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자연 & 사유. 공간

권석만 조각展   2007_0704 ▶ 2007_0710

권석만_관조_보령오석_90×350×6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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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704_수요일_06:00pm

인사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B1 Tel. 02_736_1020 www.ganaartgallery.com

돌을 통한 범자연주의적 사유 공(空)과 허(虛) ● 권석만은 돌을 다듬는 연금술사처럼 그의 석조각에 우주의 질서를 부여하는 조각가다. 그의 스승 최종태가 (그의 석조각의 돌들은) 나름대로의 모습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언급했듯이 그는 돌의 생명감을 살려내기 위해 인위적인 흔적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술은 자연이란 대상 앞에서 의식의 순수 상태에 도달하려는 싸움이라는 허버트 리드의 견해처럼, 권석만의 석조 오브제들은 사물이 지닌 외재성과 내재성을 조각가 자신의 사유체계와 동일화하려는 과정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작품의 의미(signification)이기도 하다. 권석만은 자연을 함축하고 있는 돌을 선택하여 돌의 내부를 비워내거나 채워져 있는 돌의 외형에 우리 전통 문양이나 유기적 패턴을 부가한다. 그의 범자연주의적 사유를 담고 있는 이들 조각들은 개체들 간의 상호 작용에 의한 관계를 갖게 된다.

권석만_관조_보령오석_175×80×36cm, 160×70×30cm, 135×75×40cm_2007

그가 이번 전시에 보여주는 작업들은 1990년대 말의 작업에서 보여지던 대조나 명료한 기하 형태에서 벗어나 있다. 다시 말하면 명시적이고 긴장된 형태보다는 안정된 융합 형태를 취하고 있다. 1990년대에 보여준 그의 작업들은 정육면체, 구, 원기둥으로부터 건축 이미지가 결합된 기하 형태의 건축적 구조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어 흑백의 대비가 강한 작품은 이태리의 백 대리석과 벨기에의 흙 대리석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권석만의 이태리 유학의 영향이라 할 수 있는 서구의 합리주의적이고 논리적인 사유체계를 알 수 있다. 대조는 두 가지 요소들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두 가지 형태 모두에게 가치를 부여한다. 이 두 요소들은 강한 긴장감과 더불어 상호 의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조와 양극성은 자연을 이해하는 중요한 원리이다. 단지 이러한 우리의 사유체계를 어떤 형태로 나타내느냐에 따라 조각의 의미는 달라지는 것이다. 그의 양극성은 이번 작업에서 내적 공간과 외적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아직도 그의 작품에는 기하형태와 각 요소들의 배열방법에서 후기 미니멀의 성향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의 사유는 완전히 동양적 사유, 즉 동양사상, 특히 도가사상과 같은 명상과 은유로 돌아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변화는 재료 사용에서부터 보다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권석만은 나무, 철, 점토와 석고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주로 돌을 사용하는 조각가 인데, 이번 작품에서그가 사용하는 돌은 우리나라 보령에서 나는 오석이 대부분이다. 보령의 오석은 흙 속에 뭍힌 돌을 캐내기 때문에 겉에 철분기가 돌아 더욱 자연스러운 빛깔을 갖는 돌로써 연마를 하게 되면 칠흙같이 고운 검은 빛을 내는 아주 단단하고 아름다운 돌이다. ● 그의 작품은 테라코타로 작품 이미지를 형상화 한 후, 그와 유사한 형태의 돌을 선택하여 조형적인 심상(心象)을 부여함으로써 완성된다. 이러한 제작 과정은 작가의 개성으로부터 작품을 단절시키는 전략으로 본 장 아르프의 우연성 개념과 유사하다. 이 우연의 법칙이란 모든 법칙을 포용하는 것이며, 모든 생명체의 근원처럼 불가해한 것이다. Herbert Read, Art of Jean Arp (Thames and Hudson, 1968, Abrams, 1968, pp.38-39 참고. 예술작품을 자연물의 일종, 즉 여러 가지 자연적 형태에 첨가된 하나의 독특한 유형으로 간주하였던 그는 1930년경에 삼차원의 조각을 만들면서 그것들을 응고물(Concretions) 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응고물이란 고체화된 것, 즉 돌, 식물, 동물, 혹은 인간의 덩어리를 의미하며 계속 자라왔던 어떤 것이다. James Soby, Arp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1958, pp.14-15. (로잘린드 크라우스 KRAUSS (Rosalind), 현대조각사의 흐름(Passages in modern sculpture), 윤난지 역, 예경, 1997 p. 165에서 재인용) 아르프의 변성과정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합리적 관련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성장이라는 현상을 연상시키는 시간의 흐름을 암시한다. 이것은 마치 식물이 자체의 생명주기의 변성단계를 거쳐 자라나는 것과 같다. ● 권석만의 작품제작과정에서 보여지는 우연성의 개념은 아르프와 유사 하지만, 그의 응고물에 대한 사유방법은 전혀 다른 관점을 보인다. 외부세계를 제각기 분열된 대상과 사건의 집합으로 보는 데카르트적인 사유가 아닌 동양의 범자연주의적인 사유체계에서 비롯한다. 권석만은 이미 응고된 물체인 돌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원리를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만난다. 그의 교육과 유학생활이 가져온 환경적 요인은 그의 작품에 동서양을 융합하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며, 동서융합은 우주를 자연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연 순응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로 이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곧 범자연주의적 사유이다. 김복영은 그의 저서『눈과 정신』에서 범자연주의를 자연에의 순응, 자연과의 몰아적 조응에서 유래하며, 자연회귀를 통한 사물의 이해는 물질로서가 아니라 사물을 매만지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몸짓과 동작, 즉 행위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이를 주도하는 자체가 개념이라는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고 언급한다. 다시 말하면 범자연주의 속에는 해석적 체험이 녹아 들어 상징적인 국면이 내재해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물성적 감성은 1960-70년대의 비표상주의적 개념미술세대들의 미술에서 그들의 감성을 창출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 움직임의 주도 세대들은 주체와 사물이 이자 대립(two termed opposition)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체( contininuum)로 생각했다.

