장복은 자신의 화판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마저 철암의 대기에 내어 던진다.(...)미술가는 사유나 기억과 같은 삶의 영역들을 등 뒤에 잠시 내버려 둔다."(이희영) ■ 심상용 '조작되어있지 않음, 그리고 자신과 세계를 향한 진솔한 행보,' 2007.1 류해윤, 류장복 회화전 서문 중에서

류장복_2003.1.14 16:30-17:25 똥골_종이에 목탄_76×104cm

그림을 그릴 때 대개는 대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기억에 의존하기 쉽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더 짧은 순간에는 그리는 물리적인 행위와 더불어 감각만이 작동한다. 때문에 감각은 개념을 실어 나르는 수단이 될 수 없다. 감각과 개념은 불연속적으로 작동하는 두 가닥의 꼬인 선과 같다. 감각이 개념의 귀납적 수단이 아닌 것처럼 개념 또한 감각의 연역적 수단이 아니다. 감각은 또 다른 감각으로 이어지고 개념은 또 다른 개념을 부를 뿐이다. 순수감각의 물질성은 추상적 형상성에 항상 앞서 존재한다. 최초에 감각적 소용돌이가 있을 뿐이다. 최초의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시작의 자유다. 감각은 직관적 판단을 거쳐 사물 세계를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는 행위의 매 순간 일어나는 모종의 판단은 직관의 개입이다. 이는 대상의 외관을 분별하는 판명이기 보다 대상 그 자체를 인식하는 존재론적 방법론이다. 말하자면 '그리기'는 대상과 나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무화시키는 직관의 끌어당김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다. 그 사건은 자연세계를 이루는 사물, 생물들의 작고 큰 호흡과도 같다. 직관적 인식작용으로서 호흡은 감정의 무분별한 분출과 다르다. 언제나 사물의 유기체적 질서를 향해 이루어진다. ■ 류장복 2006.11 소마드로잉센터 개관기념전 도록p.143

류장복_2003.1.14 17:45-18:29 백화산_종이에 목탄_56×76cm

그러나 정작 작가의 그림 속에는 사람이나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빈 시가지와 빈집들, 버려지고 방치된 구조물들, 그리고 흑백의 대비로 인해 시커먼 선들이 그 골격을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산들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척박한 땅에도 어김없이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 낙엽이 지고 꽃이 핀다. 그 빈집들의 허름한 벽 안쪽에서는 아직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일상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고, 산의 시커먼 준령과 준령 사이로 난 골에서는 그곳에 뿌려졌을 이름 모를 광부의 분신이 바람에 묻혀 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작가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빈 흔적을 통해 한 때 북적거렸을 그네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인공의 흔적을 통해 죽은 자들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작가의 풍경 그림은 이처럼 그냥 풍경 그림이 아니다. 한 때 그 육질 속에다 사람들의 삶을 품었었을 존재론적인 그림이고, 이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정서적인 그림이다. 풍경이 삶을 대리하고 암시하는 이 일련의 그림들의 이면에는 존재와 부재와의 전도된 관계에 대한 인식이 놓여 있다. 즉 존재를 통해서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부재를 통해서 존재를 증명하는 식이다. 이때의 증명은 존재를 통한 증명보다 더 절실하고 각별하다. 즉 존재를 더 강하게 환기시켜준다. 류장복의 풍경 그림은 이처럼 정작 그 그림 속에는 그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의 존재와 그 삶의 흔적을 그림의 표면 위로 불러들인다. 이는 마치 하이데거의 전언을 상기시키는데, 대지 속에 숨겨진 진리를 대지의 속성을 훼손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세계의 표면 위로 불러내는, 보기에 따라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획을 상기시킨다(실존주의자인 하이데거에게 진리는 모순율과 부조리를 통해 가 닿을 수 있는 것인 만큼, 불가능한 기획 자체가 비논리적인것은 아니다). 석탄을 캐듯이 산의 감각적 표면을 뚫고 그 이면으로부터 발굴해낸 그 진리는 그곳의 산들과 작가와의 오랜 교감의 산물인 것이며, 마침내 산이 자기 속에 품고 있던 존재와 진리, 현상과 역사를 열어 보인 결과인 것이다.(...) 류장복의 그림에서는 이러한 자와 타의 구분이 없고, 주와 객의 결별이 없다. 대신 작가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대상과 자기 자신과의 상호연속적인 생물적'교감이 있을 뿐이다. 몸으로써 철암의 속살을 드러내고, 온몸으로써 철암 사람들의 서사를 밀고 가는 실천이 있을 뿐이다. 그의 목탄 그림은 마치 석탄으로 그린 것 같으며, 그 질감은 그대로 철암 사람들의 척박한 살림살이를 닮아 있다. ■ 고충환 '철암서사,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아이콘,' 미술평단 2005년 겨울호. 현장

