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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28_목요일_05:00pm
롯데갤러리 광주점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7-1번지 롯데백화점 8층 Tel. 062_221_1808
안티노미, 또는 대립과 대비의 조형미 ● 정운학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건넨 명함을 보고 내심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명함에는 신세계갤러리 작가상 수상전의 광경을 실었는데 전면과 후면에 배치한 두 추상작품의 양식이 극명하게 달랐다. 이렇듯 정운학의 조소/회화--채색된 조소 또는 3차원의 회화--에는 상반되는 시/지각의 표현과 사유의 방식이 태연히 병존한다. 무정형의 형태와 기하학적인 구조뿐만이 아니라 내러티브/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장치등, 소위 모더니즘의 미학논리로는 설명하기 힘든 조형요소조합이 작품마다 예측하기 힘든 형식으로 표현된다.
상호간의 관련성이 희박해 보이는 조형상의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논리 아닌 논리로서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정의한 안티노미 (antinomy)의 개념이 유력하게 떠오른다. 안티노미는 동등하게 타당성을 갖는 두 명제가 서로 대립,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는 이율배반을 의미하는 철학용어이다. 이 경우 안티노미는 분산되어 있는 상태 그대로 분리된 이성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의미가 강하다. ● 이러한 개념체계처럼 조소와 회화의 쟝르를 넘나드는 정운학의 작품은 몇 개의 군을 형성하며 독자성이 강한 세계를 형성한다. 불연속적인 개별성이 외관상 작품전체의 일관성보다 위에 있음을, 작가는 하나하나의 작품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래서 정운학이 보여주는 다양한 포름의 세계와 유연한 사유의 폭 만큼이나 그의 작품에 대한 우리의 접근은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특성과 개별적인 생명력이 유별나기 때문이며 흔한 일관성을 기대하다가는 혼란에 빠질 수 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운학의 작품관은 일관된 양식을 폭력으로 간주했던 독일출신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그것과 흡사한 일면이 있다. (정운학이 독일에서 유학하였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리히터는 특정한 개인양식이 신비화되면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관람자의 반응이나 상상을 제한시키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는 프랭크 스텔라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기던 미니멀한 회화양식을 후기에는 백팔십도 방향을 바꾸어 표현적인 형태와 원색을 가득 채운 삼차원의 작업을 하며 긴 시간의 경과에 따른 변화의 과정을 보여 주었던 경우와는 다른 경우이다.
정운학은 조각작품을 통해 시각과 촉각 또는 지각의 모순점을 제기한다. 「구석」이란 작품은 실제공간에서는 불쑥 튀어 나와 있지만 회화의 눈속임(trompe l'oeil)기법을 사용하여 역으로 공간의 후퇴가 느껴진다. 나아가 방의 한 구석을 의미함으로써 사유의 공간을 암시하는 내러티브의 연상을 수반한다. 「Dom」의 경우에는 관객인 우리에게 가까이 위치한 부분이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라인」은 정면에서 보면 넓은 직선이 평면을 이루지만 측면에서 보면 깊이가 다르게 표현된 각각의 선이 입체감을 살린다. 「기억의 공간들」은 다수의 자그마한 채색된 입체작품들을 벽에 모아서 설치하였는데 회화의 평면성도 동시에 형성된다. 회화를 전공했던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회화의 2차원적 조형언어와 3차원의 조소형식이 조화와 대립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든다.
나아가 정운학은 형태상의 대립항을 병치시키는 미학상의 전략을 작품의 의미연상으로 확장해간다. 전시장의 바닥에 설치하는 검게 채색한 무정형의 작품들은 묵묵부답, 그야말로 모더니즘의 이상화된 환원추상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조르주 바타이유가 정의한 앙포름(Informe)의 압권을 보여준다. 그리고「입구」와「기둥」은 유기적인 표면처리와 직립의 형태구성이 추상표현주의식의 원초적 조형물을 떠올린다. 신작인「배회」는 여러 개의 벽돌만한 입방체에 자신의 신발을 그린 후 원의 형상으로 벽에 설치했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순환구조에서 명상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그런가하면「무제」는 기다란 스텐레스 철사들과 거기에 매달린 작은 돌덩어리들이 이루는 수목과 같은 형태와 더불어 수직의 운동감이 자연에 관한 의미연상을 한층 더 강화시켰다. 반면에 수평으로 설치한 유사한 구조는 의미연상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삼차원상의 드로잉이라는 형식미학에 집중한다. ● 정운학의 작품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시/지각적 습성에 시비를 건다. 그리고 상충하는 형식/내용은 다양한 사유와 연상으로 이어진다. 바로 이 때문에 미학적인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의미의 깊이를 읽어내야 하는 철학적 차원의 심연이 그의 추상작품에는 내재하는 것이다. ■ 한진
Vol.20070703g | 정운학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