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channel

김학량_정재호展   2007_0519 ▶ 2007_0601

김학량_나무가 추는 어느 춤_장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105×70.5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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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19_토요일_05:00pm

갤러리 도올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02_739_1405/6 www.gallerydoll.com

이번에 '채널'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김학량 정재호의 2인전(지필묵그림)에서, 두 작가는 우리 삶을 바라보는 틀로서 '기계'라는 주제어를 가설하고, 이 기계를 조직하고 작동시키는 내적 원리로서 '채널(channel)'이라는 개념을 도출하였다. 채널이라는 단어는 흔히 방송채널과 같은 뜻으로 쓰이나, 해협, 수로, 액체가 흐르는 관, 사상의 방향, 정보 흐름의 통로와 같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현대사회를 하나의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로 본다면 인간은 그 기계의 작은 부품과도 같은 모습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기계 속에서 작은 부품들은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이 단위들이 서로 관계하며 각기 다른 조직들을 이루며 이 조직들은 서로 유기적 관계 속에 하나의 작동하는 기계로서 결합한다. '채널'이라는 개념은 개별적으로는 무의미한 단위들이 서로 결합하는 관계망이며 유기체적 성격을 갖기 위한 필수 조건인 것이다. ● 김학량, 정재호의 작업은 기계로 이루어진 세상에 속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작가의 작업에서 기계는 세계에 대한 은유로서 다루어진다. 인간은 기계로서의 세계 속에서 배우의 역할을 하고 또한 기계로서의 삶을 산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계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계, 기계인 세계, 살아가는 기계, 살기 위한 기계, 기계처럼 경영되는 삶, 기계 같은 삶, 기계처럼 움직이는 삶. 과장된 듯도 하지만 여기서 우리의 살림살이는 기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흔한 식물이나 야생동물에게조차 그들의 자연적 범주를 생계 차원에서 짓누르는 기계적 프로그램이 아주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 김학량은 퇴역한 구축함('전북함')의 복잡한 내부를 답사하면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관과 배선, 계기, 장비, 도구들로 이루어진 풍경화를 그리고 있는데, 이는 하나의 '장치apparatus'로서 다른 장치들과 연계되어 있는 인간의 모습에 대한 은유로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 정재호는 현대사회의 강력한 스펙터클인 전쟁기계의 이미지들을 만화/문인화의 틀로서 새롭게 해석해낸 작업을 보여준다. 부채 속 전통회화의 공간을 불사르는 군용헬기, 핵폭발, 에어쇼의 광경 등을 수묵으로 표현함으로서 전쟁-기계의 이미지가 현대인에게 소비되는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일 것이다. ● 두 사람의 작업은 그동안 지필묵그림의 소재로는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기계의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화면에 수용함으로써 지필묵그림의 주제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매체의 특성을 어떻게 삶에 관여시킬지에 대한 실험의 의미도 크다고 할 것이다.

김학량_채널展_갤러리 도올_2007

길, 몸, 채널 ● 지난 설, 사흘을 속초 본가에서 놀고, 귀경하는 길에 우리 가족은 곧장 서울로 향하지 않고 남쪽으로 내빼, 그 저명한 장소, 정동진에서 하루 까먹으며 해 돋는 광경도 오랜만에 구경하자고 꾀를 내었다. 계획대로 하룻밤 잘 놀고 이튿날, 강릉 쪽으로 거슬러 오르는데 저기 어디쯤, 난데없이, 커~다란 군함 한 척이 상륙해 있었다. 놀다 가기로 하고 보니 그 옆에 새끼배 한 척도 같이 상륙해 있는데, 그 놈은 1997년에 침투하다 박살난 북한 잠수정이라고 했다. 커~다란 군함은 1997년엔가 언젠가 퇴역한 '전북함,' 3700톤짜리, 길이 150여 미터, 승선인원 이백 오십여 명. 크다. 매우 크다. 들어가 구경하니 과연 크고 우람하고 복잡하다. 복잡하기를 사람 몸보다 덜하잖다. 오묘하고 신비하고 장엄하고 화려하다.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갖은 기계 장치와 회로와 장비, 계기, 가구, 무기, 도구, 각종 설비들이 어쩌면 저닿하게도 정교할 수 있는지. 그 자체로 매혹적이고 관능적이다. ● 헌데 이 거대하고 정교한 육신은 어떤 존재인가. 무기. ... 무기. 특정 제도의 이데올로기를 실현하는 '장치apparatus.' 경찰 정복이 그렇듯이 그 자체로서 권위라든가 폭력적 위엄, 대화 대신 강요, 소통 말고 억압으로서 '스스로,' 진짜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 그가 누리는 자유 앞에서 나는, 진짜로, 이 '세계'에 셋방살이하거나 기생하는 존재임을 새삼 인정한다.