권석만_사유_보령오석_150×65×38cm, 105×57×55cm_2007
권석만_사유_보령오석_130×70×40cm, 105×57×55cm_2007
권석만_사유_보령오석_190×120×85cm_2007

권석만의 작품들 중에 안쪽을 비워내거나 구멍을 뚫어놓은 작품들은 핸리 무어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무어의 작품에서와 같이 권석만의 작품에 보이는 윤곽선은 조각 재료가 본래 가지고 있는 덩어리의 한계 내에서 끝나고 있으며, 인체의 중앙부는 속이 빈 입체로 파여 있는데, 그것의 결과로서의 형태 사이의 대위법적(對位法的)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체형태와 그 안에 있는 형태 간의 상호관계를 지각하게 된다. 즉, 외부의 덩어리는 중심부에 생명체의 내장처럼 놓여진 빈 공간을 감싸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 빈 공간의 형태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어 전체 형태로 발전해 나가는 듯이 보인다. 조각작품의 유기적 형태와 재료는 상호의존적이어야 하며, 조각가는 직접 작업을 하면서 재료와 적극적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무어는 조각이란 개념적 촉각성(ideal tactility)으로 복귀하는 것이며, 관람자를 작품을 전체로서 파악할 수 있는 관계 속에 위치시키고자 했다. ● 관객과 조각상의 촉지적인 연결은 충만(Pleins)과 비어있음(Vides)의 유희(Jeu)에 대한 가장 중요한 관점을 나타낸다. 조각상은 이러한 모든 볼륨이 지닌 충만과 공백의 교체에 대한 감정을 최대한 제공한다. 그리고 내가 조각상 앞에 있게 됨으로써, 조각상의 이러한 충만과 공백의 연결은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과 연관되어 상호간에 뒤얽힘에 대한 윤곽이 형성된다. 이러한 무어의 윤곽은 환경과 관계를 맺는 건축적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한계는 구성의 힘을 강화시키며, 한정된 공간 속에 포함되면서 집중된다. 그것은 관찰자와 그를 둘러싸는 공간 사이의 매개자인 것이다. 한 오브제의 공간성은 그것이 뚫려지고 관통될 때 절정에 달하게 된다. 비워낸 돌은 외적인 한계를 지닌 장소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에서 분리된 돌의 외형은 경계 지워진 작가의 내면공간으로 간주 할수 있다. 이 공간은 우주를 질서와 생성을 담는 그릇이 되는 셈이다. 권석만은 돌들을 하나, 즉 전체로 두기도 하고 둘로 나누어 그 속을 비워내기도 하며, 여러 개로 토막 내어 비워낸다. 그는 잘려진 돌들을 하나의 선을 이루는 연속체로서 통합하거나 한 덩어리로 배열 하기도 한다. 또한 비워낸 돌의 안 쪽에 아직 남겨둔 돌을 연마하여 오석의 깊고 명료한 검은 색으로 기하형태를 만든다. 이 형태는 조각가의 연금술과 만나 검고 수려하게 반짝이며 패인 공간의 안 쪽에 생명체처럼 솟구쳐 있다. 다른 한편, 권석만은 한 개의 덩어리 그 자체인 돌, 즉 채워져 있는 돌에 우리의 전통 구름 문양이나 기하형태를 반복과 중첩되는 이미지를 투영하여 패턴화하고 있다. 문양은 움직임과 더불어 성장하며 순환한다. 덩어리 전체를 형성하는 이들의 형태는 공간의 지표가 되기도 하며 공간에 운동감을 창출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권석만에게 있어서 돌 자체는 하나의 세계라고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돌의 외곽은 외적 요인이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空)의 세계이며, 내부는 그의 자아를 드러내는 내적 요인이 된다. 그의 돌들은 개별로 분리되지 않고 부분과 전체의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된다. 이러한 전체적인 배열은 가변성(可變性)과 상보성(相補性)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가중 시킨다.

권석만_성장_보령오석_133×85×45cm_2007
권석만_성장_보령오석_133×85×45cm, 105×100×65cm_2007
권석만_성장_보령오석_190×65×32cm, 148×80×50cm_2007

그의 작품 명제 관조, 성장, 사유는 이와 같은 작업과정을 포괄하고 있다. 마치 돌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자연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조각가의 태도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비움과 채움, 부분과 전체, 모호와 명료 등의 양면성은 도교사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도덕경 전반에 표현된 상대성과 가치변화의 원리로 보며, 노자 사상도 자연 속의 모든 변화를 음양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기하학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대립항으로 설정하여 유기적 결합을 시도한 그의 작품에서 권석만은 원석 덩어리에 허공을 만들고 그 안에 실체적 요소인 기하학적 요소를 결합함으로서 견고한 이(理)와 생동하는 기(氣)를 조화시켜 나가고 있다. 고 피력한 바 있다. ● 이번 전시에서 권석만의 작품을 대할 때 우리가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돌 하나에서 우주를 볼 수 있는 조각가의 마음일 것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작품의 외형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있는 또 다른 자연을 만나는 것일 터이니까. ■ 이봉순

Vol.20070706f | 권석만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