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대안공간 반디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525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051_756_3313 www.spacebandee.com
소리태엽이미지장치 ● 심준섭의 귀에는 소리태엽장치가 달려 있다. 하지만 이 장치는 세상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의 귀가 내보내고 있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부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귀의 기능을 위반하는 장치, 귀가 입이 되고 혹은 눈이 되는, 그래서 그의 세상은 매번 시끄럽다. 통제되지 않는 시끄러움 때문에 그의 작업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일까. 반디에서의 2002년 열렸던 개인전『내 안의 소리를 바라보다』전은 귀가 그에게만 들려주었던 소리들을 유기적인 기계장치로 만들어 그 시끄러움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했다.
가령, 소리를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은 그가 독일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렸던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물과 소리의 이미지를 포착해낸 드로잉은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이, 역설적으로 매우 정갈하게 써/그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드로잉을 만날 수 있을 터인데 평면 드로잉은 소리의 입체적인, 그래서 물질적인 층위를 매만지는 데에는 용이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가 드로잉을 통해 소리를 부여잡는 데 그치지 않고, 혹은 드로잉이 도달할 수 없는 '침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침묵 자체에 녹아들어 있는 보철물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 이 때문에 그는 도대체 볼 수 없는 소리태엽장치를 일종의 기계들을 구성해야만 했다. 여기서 이 '기계들'은 기존의 권력화 된 미술언어가 욕망하는 소리들을 듣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그의 소리태엽장치는 점점 자본의 논리 안에 포섭되는 미술시장이 계속해서 빼앗아가는 시끄러움을 되찾기 위한 징후로 읽힐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심준섭이 또다시 자신의 귀에 박힌 소리태엽장치를 어렵게 꺼낸 것은 '귀'의 다양한 능력들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소리 지르는 귀, 프로젝터를 내장한 귀 , 사람을 만지는 귀, 그러면서도 또 들을 수도 있는 귀 말이다. 그래서 디지털 피아노와 철관, 소리와 물을 이미지로 만들어낸 영상작업들 모두 그의 '귀'를 대신한다.
전시공간 입구에 설치된 디지털 피아노는 심준섭의 귀와 매우 닮아 있는데, 피아노의 건반을 눌렀을 때, 그 자신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다만 디지털 피아노와 기민하게 연결되어 있는 스피커들이 음파를 통해서 물의 파동을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다. 디지털 피아노를 누르면 스피커가 소리를 내는 동안 상부에서 진동하는 물들을 캠코더가 실시간으로 찍어댄다. 그리고 캠코더가 찍어 낸 이미지들은 다시 벽에 프로젝션 된다. 이 모든 과정은 관객이 디지털 피아노의 건반을 누르는 단순한 행위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오직 관객이 참여한 혹은 개입한 순간에만 소리태엽이미지장치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 장치가 작가의 것이 아니라 관객의 자리로 이동한 순간, 포착되지 않는 시끄러운 소리들과 수없이 변동하는 물의 이미지들이 드러날 수 있게 된다. ● 주 전시 공간에도 소리태엽이미지장치들이 설치되어 있다. 녹슨 철관들은 물이 가득 담긴 탕 주변에 불규칙적으로 서 있다. 하지만 이 철관들은 미처 준비하지 않은 관객의 움직임에 재빠르게 반응한다. 관객이 다가오면 새로운 소리를 구성해 낸다. 각각의 철관 안으로 지나가는 물소리, 샤워기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물의 입자들, 그리고 양쪽 벽에는 물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사라지는 영상과 녹슨 관이 서서히 사라지는 영상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소리와 물의 이미지들이 기술적 장치를 통해 새롭게 구성되면서 관객들이 애써 닫고 있었던 수많은 감각들이 솟아나도록 만들 것이다.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미세한 '달팽이관'이 다른 균형감을 갖도록 뒤흔들면서.
불혹을 넘긴 심준섭은 아직도 젊다. 왜냐하면 그는 소리태엽장치를 달고 있으므로. 그가 고안해낸 '기계들'은 '귀'가 소리를 일방적으로 '듣도록' 만들어 놓은 현실의 억압적 기능을 마비시켜버린다. '귀'가 더 이상 '귀'가 아니라는 것. 미술시장의 확장으로 감각적이고 상품화된 작업의 길로 들어선 수많은 젊은 작가들이 양산되고 있다. 현실에 대한 치열함과 결별하고 미술시장이 요구하는 패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작가들에게 심준섭의 소리태엽장치는 반성의 지점을 열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이 작가에게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소리와 물의 가변적 이미지가 갖고 있는 가능성들이 좀 더 확장된 사회적 언어와 만나서 이질적인 소리태엽장치들을 생성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신양희
Vol.20070602f | 심준섭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