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7_0601_금요일_05:00pm
갤러리소헌 대구시 중구 봉산동 223-27번지 Tel. 053_426_0621
갤러리소헌에서 6월 1일에서 8월 31일까지 장기전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대구 미술시장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특별한 손님을 모시는 계기가 되었다. 파리화단에서 인정받는 두 화가의 작업을 만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로 이번 전시는 2007 KIAF에서 주목할 만한 작가로 구성하여 그 동안 많은 작품 활동과 초대전, 국내외 교류전은 물론 국제아트페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이 두 작가에 대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 우주를 담다? ● 이 두 작가가 가지는 공통된 점은 파리에서 활동을 한다는 점 보다 우주라는 무한한 바탕에서 그 시작과 끝을 향한다는 데 있다. 그 안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많은 질문을 두 작가는 또 다른 구성과 강렬한 색채들로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확연히 차이가 있는 두 작가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그라미의 형태는 모든 기하학적 도형 중에서 가장 힘 있는 근본적인 기호로 작가가 선택한 상징물이라 할 수 있겠다. 선택된 상징은 자기 자신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고 오히려 다른 곳에 존재하는 의미를 지시하면서 자신만의 신비함을 잃지 않는 힘이 있다. ■ 갤러리소헌
"거대한 우주 속 인간의 모습을 담는다." - 백진 ●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처음에는 아름답게만 느껴지지만 곧 광대한 우주에 대해 경외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우주 속에서 한 점도 안 되는 인간의 삶에 대해 겸손해지게 한다. 은하수가 빛나는 밤하늘처럼 백진의 그림은 밝고 따뜻하지만 매우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은하수 연작은 거대한 우주 속의 인간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림을 본 사람들이 화면 안의 사각형과 곡선이 집을 연상시킨다고 하더군요. 그 집은 우주 속에 있는 또 하나의 우주가 될 수 있겠지요."
그의 작품세계는 동서양에 동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크릴, 오일, 메탈, 크리스털 등 다양한 재료를 혼합 사용해 바탕과 모티브간에 완벽한 균형을 추구하는 표현기법은 매우 서구적이지만 내용은 동양적인 판조의 세계를 담고 있다. 바탕색의 강한 대비는 동양철학의 음양의 원리를 나타내며 원색으로 빛나는 동그라미는 절대자 혹은 작가 자신이나 감상자가 되기도 한다. 동그라미는 모든 기하학적 도형 중에서 가장 힘있고 근본적인 기호이기 때문이다. 또 그가 즐겨 사용하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 검정은 동양의 오방색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 중에서도 그는 노란색을 특히 좋아한다. 태양의 색깔인 노란색은 힘과 활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파리화단에서도 원색을 그만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강한 색상들을 거슬리지 않게 사용하는 그를 두고 동료화가들은 '색깔 있는 남자' '야한 남자'라고 부른다. 원색과 중간색의 적절한 조화 때문에 그의 그림은 삶과 죽음, 밝음과 어두움 등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어둡거나 무겁지 않고 밝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세상은 살만한 곳,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긍정적인 가치관이 그림에 반영된 것이다.
"바로 이 자리에" - 박동수 ● 1964년 4월 25일 서산 해미에서 태어난 박동수는 프랑스 파리 8대학,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0년, 그는 프랑스에 터를 잡고 아뜰리에를 열었다. 이는 회화로부터 전위적인 실험주의 비디오 설치작업에까지 이르는 그의 기나긴 창작여정의 시작이었다. ● 그의 작품들을 처음 접할 때 우리가 느끼는 경이로움은 액션페인팅이나 조각작품 같은 장르에서와 느끼는 것과 같이 그의 작품 자체가 뿜어내는 에너지로부터 비롯된다. 박동수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폭파하는 듯한 에너지는 작가 자신에 의해 완전히 제어된 듯이 보인다. 폭파라는 단어는 그의 작품에 비한다면 그다지 과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작가 박동수는 대우주적인 차원에서 행성간의 충돌에서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회화에서는 역동성과 균형, 레디메이드와 즉흥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 그러나 그의 작품들 전체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원시상태의 우주발생론은 신기하게도 신체기관이나 세포와 같은 내적세계 및 소우주적 세계와 맞닿아 있는 듯이 보인다. 아크릴, 유화물감, 크레피, 한지, 먹물 등의 밀도 높은 혼합물을 이용하여 표현된 이러한 형이상학적 벡터들은 그의 작품에 밀도와 불투명함을 부여한다. 그의 작품들 중 수 많은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딱딱한 껍질과도 같은 이 두터운 층은 마치 용암의 표면과 같이 보인다. 박동수는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원초적인 에너지, 욕망, 폭력과 무의식의 힘의 장소인 이 세상의 기원이라는 테마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상을 그려내기 위하여 박동수가 선택한 방식은 구상도 비구상도 아니다. 전위적인 회화에 가까운 그의 성찰은 구상과는 대비된다. 그러나 상징주의를 배척하고 있는 그가 작품에 상징과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이 완전히 비구상적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 이렇게 예술적인 언어를 수없이 곱씹으면서 구상과 비구상, 두 세계 사이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머무르는 것, 이것이 바로 박동수의 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상징적인 의미들을 명백히 규정된 표지판대로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오히려 상징을 관객의 마음속에서 즉각적으로 질문들을 만들어내는 계기, 도구, 동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박작가가 자주 이용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원형적인 형태인 원과 정사각형을 예로 들어보자. 이 형태들은 길을 잃은 우리의 시선을 작품에서 보여지는 용암과 같은 형상의 가장자리로 이끌면서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비구상적이고 추상적이고 자기 지시적인 그림을 보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우리는 이 형상을 보면서 이러한 확신을 잃게 된다. 관객은 예기치도 않은 곳에서 불쑥 찾아드는 감각적인 불안에 의해 관통 당하고, 말하는 행동 자체보다 더욱 크고 참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 정신적이고 선험적인 세계가 펼쳐지고 짧은 시간 동안 혼돈, 장소적 박탈, 시간적 박탈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원은 우리를 천상의 완벽함과 완전함 가까이 가도록 해주고, 정사각형은 우리를 인간적이고 다듬어진 것, 완성되고 정착된 지상의 체계 안으로 불러들인다.
이렇게 이 두 형태는 형상과 비형상, 천상과 지상,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 표현할 수 없는 것 사이의 줄다리기에서 작품과 관객과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켜켜히 쌓인 표면들 위로 다시 시선을 옮기자마자 이 작품들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사라져간다. "바로 이 자리(Cette place-l)라는 매우 야심적이면서도 인간조건의 겸허함을 보여주는 제목을 가진 연작 시리즈는 가장 전형적인 창작 메커니즘과는 거리가 먼 방법을 이용하면서 우리를 우리 자신의 존재 너머로 인도한다. 상징은 자기 자신의 의미를 갖고 있지 않고 오히려 다른 곳에 존재하는 의미를 지시하면서 자신만의 신비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 박동수는 이리하여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은유와 복잡한 연상기법으로 만들어진 은밀한 조직망을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은유와 연상기법은 고의적으로 미로와도 같이 복잡하게 표현되었고 관객으로 하여금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하지만, 잘 조합된 재질과 형태로 인해 놀랍게도 더욱 작품에 친밀함을 느끼게 해준다. 박동수의 작품들은 단순한 배출구가 아니라 놀라운 독창성과 일체적이고 심오한 세상의 이치에 대한 이상적인 준비과정을 보여준다.
Vol.20070618b | 우주를 담는 2人의 경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