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빡센 두께

서울판화 2007 기획展   2007_0711 ▶ 2007_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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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11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 시간_구세주_김보경_김창수_박영근_오영재_오창규_유상미_이윤경 이정은_정상곤_조명식_최혜민 빡센_강정헌_고자영_김제민_박지나_신승균 이경아_장양희_정광천_한기훈_황인선_홍보람 두께_김미로_김상경_김종현 배지은_신수진_심효선_조혜정_최경주_최성원_하원_황연주

갤러리 토포하우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34_7555 www.topohaus.com

시간의 빡센 두께 ● 2005년 새로운 사이클로 시작된 후 세 번째 열리게 된 올해의 서울판화전은 세 가지 테마로 이루어진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간, 두께, 빡세다. 전시를 세 가지 주제 아래 진행한 것은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전시인 만큼 하나의 개연적인 주제아래 펼쳐졌던 이전의 총괄전 양상으로부터 차별되는 여러 새로움을 모색하고자 한 결과이다. 한 가지 키워드를 사용하여 개념적으로 작품들을 심도 있게 엮는 전시를 하기에는 인원수가 많고 작가의 개성도 너무 다양하다는 지적을 염두에 두고, 약 35명의 작가들을 소그룹화하여 각각의 주제에 보다 근접하게 연결되는 작업을 선보인 작가들을 선정하거나 혹은 작가 측에서 스스로 속하고 싶은 방으로 들어가게 함으로써 개념과 작업사이의 연결을 의식적으로 높여보는 발로였다. 이는 보다 민주적인 의견수렴과 밀도 있는 개념적 접근을 진작시키고자 한 것이다. 물론 각각의 테마와 작업간의 섬세한 조율, 의사 교류의 극대화 등의 야심만만했던 애초의 청사진에는 그 진행이 완벽히 부합하였다 할 수 없으나, 이상은 언제나 현실 위에 있지 않은 법. 그럼에도 이러한 절차가 가졌던 효율성은 각 방의 개연적 개념들이 작품의 생산과 형식, 내용에 대한 이해를 얽어주는 뼈대로서 원활하게 기능하고 있다는 점과 각 방의 기획들이 현란한 수사를 배제하고 보다 현실적인 감각으로 작품들의 통합성을 강화시키면서도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효과를 충분히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10명 남짓한 각 그룹의 팀원들 간의 작품에 대한 사전(事前) 점검이 각 방을 대표하는 글들로 연계되었다는 점은 특별한 성과이기도 하다. ● 따라서 각 테마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와 개별 그림들에 대한 설명은 각 방의 대표자들에 의해 작성된 소고들을 통해 전달될 것이며, 이 서문은 전시의 전체적 주제에 대해 조망하고자 한다. 우선 전시의 공간적 구성을 보면 지하는 빡센 방, 1층은 시간 방, 그리고 2층은 두께 방이다. 각각의 개념들에 균등히 할당된 공간을 보면 이 전시가 시간의 빡센 두께 라는 전시 제목에서 오해될 수도 있는 소유격인 시간이 의미상 주격이 되거나 두께가 주축이 되는 장(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목상 관형어로 전락해버린 빡센이 보조역할을 하는 전시는 더더욱 아니다. 세 층으로 분리된 물리적 공간에서 이 키워드들은 각각 독립적 주체어로서 기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 제목을 하나의 어구로 통합한 것은 시간이, 두께가, 빡센 것이 배타적인 자율적 카테고리가 아니라 작품에 따라서는 현저하게 혹은 아주 미묘하게 서로에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로서의 이 전시는 각각의 방들을 아우르는 개별적 테제가 있지만 그 틀들이 어느 샌가 열려져 서로 접합하고 있는 세 개념들의 종합을 의미한다.

