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가나아트 스페이스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620_수요일_06: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2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Tel. 02_734_1333 www.ganaart.com
기억의 풍경 ● 실로 숨가쁜 조형 형식의 진화를 거듭한 끝에, '텅 빈 캔버스'의 막다른 종착점으로 치달았던 20세기미술... 김이수의 회화는 그 도정의 어느 한 길목을 떠올린다. 그녀의 작품 양식을 요약하는 무채색 혹은 청색의 모노톤, 절제된 드로잉과 캐스팅(저부조)은 모더니즘 회화가 주창했던 순화와 환원의 미학에 아주 잘 부합된다. 표현의 금욕성이야말로 형식주의 미술이 내걸었던 중요한 조형 강론이 아니었던가. 그렇다. 그녀의 작품은 회화의 순수성과 고유성, 요컨대 평면성을 지향하며 일체의 일루전을 배제했던 추상회화로 보아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 따라서 작품에는 당연히, 모더니즘 회화에서 '2류'로 치부됐던 구상미술의 잔재, 이를테면 내용이나 이야기가 아예 사라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에는 단지 반복적인 손놀림의 '그리기 흔적', 미리 계획된 틀의 '떠내기 행위'만이 창백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김이수의 작품 앞에 다시 선다. 이번에는 모더니즘 회화의 냉랭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아련히 피어오르는 한 폭의 풍경과 만난다. 잔잔하고 담담한 풍경이다. 짙은 안개 속을 헤집듯 혹은 꿈속을 정처 없이 헤매듯 좀처럼 걷잡을 수 없는 희미한 풍경이다. 풍경 이전의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풍경 너머의 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막 생성 중인 풍경이자 어느덧 저 멀리 아득히 소멸해 버릴 것만 같은 풍경이다. 손에 잡힐 듯한 눈앞의 현실 풍경이자 시공을 뛰어넘는 상상의 풍경이기도 하다. 사상(事象)의 대극 양쪽 모두를 함축하는 풍경, 혹은 사상의 대극 양쪽 사이를 가로지르는 풍경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김이수의 작품에는 차가운 형식주의의 논리를 비집고 주제나 내용이 헤쳐 들어갈 틈새가 열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김이수의 풍경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풍경은 구체적이고 일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로는 이루 다 담아낼 수 없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이수는 그리기와 떠내기의 방법으로 풍경을 만들어낸다. 석고붕대로 평평한 석고판에 연필로 풍경을 그리거나 석고붕대(혹은 실리콘)로 풍경을 찍어낸다. 왜 하필 석고판일까. 깨지기 쉬운 아슬아슬한 재질, 미끄러질 듯한 질감, 미묘한 뉘앙스의 가장자리... 연필 드로잉은 차라리 석고판에 미세한 상처를 내는 행위처럼 보인다. 무엇을 구체적으로 그린다기보다 짧은 연필 자국을 무수히 집적해 가는 단순 반복 행위이다. 캐스팅 역시 줄무늬나 나뭇잎과 같이 지극히 단순한 형상을 특별한 가공 없이 떠낸 것이다. 그러니까 석고판은 풍경을 불러내거나 풍경을 각인하는 오감의 더듬이, 기억의 통로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하여 김이수는 그린 것도 아니고, 그리지 않은 것도 아닌 어중간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거기에서 전진도 후퇴도, 발전도 퇴보도 없는 그림, 달리 표현하면 중립지대 혹은 사이의 그림이 탄생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 풍경은 우주를 연결하는 하늘이요, 왕양한 바다요, 땅을 딛고 끝없이 펼쳐지는 대평원으로 보인다. 이른바 숭고미(sublime)로 가득 찬 풍경이다. 김이수는 이 풍경이 자신의 과거 추억이나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풍경은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 낯이 익다. 언젠가 한번 쯤 가 본 적이 있는 풍경처럼 보인다. 기억 속에 스쳐가는 풍경이요, 마음을 치는 풍경이다. 이렇듯 김이수의 회화는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마치 데자뷰(deja vu) 현상 같은 걸 제공한다. 김이수의 캔버스는 결국 우리에게 '시간의 여백'과 같은 의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저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는, 다시 찾은 시간을 새롭게 채워나가는 은밀한 기억의 보물창고... ■ 김복기
Vol.20070620e | 김이수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