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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갤러리 본관 1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때는 구월이나 시월쯤이었다. 유난히 맑은 하늘에 쏟아지는 햇빛이 아까워 무작정 남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아기자기 언덕 같은 산이 둘러싼 바다가 보일 때까지 그리고 그 바다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유난한 연두빛이 도드라진 조그마한 섬에 도착했다. 인기척 없는 조용한 섬그늘이 선뜻하다 싶을 즈음 어디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근처 사람 사는 집하나 없는 섬인데 어떻게 예까지 건너왔을까 신기한 맘에 말을 걸었더니 하도 상냥한 얼굴로 냐~옹 대꾸를 하길래 마침 가지고 있던 쥐포를 꺼내 들었다. 벤치에 앉아 쥐포 한 마리를 둘이서 나눠먹고 고양이는 배가 불렀는지 발밑에서 한참이나 앉아 졸다 처음 나타날 때 그러했듯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내가 그 섬에 간 것은 우연이고 만남은 낭만이었으며, 고양이는 미스테리였다. 적어도 나에게 섬이란 그런 느낌으로 기억된다.
섬에 대한 추억 한 자락을 들춰내지 않아도 예술과 문학 속에 나타나는 섬의 이미지 역시 대게 단절과 고립, 모호하고 신비로운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로 형상화되곤 한다. 그르니에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섬-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isole. 섬Ile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혼자뿐인」인간. 섬들, 혹은「혼자씩일 뿐인」인간들" -에 비유했고, 쥘 베른의『신비의 섬』은 외부와의 철저한 고립에 대항하여 정복해야 할 미지의 세계를, 걸리버가 세 번째로 여행했던 천공의 섬 "라퓨타"는 현실세계에서 유리된 채 떠다니는 기하학과 사색의 공간으로, 이청준의 신비의 섬 『이어도』는 현세의 모든 고통과 갈등이 해소된 피안의 세계, 모든 이가 꿈꾸는 이상향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섬의 이미지는 변내리의 작업에서도 무겁지 않은 부피로 담담하게 나타난다. 옅은 담묵을 말렸다 다시 덧그리는 과정을 반복해 형태를 잡고 물기 없는 까실한 붓으로 하나하나 선을 찍어내어 섬세하지만 담백하고 부드러우면서 삼삼한 섬의 얼굴들을 그려낸다. 작가는 유난히 돌 작업에 관심이 많은데 이는 필선이 주는 여러 표정들을 돌만큼 선명하고 꾸밈새 없이 드러내는 소재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얀 종이 위로 먹이 퍼지는 순간 눈으로 읽히는 선의 소리, 먹과 물의 비율이 주는 다양한 농도와 손맛은 작가에게 중요한 회화적 모티브가 된다. 이번 전시 역시 이러한 돌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각각의 돌들을 다시 배열하고 재조합함으로써 새로운 돌들의 군집,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말간 섬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의도적인 배경 생략은 어느 곳에도 연계되지 않고 부유하는 섬의 표상을 강조하고, 여백에 사용된 펄은 반짝이는 빛의 이미지로 섬의 표정에 생기를 더한다. 그래서 이곳의 섬들은 고독을 말하기엔 너무 가볍고 개념적인 수식어를 덧붙이기에는 더없이 산뜻하다. 아마도 작가에게 작업의 의미가 가시밭길 가득한 고행이라기보다 하나의 위안이자 안식지이고 휴식처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 손지연
Vol.20070614d | 변내리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