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7_0704_수요일_04:00pm
우석홀 갤러리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 56-1번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50동 Tel. 02_880_7471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가 재개발로 인해 사라진 후 그저 평범했던 도시 외곽의 변두리 동네와 그곳에서의 삶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늘 상 거기에 있을 것만 같은 주변의 환경은 현재의 도시 구조 속에서 생각보다 쉽게 변질되고 파괴되기 쉽다는 것을 체감하였다. 또한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공간이 파괴되면 그와 동시에 그 장소와 관계된 개인의 경험과 기억, 그 밖의 인간관계 등이 왜곡, 변질되어 심리적인 상실감을 남기게 된다. 실재하는 것과 상상 혹은 공상하는 것, 파괴와 생성의 경계는 이미 내 머릿속에서 불투명해졌다.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들도 단 몇 년 내에 얼마든지 그 자리에서 사라질 수 있음을 우리는 가까운 일상 속에서 쉽게 그것을 목도하곤 한다.
'섬'과 '이불 터는 여자' 등의 물속에 잠긴 아파트 시리즈는 어머니처럼 나를 키워주었던 공간이 사라진 후 이사 간 신도시의 아파트촌에 대한 인상을 그린 것이다. 삭막한 현실의 공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와 가족들에 대한 감정이 뒤섞이면서 깊은 물속에 잠긴 듯한 풍경을 그리게 되었다. 물과 같은 파란색 면은 복잡한 아파트로 가득한 집 앞 풍경을 단순화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로 인해 가족들이 제각기 서 있는 아파트 간의 거리감이 생기게 되었고 마치 섬처럼 떠 있는 모습이 되었다. 특성상 평면적이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은 삭막함과 심리적 공간감의 확장을 위해 내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그것은 그림 속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있는데, 내가 보았던 사진 속 주변 풍경의 난잡함을 정제시키고, 그림 속 묵묵히 행해지는 노동의 행위들을 무력화시키기도 하며, 궁극적으로는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의 풍경들이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장을 만든다. 물이라는 장치 외에도 내 주변에 떠도는 물건이나 사진 속에서나 볼법한 장면들이 적절히 제 공간을 차지하고는 서로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것들은 섬처럼 외롭게 떠 있으면서도 어떤 관계를 맺고자 한다.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현실의 공간 속에 있으면서도 상념에 젖은 듯한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은 곧 나 자신의 반영인데, 번잡하고 여러 사건, 사고가 많은 일상 속에서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사색하고자 하는 태도가 반영되어있다.
'파란대문 집' 시리즈는 과거에 살았던 집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이미 사라진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기억을 이어 붙이듯이 그려나가면서 그곳에 응축된 시간과 신체에 각인된 경험들을 그려나간다. 이것은 실재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지고 파괴되는 공간 혹은 그 주변 관계에 대한 최소한이면서 동시에 최대한의 나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기억에는 실재의 경험과 사건들이 응축되어 있고, 시간이 내포되어 있다. 기억으로 축적된 이미지들은 과거를 반추하는 현재의 시간 속에서 그 반추의 결과로 재조합되어 현실 속에서 떠오르거나 현실의 상과 겹쳐진다. 그것은 꼭 시각적인 부분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소리, 빛, 냄새 등 오감으로 받아들여진 것이고, 그것이 만들어 놓은 풍경은 이미 과거의 것이 아니다. 새로운 현재에 대한 나의 시각 또는 철학이 반영 된다. 실재로 기억을 끄집어내어 조합하듯이 그려내는 나의 드로잉은 순차적으로 과거의 이미지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현재의 매 순간이 반영된 이미지이며 또 그려진 자체의 이미지에 대한 반응으로 또 다른 이미지를 끌어오게 된다. 과거의 잔상을 현실화시키고 그 현재의 이미지는 또 다른 과거나 상상속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이렇게 끄집어낸 이미지는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낸다. 내가 그리는 화면의 공간은 시간이 축적되어 있으며 내가 상상하는 만큼의 범위의 공간에 열려져 있다. ■ 이혜인
Vol.20070704f | 이혜인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