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성 상상력

선호준 개인展   2007_0712 ▶ 2007_0803

선호준_금바퀴_혼합재료_72.8×50cm_200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문화공간 도배박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712_목요일_06:00pm

문화공간 도배박사 개관전

문화공간 도배박사 서울 용산구 한남동 732-21번지 Tel. 016_299_3245 cafe.naver.com/drdobae.cafe

젊고 실험적이며 진취적인 작가들의 메카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문화공간 도배박사가 7월 문을 엽니다. 주상 복합식으로 지어진 이태원 이슬람사원의 1층에 위치한 도배박사는 도배, 장판 전문점을 개조하여 예술작품을 전시하게 됩니다. 개관전시로 바퀴벌레를 소재로 한 선호준씨의 작품을 발표합니다. 앞으로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조주현

선호준_야행성 상상력 전단지_2007
선호준_야행성 상상력 전단지_2007

도배박사를 보기 위해 이태원으로 갔다. 3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수많은, 소위 '삐끼'들이 "언니, 2007년 신상품 하나 보고 가" "SA급, 주문도 받아"하며 팔을 잡아끈다. 그들 사이를 뚫고 영어와 한글이 혼용된 수많은 간판들을 지나 골목으로 오르면 '간지 헤어'가 나오고 그 앞에 '꿀수박 3천원' 트럭에서 "달고 맛있는 수박! 싸다, 3천원!"을 틀어놓고 졸고 있는 아저씨를 만날 수 있다. 마침내 타일로 장식된 거대한 이슬람 사원의 정문이 보이면, 사원 2층의 태권도장에서 구령을 외치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고, 설마 이런 곳에 갤러리가 있을까 싶은 바로 그 지점에, 망한 도배 가게를 '대충' 개조해 만든 도배박사가 위치해 있다. 갤러리가 존재한다고 하기엔, 갤러리도, 주변 환경도 괜히 서로 민망한 바로 그 좁고 높다란 골목의 안쪽, 붉고 선명한 글씨의 '도배박사'가 7월 12일 첫 오픈전을 갖는다. 수상하고 괴이쩍다. 대체 왜 이런 곳에 갤러리를 오픈한다는 말인가. 그토록 심심했단 말인가! 주인장의 변, 심심했단다. 뻔한 것들이 모여 있는 골목들, 거리들, 상점들, 그리고 뻔한 이웃들. 그는 의외의 장소에서 상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할 불특정한 어떤 이들의 놀랄 얼굴을 상상하며 즐거워했다. 도배박사는 빨래하려고 주머니를 뒤지다 나온, 곱게 접힌 만 원짜리처럼 우리의 작고 일상적인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바퀴벌레를 소재로 한 선호준의 작품들이 전시된다. 우리는 이리하여 이슬람 사원 외벽에 기어다닐 거대한 바퀴벌레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선호준_물바퀴_혼합재료_72.8×50cm_2007

장소의 의외성과 소재의 의외성이 만나, 아주 잠깐이나마 이상한 세계의 틈이 열린다. 그곳은 세상 모든 골목의, 볕이 잘 들지 않는 모퉁이이고 바퀴벌레의 더듬이를 가진 야행성 상상력의 집결지이다. 나는 작가가 처음으로 바퀴벌레를 소재로 대면한 5년 전 그의 불면의 밤을 상상해본다. 잠을 자기 위해 노력하던 작가는 캔버스처럼 새하얀 자신의 방 벽에서, 작은, 잭슨폴록 풍의 추상화를 발견한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며칠 전 자신이 때려잡은 바퀴벌레의 흔적이다. 그는 다시 자신의 벽을 찬찬히 살핀다. 하나를 더 발견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또 하나. 지금 이 순간에도 벽지 뒤나 쓰레기 봉지의 밑바닥에서 바스락거릴 놈들의 움직임이 어렴풋이 감지되는 것 같기도 하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사나운 맹금류나 징그럽게 생긴 파충류보다 작은 벌레들을 더 무서워한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몸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순간 내 몸 위를 기어 다니다가 귀로, 코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상상할 때의 그 소스라침.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바퀴벌레는, 그러므로 우리의 상상을 자극한다. 심지어는 바퀴벌레 한 마리를 보는 것이 100마리의 바퀴벌레가 숨어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설까지 들은 바 있다. 이런 맙소사. 작가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의 태세를 단단히 하고 바퀴벌레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우리의 공포, 상상, 고정관념을 들여다본다.

선호준_불바퀴_혼합재료_72.8×50cm_2007

사실 바퀴벌레는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깨끗한 종이다. 그들은 언제나 몸을 청결히 유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파리나 모기 따위보다 병균을 '덜' 옮기고 게다가 날개가 있으면서 대게 날지 않는 겸손한 종족이기도 하다. 바퀴벌레는 민첩하고 부지런하며 번식력이 뛰어나고 환경 적응력 또한 뛰어나다. 문명이 멸망해도 바퀴벌레는 살아남는다. 꿈처럼, 상상처럼, 백일몽처럼, 기억처럼, 잡담처럼, 짝사랑처럼, 시시한 농담처럼, 타인에 대한 관심처럼, 오해처럼, 결국엔 별것 아닌 것이 될, 무수히 사소한 어떤 것들처럼 야행성으로 살아가며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활동하는 것들의 몇 가지 다른 종류를 또한 알고 있다. 유령들이 그러하고 기억되지 못하는 작가들, 예술가들이 그러하다.

선호준_풀바퀴_혼합재료_72.8×50cm_2007

선호준의 작품에서 바퀴벌레는 점점 주인공이 되어간다. 작가는 초기에 바퀴벌레의 민첩한 움직임을 소재로 하여 동선의 표현과 연상 작업에 중점을 두었지만 후에 바퀴벌레는 '바퀴'라는 단어가 가진 이미지와 동음이의어적 언어유희로 인해 바퀴 속에 갇히기도 하고 바퀴를 구성하는 무수한 원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선호준의 바퀴벌레는 바퀴를 탈출하여 자신의 이름이 가진 굴레를 자유롭게 넘나들기 시작한다. 작가는 '바퀴(벌레)'라는 기호를 '바퀴(타이어)'로 교묘하게 바꿔치기해 기의를 혼란시킨 후 바퀴벌레를 독립시킨다. 바퀴(벌레)는 이제 더 이상 바퀴(타이어, 혹은 벌레)만이 아니다. 게다가 그것은 군집된 무리에서 빠져나와 당당하게 배를 내보이고 뻗어 있는 한 마리의, 단 하나의 개체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자신의 긴 여행의 흔적을 온 몸에 담은 채, 자신이 기어다닌 온 세계의 색채들-그래서인지 조금 때가 탔다-로 오로라를 발사하며. 바퀴벌레를 마주한 선호준이 발견한, 혹은 발견하려 노력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낱 바퀴벌레 '따위'에게 눈을 맞추는 그의 낮은 시선은, 생각되어지지 않는 것, 쓸데없는 것들에게서까지 존재 의의를 발견하고자 하는 따뜻한 세계관이 담겨있다. 그런 그를 이해 혹은 납득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하찮은 것들의 존재이유에 대해, 더불어 생각이 되지 못한 생각, 예술이 되지 못한 예술, 의미를 갖지 못한 의미, 버려지고 잊혀질 모든 순간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조우리

Vol.20070714d | 선호준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