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과 고요의 인간이해

차현주 조각展   2007_0704 ▶ 2007_0710

차현주CHAHYUNJU_HAND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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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04_수요일_06:00pm

인사아트센터 1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02_736_1020 www.ganaartgallery.com

역동과 고요의 인간 이해 ● 경기도 일산 구산동에 자주 드나드는 편인 나는 갈 때마다 주인이 있건 없건 그의 기념비적인 인체 작업 「다시 걷다」를 둘러보곤 한다. 이 작업만큼 여성의 몸을 건강하고 당당한 주체로 표현한 작품을 볼 일이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여타의 각별한 맥락을 가진 경우에도 이렇듯 인체 그 자체만으로 건강한 여성성을 표현한 조소예술 작품을 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여성의 신체를 통해서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 대부분 편협한 인간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작품의 매력은 한층 더 하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요셉 보이스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자신의 위치와 전망을 담은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성공적인 인체 표현을 위해서 모델을 앉혀놓고 작업했지만 충실한 모델링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표현하고자하는 미적 이데아를 위해서는 과감한 변형이 필요했다. 위풍당당한 전진을 표현하기 위해 인체의 동세와 볼륨감을 극도로 강조하는가 하면, 마치 불국사 석굴암을 보는 것 같이 이상적인 조형미로 다듬어진 얼굴을 지니고 있다. 두 팔과 다리를 휘저으며 전진하는 인체의 동세를 뒷받침하는 것은 굵은 팔뚝과 허벅지이다. 풍만함과 안정감을 주는 팔다리의 과장된 볼륨은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살려 대지를 딛고 서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의 동세를 확연하게 담아내고 있다.

차현주_Hand_대리석_57×46×58cm, 70×45×50cm_2005~2006
차현주_Hand_대리석_72×45×60cm_2007
차현주_Hand_대리석_58×45×60cm, 64×45×63cm_2007

야심찬 인체 작업 한 점을 만들면서 다시 두 팔을 걷어부친 차현주. 그가 이후 수년간 매진해온 것은 손 연작이다. 이전까지 비정형의 인체작업을 하다가 선구자 연작을 거친 후, 그동안의 분위기를 일소하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손 연작이다. 이번 전시는 초기작 이래 최근에 이르기까지 전작의 흐름을 가늠해보는 전시이기는 하되 실은 근몇년간 매진해온 손 연작을 일별해서 선보이는 장인 셈이다. 손 연작은 그 이전에 인체 전체를 다루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의 발상법에서 출발했다. 초기의 작품들은 반추상 인체작업들이었다. 당시 그는 인체 전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보다는 비정형의 덩어리처럼 보이도록 처리하고 세부만을 묘사하는 방식을 썼다. 특히 검은 대리석 특유의 질감과 색감 차이를 활용한 묘사가 돋보였다. 마치 콜비츠를 보는 듯한 그의 초기 인체작업은 서른 즈음의 신진작가 차현주가 얼마나 단단한 세기를 가지고 있는지, 그의 인간 이해가 어떠한 방향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후 그는 10년의 세월동안 비정형의 인체 작업과 선구자 연작 단계를 거쳤다. 첫 개인전의 비정형 인체 모티프는 테라코타 작업으로 이어졌다. 비정형의 인체를 구상인체 작업으로 전환시킨 것은 선구자 연작이었다. 얼굴을 생략한 채 강렬한 힘을 발산하는 선구자의 모습은 양손이 묶여 있거나 책을 든 모습으로 나타났다. 비가시적인 힘, 위대하고 무한한 영혼을 갈구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종교적 신비주의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갈망이었다. ● 실존적인 인간의 형상과 초월적인 힘을 가진 인간의 단계를 거친 차현주의 인체 작업은 앞서 말한대로 기념비적인 인체 작업으로 하나의 전환점을 형성한다. 이후 그는 인체의 가장 첨예한 지점 중의 하나인 손을 만드는 데로 전환했다. 인간의 형상에서 고통이나 초월과 같은 커다란 이야기를 끌어내기 보다는 인간 신체의 한 부분인 손을 통해서 자잘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차현주는 사과를 잡은 손과 하늘로 곧게 편 손바닥 두 작품을 선보였다.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인 대리석 조각의 정통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손 연작의 초기 작업들은 주로 손의 형상을 사실적 묘사하는 데에 치중했다. 이 시기의 작품들에서는 손 전체의 형상과 비례가 매우 균형감각을 가진 이상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손금이 드러나거나 관절과 주름이 드러나는 식의 세부묘사와 더불어 실제 움직임을 포착한 자연스러운 손동작을 하고 있다. 초기의 작품의 손가락들은 무언가 표정을 짖고 있다. 나머지 네 손가락을 웅크린 채 엄지 손가락을 숨기거나 드러내는가 하면, 곧게 펴고 하늘을 향한 손, 두 손을 깍지 끼고 기도하는 듯한 손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이 있는가 하면 바람 들어간 고무장갑처럼 부풀어오른 손도 있다. 과도하게 부풀어있는 손바닥의 표현이 있는가 하면 균형감과 안정감을 가진 매우 정적인 볼륨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후 그는 점점 사실성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사실적인 묘사는 그 나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정서적 표현을 이루는 데 장애요소로 작용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 사실적 표현에서 상징적 표현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차현주의 손은 점점 특유의 양식을 만들어 나갔다. 손바닥은 네 개의 덩어리로 간명하게 드러나고, 손가락은 세 마디의 원기둥으로 소급한다. 손톱을 표현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도 분명하다. 그것은 표현의 절제를 통해서 얻어내는 정제미 같은 것이었다. 볼륨감을 강조되는가 하면 특정 부분을 생략하거나 과장하기도 했다. 손가락의 날렵함에 비해서 손바닥의 풍부함이 돋보이기도 한다. 또한 가늘고 긴 손과 굵고 두터운 손바닥을 강조함으로써 극적인 대비효과를 얻어내고 있다. 손가락 끝은 수려한 곡선을 이루어 날렵한 미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를 위해서 그의 손가락 끝은 손톱의 존재를 극히 상징적으로만 처리하거나 아예 생략하는 현상이 생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이전에 추구했던 선의 맛을 극적으로 살려낸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반가사유상의 손과도 같은 이상미의 재연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적 이상의 발현이다. 부분적으로는 종교적 도상이나 표현방식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손이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차현주의 손은 독자적인 영혼을 가진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 성립한다.

