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7_0622_금요일_05:00pm
국민아트갤러리 서울 성북구 정릉동 861-1번지 국민대학교 예술관 1층 Tel. 02_910_4465
흔적된 인상 ● 코가 있어야 할 곳에 눈이 있고, 눈이 있어야 할 곳에 입이 있다. 문득, 작가는 숨쉬는 것보다 더 강하게 무언가를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 보는 것을 넘어서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눈으로 열심히 여기저기 따라가 본다.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워 보이는 자취들을 눈으로 따라 가다보면 화면 위에 내 시선의 길이 생긴다. 그리고 다시 그 모든 길은 흔적이 되어 그림 안에 자리하게 된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캔버스 밖으로 미열이 전해지는 듯하다. 열은 실험실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던 용매들보다 따뜻하다. 아마 우리가 잠시 눈을 뗀 순간에도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그림의 움직임 때문인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은 부딪히고 눌려져 얇게 변한다. 그 길은 결코 두꺼워지지 않는다. 오래된 길은 새 길보다 얇아지고 손때에 닳는다. 진형주의 그림은 그러하다. 캔버스 위의 얇은 질감은 얼마나 많은 흔적이 그 위에 자리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지나갔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바쁜 흔적의 자취만큼, 그의 작품 안에는 고정된 것, 멈추어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이 갖고 있는 원래 모습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그만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만 하면 되는 것이다. 눈과 입의 위치는 본질을 표현하는데 중요치 않다. 어쩌면 처음부터 작품안의 이목구비에 올바른 위치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계속 움직이고 있는 것을 우리가 억지로 붙들어 배치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작가는 그것들에게 힘을 부여하고 방향과 속도를 함께 제공한다. 힘을 얻은 물질들은 사방으로 움직이는데 이 때 작품 안에는 고정된 실체가 사라지고 물체의 고유한 본질만 남는다. 이렇게 때때로 우리의 올바른 사고를 저지하는 편견이나 낡은 생각들은 그의 그림 안에서 무존재(無存在)가 되며 혼란은 오히려 탈출구가 된다.
한편, 작가가 우리에게 움직임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은 소통의 다른 표현이다. 끊임없이 자기를 드러내고, 그 모습을 기록하는 것은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는 수단이 된다. 그림 위의 수많은 흔적은 작가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관찰자 또한 흔적을 쫓으며 그림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때 흔적의 매개체는 인간이 갖고 있는 이목구비(耳目口鼻)- 즉, 인상이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개별 매체는 익숙하기 때문에 조금만 형태를 바꾸어도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진형주의 작품 안에 표현된 인상은 투명하리만치 솔직하게 드러낸 발자취로 인해 그것을 대하는 시각에 있어 어색함이나 망설임은 이내 사라지게 된다.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관객에게 쉽지 않은 요구를 한다.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 그리고 그 요구를 위한 자유를 함께 준다.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 안에 그들을 풀어놓지 않았다. 그의 그림 안에는 분명히 경계가 존재한다. 즉, 우리는 그림 안에서 이 곳 저곳을 전부 볼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우리가 자유롭게 인식했던 모든 것은 테두리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자유는 하나의 범주 안에서 허용되고 그 범주는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경계, 그것은 결국- 인간이다. ■ 김보영
Vol.20070709d | 진형주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