배지은_B씨의 낡은 지갑_석고 캐스팅에 채색_11.3×9×2.2cm_2007
심효선_TV시리즈_혼합매체_각 34×30cm_2007

우선 물질적, 물리적 개념으로 다가오는 두께에서 시작해보자. 두께 방은 판을 찍어내는 종이의 두께, 잉크의 층, 그리고 두께를 이루는 표면의 밖과 안의 양면성에 대한 개념적 성찰로 다시 세분화되어 설정되었다. 그것이 종이이던 아크릴이던, 찍어내는 최종 면들은 어쩜 쉽게 각인되는 공간감 있는 튼실한 두께는 아니지만, 그동안 판화 영역에서 깊이 점검되어오지 않은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물리적 요소이다. 물론 이 두께는 그 표면과 종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부가 되고 있어 얼핏 보면 모더니즘적 형식주의 비평의 중심이었던 표면에 대한 점검과 중복되어 있는 지점이 다분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화의 매체적 특수성은 모더니즘이냐 포스트모더니즘이냐하는 패러다임의 구분과 상관없이 언제나 판화가들의 뇌리에 도사리고 있는 존재론적 질문이기도 하다. 이는 회화에 비해 항상 마이너리티 자리에 위치해왔던 판화에 대한 인식이 채 타파되기도 전에 또한 그 이론적 성찰과 역사화 작업이 충분히 진전되기도 전에, 벌써 종말 운운의 소리가 들려오는 현시점에서 판화매체의 특수성에 대한 실천적 이론적 점검이 더더욱 절실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표면이나 레이어, 종이 등에는 자주 모아졌던 매체의 물질적 요소에 대한 접근에서 이들의 구성 조건이면서도 무시되어온 요소인 두께에 주목해보는 것은 판화 매체에 대한 비평적 고찰을 확장하고 다각화하려는 시도이다. ● 판화의 물질적 두께가 대부분 미세한 깊이를 가졌다면, 오히려 이번 전시에서 두께를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두께 방의 공동 작품인데, 이는 참여 작가들이 일상의 삶으로부터 주어온 오브제들을 쌓아올린 잡동사니 더미들이다. 물질적인 두께를 원초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이 작품은 사실 작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생활의 두께를 쌓아올린 심리적 집적물이라는 점에서 곧 삶의 두께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 더미들은 판화라는 매체에선 다분히 멀어져가고 있지만, 판화 영역의 확장인가 소실인가에 대한 질문을 내던지며 매체의 확장과 이탈의 순간을 여는 의미, 그리고 작가의 개인적 경계를 넘어서는 의미를 투영시키고 있다.

이윤경_이웃_실크스크린_100×70cm_2006
구세주_5:30pm, from May 25 to June 30_혼합재료_각 28×20cm_2007_부분

이외에도 여러 작품들에서 두께는 삶의 두께라는 내용적인 측면으로 확장되고 있지만 그 일차적 출발점이 물질적 요소에 대한 점검에서 비롯되었다면, 시간은 두께를 지니게 하는 과정을 함유하고 동시에 판화라는 물질적 결과물을 이미지로 기억하게 해주는 실재로 기능한다. 작업의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완성되어가는 회화나, 영화가 흔히 보여주거나 관람되는 방식인 흘러가는 시간과는 대비되는, 독특한 시차(time-lag)를 함유하고 있는 매체가 또한 판화이다. 판화에서 시차, 즉 자극이 주어져 반응이 일어나기까지의 시간적 지체는 판으로 찍고 또 찍어 올리는 여러 단층적 겹침의 과정을 지나거나 최종적 이미지가 단일 절편으로 한꺼번에 찍히게 되는 묘한 시간층을 형성한다. 물론 매개체인 판의 의미가 틀로 확장될 때 영입될 수 있는 영상, 인터넷 작업 등에서는 이 지점을 논하기 힘들지만, 전통적 판화에는 작업과정의 연속성과는 별도로 각 작업 단계의 이미지화 작업에 표현되는 시간적 불연속성이 동반되며, 판 찍기 이전에는 이미지들이 철저히 지체되고 있는 시간적 특수성이 베어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은 이 전시에서 날짜별로 그 기록을 추가하거나 삭제해나가고 있는 단계적 작업이나 각각 다른 공간과 시간에 놓여진 사물의 모습들을 서로 다른 판으로 병치시키고 있는 작품들에서 보다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 둘째로 여러 작품들 속의 시간적 함의는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회고, 역사와 기억의 파편들의 자취들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는 항상 과거와 미래와 함께 숨쉬고 있다! 그것은 판화 뿐 아니라 모든 예술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주제적 특성일 수 있는데, 새삼 베르그손이나 들뢰즈의 시간 개념을 들추지 않아도 우리는 쉽게 개인적 경험과 문화의 기억 속에 묻힌 과거가 실재 삶에서 연속적으로 부드럽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어느 한순간 현현하기도 함몰하기도 하면서 항상 도사리고 있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판화나 사진 꼴라주 형식은 현재와 양립하되 시간 지체 속에서 불연속적으로 튀어 오르고 있는 과거의 파편을 개념상 가장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장양희_익명의 얼굴 (Anonymous Face)_혼합매체_30×30×12cm×54_2007
산세베리아 1_석판화, 목판화, 디지털 프린트_100×160cm_2007