차현주_Hand_대리석_70×49×76cm_2007
차현주_Hand_대리석_54×40×50cm_2005

차현주의 손 작업들은 특수의 손으로부터 보편의 손으로 진화했다. 초기의 손들은 직접적인 기호작용을 끌어내는 손이었다. 그것은 욕망하는 손이었으며 지시하는 손이었다. 그러나 점점 진화한 차현주의 손은 진리를 갈구하는 손, 영원을 갈망하는 손으로 나아갔다. 차현주의 작업은 손의 형상을 빌어다 쓰면서도 온전히 그 형상의 외피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손의 다양한 의미를 끌어내는 데 그 묘미가 있다. 손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주는 것이 손이라면 받는 것도 손이다. 손은 화해를 주선하고 약속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갈등을 부추기고 믿음을 깨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손은 그 모양에 따라 다양한 기호작용을 한다. 특히 손가락은 각자 나름의 쓰임새를 가지고 있으며 각자 나름의 기호와 상징으로 작용한다. 차현주 손 연작들 가운데 초기작들은 손가락의 배치를 통해서 형상을 끌어냈다. 따라서 이들 초기작들은 손가락의 형상이 만들어내는 기호작용을 재현하는 데 충실했다. 물건을 움켜쥔 손, 깍지 낀 손, 모든 것은 놓은 빈 손 등 손의 모양에서 맥락을 끌어내는 방식을 쓴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제작한 작품에서의 손가락들은 평등하게 나란히 각자의 크기 만큼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언가 실행하거나 표상하는 손이 아니라 절대적 무위와 고요의 경지에 다다른 손의 엄숙함이 서려있다. 그것이 차현주가 품고 있는 손의 이데아이다. 그는 그것을 숭고미에 귀속시키고 있다. ● 차현주의 손 연작은 손에 관한 가능한 많은 종류의 상상과 명상을 이끌어 낸다. 그것은 손의 존재에 관한 의미론에서부터 그것이 연출해내는 기호론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나아가 그것은 손을 통해서 인간 존재를 성찰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차현주의 손은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할 때 손의 역할이 어떠했는지를 갈파한 엥겔스의 언급대로 손이야말로 인간개체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유물론적 관점을 견지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손은 머리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적 기능을 가진다는 발상보다는 손은 머리의 친구라는 이우환의 표현이 훨씬 더 손의 존재와 의미를 유연하면서도 명쾌하게 밝히고 있는 셈이다. 물론 손은 시각이나 청각, 후각과 같이 촉각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는 감각기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손은 감각기관 그 이상이다. 신체의 내부와 외부의 물리적 접촉을 매개하는 첨단의 지점에 손이 있기 때문이다. 신체의 부분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는 일이 차현주 작업의 요체이다.

차현주_Hand_대리석_60×45×45cm_2007
차현주_Hand_대리석_40×35×35cm_2004
차현주_Hand_대리석_70×45×50cm_2005

차현주의 손 작업이 진화하면서 스스로 선택한 결여가 있다. 그것은 손의 생동하는 표정들을 절제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발생한 결과이다. 어찌 보면 손은 정제미를 발견하는 관조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역동하는 실체가 아니던가. 그는 손의 역동을 결여함으로써 보다 역설적이고 적극적으로 손에 관한 깊은 성찰을 끌어낸다. 그의 손 작업은 대리석의 재질감을 이용하여 손이라는 신체 부위의 가변성을 물질적 실체로 견고하게 구축해낸 결과물들이다. 그는 섬세한 대리석의 색감과 재질감을 십분 살리면서도 돌의 물성 자체에 기대지 않고 적극적으로 형상의 변주들을 이끌어낸다. 손 연작의 절정은 불꽃 담은 손이다. 앞서 말한 표현상의 양식화가 완숙의 단계에 접어들어 손바닥은 그것대로 손가락은 또 그 나름대로의 어법으로 손의 형상을 이루는 개체로 독립하되 하나의 통합체로 성립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 차현주는 손가락의 형상에 불꽃의 형상을 더했다. 모든 손의 면을 둥근 원기둥으로만 표현하지 않고 완연하게 꺾이는 면을 준 형상 하며 손가락 끝이 화려한 각선미를 자랑하며 곡선미를 드러내는 것이 심미적 이데아를 향한 차현주의 집요한 탐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날아갈 듯 치솟은 한옥지붕 처마의 끝선처럼, 부드럽게 이어진 버선코의 곡선처럼 차현주의 손가락 곡선은 일렁이는 불꽃이 되어 이지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손 연작의 백미를 이룬다. '불꽃 같은 손'에 이르러 차현주의 손 연작은 마침내 역동과 고요를 한 몸에 담은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 김준기

Vol.20070707d | 차현주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