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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618_월요일_06:00pm
기획_박소영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분도 대구시 중구 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F Tel. 053_426_5615 www.bundoart.com
판화가 이성구는 몇 년 전부터 판화와 더불어 회화 작업을 병행해오고 있다. 때로는 하나의 화면에 판화기법과 회화의 프로세스가 공존하는 작업을 보여주기도 한다. 에칭이나 아쿼틴트 같은 전통적인 판화기법에 의해 제작된 판화와 천연염료를 이용해 한지 위에 스탬프식으로 찍어나가는 회화 작업에서 '찍혀진 이미지'와 '그려진 이미지'라는 방법론이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갤러리 분도 전시에서도 이성구는 판화와 동시에 회화작업을 선보일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심상', '자연과 심상의 합', '시간의 저편으로부터의 이미지들' 등으로 불리는 그의 작업은 지속적으로 자연의 원상(原象)과 마음의 뜻이 상호작용하는 근저를 마련하는 것으로 점철되어 왔다. 이를 위해 이성구는 불교경전의 목판화, 민화, 범종의 부조 등 우리나라 전통문화로부터 차용된 이미지를 독특한 방법으로 재해석하여 간결하게 양식화하는 과정을 거친 후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배열한다. 절제된 검은 갈색톤 이미지들은 우리의 가장 먼 기억으로부터 추출된, 그 어떤 재현적인 의미와 무관한 형태, 또는 형을 갖지 않는 형태의 모태(matrix)라 하겠다. 이성구의 작업이 점유하는 공간에서 우리는 시간의 프리즘을 통해 안정성,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현상, 나아가 심오함을 느낄 수 있다. ■ 박소영
시간의 저편으로부터의 이미지들 ● 이성구는 원래 판화 작업을 주로 하는 작가지만, 언제인가부터 판화와 함께 회화 작업을 병행해오고 있다. 근작에서는 하나의 화면에 판법과 회화의 프로세스가 공존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여기서 각자의 존재와 방법론이 서로 구분되지 않은 채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찍혀진 이미지와 그려진 이미지와의 차이를 구별할 수가 없다. ● 판법의 도입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은 작가가 일명 스탬프프린트로 명명한 특유의 방법론을 도입하고 있는 점이다. 마치 돌의 표면에 특정의 문자나 양식화된 이미지를 얇게 양각(찍어내고자 하는 이미지가 도드라지게 하는 일종의 돋을새김)한 전각처럼, 스펀지의 표면에다가 이미지를 양각해서 이를 화면에 대고 눌러서 찍어낸다. 이때 스펀지는 전각에서의 돌과는 달리 그 소재가 유연하고 부드러운 탓에 그 표면에 이미지를 새기기도, 그리고 이를 화면에 대고 눌러 찍을 때 힘을 조절하기도 쉽지가 않다. 이는 프레스를 통과한 판화나 전각에서의 돌이 이미지를 얻기 위해 가해지는 압력이나 힘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과는 비교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스펀지의 단점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예기치 못한 형상을 획득한다. 스펀지를 화면에 대고 눌러 찍을 때 힘을 조절하는 방식으로써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실제 이상으로 살짝 눌러 찍으면 이미지가 덜 찍혀 나와, 마치 탁본된 이미지나 고문서에 나타난 전작판화처럼 예스러운 느낌을 주는 형상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필요 이상으로 힘을 주어 찍으면 찍혀진 이미지 아래로 안료가 흘러내려서 자연스럽고 회화적인 느낌을 주는 형상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정형화된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회화적이고 유기적인 화면으로 나타난다.
이때 작가가 이미지로 차용한 주요 소재들을 보면 변상도(불교 경전에 삽입된 목판화로서, 경전의 주요 내용을 도해한 그림)에 나타난 부처 상, 범종의 표면에 양각된 비천상, 민화에 나타난 호랑이와 거북이 그리고 나비와 새 문양과 같은 전통적인 것들이다. 하나같이 그 이면에 민족 정서를 반영하고 있는 민속적이고 해학적인, 그리고 소박하고 친근한 것들이다. 작가는 이 모든 소재들을 주로 고서에 삽입된 목판화나 붓 그림으로부터 취해오는 한편, 이를 자신의 그림에 맞춰 일정하게 양식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이 소재들은 하나의 화면에 따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같은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배열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한편 이때의 반복적인 이미지는 작가가 세심하게 조율한 탓에, 사실은 그 속에 같으면서도 다른 이미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함께 작가는 친근하면서도 자연스런 느낌을 주는 화면을 얻기 위해 한지에다가 고운 흙으로 바탕처리를 한다. 그리고 그 표면에다 천연안료와 엷은 먹을 십수 차례 덧발라 안료가 한지에 충분히 배어들게 한다. 이렇게 그 자체만으로도 일정정도 표정을 연출해낸 바탕과 여러 형태의 비정형의 얼룩들, 그리고 찍혀진 이미지와 그려진 이미지가 화면 속에서 하나로 어우러지게 한다. 그리고 콩 즙을 이용해 최종적으로 화면을 마감한다. 이로써 화면은 마치 그 표면에 우둘투둘한 비정형의 요철과 질감을 가지고 있는 화강석의 탁본된 이미지와 함께, 오랜 시간의 풍화를 견뎌낸 색 바랜 이미지를 대면하는 것 같은 고풍스런 인상을 준다. 마치 일상을 함께 해온 손때 묻은 전통 가구의 한 단면을, 그리고 그 표면이 닳아 너덜너덜해진 고서적의 표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 더불어 주로 갈색조의 모노톤으로 나타난 단조로우면서도 숙성된 깊은 맛을 함축하고 있는 색채나 질감이 마치 시간의 저편으로부터 건져 올린 듯한 아득한 느낌을, 희미해진 기억의 재생력으로 겨우 복원해낸 듯한 아련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 고충환
Vol.20070624d | 이성구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