마지막으로 빡센 방은 말 그대로 판화 작업의 고된 과정과 방식, 그리고 판화가로서의 삶에 끊임없이 부딪혀오는 거센 현실을 담고 있다. 우선 많은 작품들이 정교한 전통적 작업 방식, 강도 높은 노동의 과정을 끈질기게 고집하고 있다. 수많은 라이트박스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올린다든가 판을 여러 번 정교히 중첩시키거나 섬세하게 목재 위를 조각하고 채색하는 등 작업 방식 자체에서 묻어나오는 빡셈으로부터, 일그러진 듯 보이는 자화상들, 삶의 원초적 에너지원인 밥과 배추, 각각 생명과 묵묵함의 상징인 식물과 소나무, 그리고 잡초들의 정구 경기 등 주제 차원의 빡센 현실로 구현되고 있다. 즉 그들의 작업 과정은 빡세고, 이는 자연스럽게 많은 작가들이 노출되거나 선택한 만만치 않은 삶의 상황적 주제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에선 형식과 내용이 별개로 존재하기보다 오히려 그 양자가 빡셈이라는 형용어로 수렴해버리는 융화가 시작된다. 한편 넘쳐나는 건물들과 잿빛 도시 이미지를 내뿜는 작품 옆에서 함께 전시되고 있는 생명의 모습들은 이 방의 전체적 메타포를 울려대고 있는 듯하다. 황폐한 현실에서도 결국 나름대로의 방식을 터득하며 강인하게 살아남고 있는 자연의 개체들처럼, 오히려 이러한 거친 현실이 작가들의 삶과 작품에 오히려 강한 생명과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이 전시에서 판화 작업을 빡세게 고집하는 것은 소요되는 시간의 두께를 의미하며, 얇은 종이에 투영된 삶은 종종 그 무겁고 빡센 두께로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은 연속적으로 쌓아지는 더미가 아니라 항상 수많은 지층들을 동반하며, 각 층들은 또한 제각각 다른 두께를 지니며 기억의 첨삭인 시간 절편을 통해 쌓아지고 뒤집혀지는 형상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각 개념층들 사이의 접속들이것이 바로 이 전시의 구조이다. 이 전시는 삶에 대한 위트, 매체의 자유와 가벼움의 미학을 선도하는 소위 쿨한 전시를 의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전시는 작업에 임하는 자세, 몇몇 개념과 판화에 대한 비평적 사유 방식 등을 빡세게 견지해봄으로써 판화 매체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구를 유발하는 새로운 징검다리가 되는 역할을 꿈꾸고 있다. ■ 김진아

Vol.20070712e | 시간의 빡센 두께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