류장복_2003.1.14 21:30-23:40 남동교_종이에 목탄_56×76cm

류장복은 자신의 회화 공간을 "생물"적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술어를 생기와 실재감 정도로 연결해 보지만 그것의 정확한 의미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앞의 관찰을 통해 류장복이 자신의 매체를 진실의 추구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고 그 맥락에서 어림짐작할 뿐이다. 미술가에 의하면 "생물"적 회화 공간은 그 스스로 자신을 매체화하는 방식이고 신체의 물리적 진실과 대상의 시각적 진실이 통합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한편 류장복이 철암을 처음 찾았을 때의 인상이 이 말의 의미를 더 보증할 것 같다. 미술가는 철암을 처음보고 유년기에 자신이 살았던 도시 변두리의 풍경과 흡사한 점에서 진한 향수를 비릿한 냄새처럼 느꼈다고 한다. 여기서 그 "생물"의 의미는 물리적 감각이 회복되고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는 대상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 류장복은 매체를 마주하고 제작하는 순간 몰입한다. 이 과정에서 그를 둘러싼 실재하는 공간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 때 그는 몰입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들에 등 돌린 채 자신의 평면을 향해 있다. 미술가는 사유나 기억과 같은 삶의 영역들을 등뒤에 잠시 내버려둔다. 그러던 중 류장복은 두었던 삶의 자리로 되돌아와 고개를 갸우뚱하며 몰입의 결과물을 거리를 두고 본다. 여기서 류장복은 관람자가 된다. 그가 막 손을 땐 매체와 그의 삶을 충돌시키기 때문이다. 제작자가 점유한 관람자의 자리는 곧 비평을 낳는다. 류장복의 사생 연작은 철암이라는 특정의 지역에서 몰입자와 관람자, 이 양자간을 오가며 끊임없는 긴장을 수행한 개인적 경험들의 기록이다. 그것들 간의 간격을 통해 류장복은 그리는 주체가 지닌 사유를 비울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이 영역은 또한 그의 말대로 원초적 진실인 "생물"을 회복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류장복의 매체가 소박한 크기의 사각형 평면이고 그 방식이 제한된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지만 그것은 분명한 관람자를 창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뭣보다 사생을 통한 기록을 실천함으로써 복구와 보존의 목적을 일깨우고 있다. 그는 망막에 잡힌 원초적 자극에 반응하고 몸에 감지되는 움직임을 진솔하게 기록하는 방식을 회화로 실천한다. 류장복의 연작을 통해 사생은 조작되지 않는 기록을 온전히 수행하고 관람자의 비평을 창출하는 구체적 방식임이 확인된다. 조작의 가능성을 제거한 기록으로서의 매체는 철암의 생태환경과 역사성에 관한 어떠한 의견이나 실천이든 우선 그것들이 수행되기 전에 조회할 방법론적 모델이 될 것이다. ■ 이희영 '회복하는 기록의 매체: 류장복의 사생,' 2006.3 철암그림전 서문 중에서

류장복_2007.4.21 18:40 전차동에서_합갱지에 목탄과 파스텔_54×77.8cm

류장복은 철암그리기를 온몸으로 한다. 환경 속에 몸을 내맡기고, 그것을 그대로 화면에 담는 그런 그의 무대포는 일가를 이루었고, 그려질 대상과 작가사이의 최단거리를 설정하는 직접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가 항상 입에 올리는 "생물"스러움은 바로 시간과 장소에 직결된 작가의 감관이 날 것 그대로 전이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작가의 비릿 내 나는 현장성은 전적으로 사생된 형태가 아니라 잡스럽게 끼여든 온갖 현장의 흔적에 의해서이다. 잡스러움을 허용하는 그의 풍경은 인위적인 완벽함보다는 빈틈을 찾아 채우는 것에 소의미를 찾는다. 그에게 그림은 작가의 손에 그어진 선뿐만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의도되지 않은 채 벌어진 빈틈들이 이루는 형상의 총합이라고 볼 수 있다. ■ 김정락 '빈틈을 향한 시선, 빈틈을 사유하는 형상,' 2006. 5 철암그리기 서문 중에서 ● 그의 철암그리기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나 현장 보존용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철암을 읽고 전하는 방식이 서사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사(epic)란 그 대상과 그 대상을 읊는 주체간의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연관성을 전제로 한다. 한 예로서 그리스의 고대시인 호머가 전하는 일화가 있다. 오디세우스가 그의 귀향길에서 잠시 한 섬에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그는 동행했던 시인 데모도코스에게 트로이의 전쟁을 읊도록 요구했고, 시인은 주군의 명령을 따라 그것을 노래했다. 조용히 듣고 있었던 오디세우스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왜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를 노래하게 했을까 그리고 왜 이미 아는 과거에 대해서 눈물을 흘렸을까? 서사는 아는 것을 복원하는 능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사는 반복해서 인간의 심층 속에 서린 감정을 북돋고, 그것에 카타르시스를 덤으로 안긴다. 그래서 서사는 한 역사나 과거에 대한 반성적이며 감성적인 재연이며 자의식과 기억에 뿌리를 둔 예술인 것이다. 류장복은 철암을 재현하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그리고 더 나아가 해석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철암의 기억을 자신의 타령(서사에 가장 가까운 우리말이다)에 맞추어 사람들에게 노래할 뿐이다. ■ 김정락 '풍경으로 듣는 철암의 애가,'2006.2 철암그림전 서문 중에서

Vol.20070722b | 류장복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