김학량_어느 세상으로 건너가는 문, 또는 독특한 대화술_장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105×70.5cm_2007

내가 홀딱 벗고 서서 망연히 바래다가 발목서부터 무릎을 거쳐 서서히 몸 가라앉히고 잠입하며 육신으로 교접하는 그 바다를, 저 거대한 제도적 장치―전북함은 다른 방식으로 체험한다. 그는 내 육신이 바다를 사는 꼴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다를 보고 겪고 산다. 나는 천변만화하는 생명의 동태와 생리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주는 철학적 상징으로서 바다를 겪고 그의 삶에 경의를 표하지만, 전북함에게 바다는 하나의 길이요 때로 늪이다. ● 그 근처 산 중턱에는 '통일전시관'이 있어서 거기, 침투하다 몰살된 간첩들의 유류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거기 가 구경하면 눈물이 절로 난다. 참아도 난다. 이를 꽉 깨물어도 눈물은 난다. 참다 참다 안돼서 밖으로 서둘러 나와 그 앞마당 끄트머리에 서서, 동해, 그 시퍼런 바다를 바래면 또 눈물이 난다. ... 그 산기슭에 널려있는 해당화 나무를 만나도 눈물이 난다. 낭만의 싸이트, 정동진, 거기 가면 눈물의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새삼.

김학량_바다 I: 어떤 채널_장지에 수묵, 아크릴채색_70.5×105cm_2007

군함을 비롯한 군사적 제도, 군사적 장치, 군사적 채널들에게는 독특한 시선과 귀, 감수성, 취향, 서정, 논리, 신념, 철학, 그리고 주파수가 있다. 그런 것이 그의 됨됨이를 이루고 나는 그의 됨됨이의 레이더에 포착되어 있다. 우리가 그를 사용한다는 것은 거의 농담이고, 실은 그가 우리를 사용한다. ● 어쨌든 나는 지난 설, 그 거의 맹목적인 낭만의 싸이트―정동진 근처, 어느 거대한 주검, 거대한 무덤, 거대한 제도 앞에서 그 육신에 대하여 맹목적인 매혹을 느끼면서, 한편, 그 육신이 작동하는 '인문주의적 섭리' 앞에서 한없이 서글프고 나약한 자화상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 내가 그들―전북함과 북한 잠수정―을 그리고 있는 까닭이 이렇다. 어쨌든 두 양반은 지금 죽었지만 더더욱 생기를 띠고서 내 앞에 근엄하게 살고 계신다(왜 저것이 우리 아버지보다 쎈가). 두 개의 죽음, 두 개의 삶. 죽음이자 삶인, 죽음살이이자 삶살이인 두 육신. 저 찬란한 죽음, 저 찬란한 삶. ● 앞으로 한동안 저 '무덤'에 갇혀 살 것 같다. 저 무덤은 나를 비웃고 꼬시고 쥐어박고 어루만지고 각성시키고 좌절시킬 것이다. 그러다 끝내, 어쩌면 고맙게도, 나를 무언가로부터 해방시켜줄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박진화 투로 말하면, "가자, 가 보자." ■ 김학량

정재호_논화마(論火魔)-기계(機械)_한지에 먹_39×69cm_2007

화마도(火魔圖) ● 어린시절 서울 변두리에 살던 나는 종종 전투기가 하늘을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지나가면 천둥소리 같은 것이 들렸는데 그때마다 창문이 부르르 떨었던 것이 기억난다 국군의 날이 되면 전투기가 편대를 이루어 날아가곤 했는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은빛으로 빛나던 그것들은 유년기의 소년에게는 어떤 넘볼 수 없는 저 끝의 세계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을 자극했다. ● 프라모델을 접하게 되면서 전투기 모델은 어느새 나의 가장 큰 욕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프라모델을 사기 위해 동전을 모았고 용돈을 벌기위해 어머니 앞에 앉아 문제집을 풀었다. 결국 전투기를 수집해서 에나멜로 칠하고 방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 지경까지 갔었는데 이 취미는 거의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정재호_논화마(論火魔)-합군기(合軍機)_한지에 먹_39×69cm_2007

대학 2학년때 걸프전이 발발했다. F-15 전투기가 이라크의 표적물을 정확히 타격하는 장면이 TV뉴스에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프라모델의 조립 설명서에 기입된 제원과 성능이 육신을 얻은 격이었고, 고백하건대 사건에 대한 정치적 입장과는 상관없이 매우 흥분되는 장면이었다. 음속의 2배가 넘는 속도, 한꺼번에 파괴할 수 있는 목표물의 수, 건물의 한 귀퉁이를 정확히 타격할 수 있는 폭격 시스템의 정교함. 그것은 차라리 미학적인 어떤 경지였고 거부할 수 없는 기계의 아름다움이었다.

정재호_논화마(論火魔)-화마(火魔)_한지에 먹_39×69cm_2007

전투기에 대한 흥미는 어느새 삶의 뒤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책상서랍을 정리하면서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도장용 에나멜을 쓰레기통에 버린 건 2년 전의 일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자주 들르던 인터넷 게시판에서 앞 다투어 전투기 사진들을 올리는 것을 보았다. 고해상도로 스캔된 이미지들을 찬찬히 보면서 나는 그것들의 아름다움에 다시한번 눈을 빼앗기면서 한편으로는 전쟁기계인 그것들이 가지는 아름다움이 매우 복잡한 성격의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프라모델로 만드는 대신 그림으로 그렸다.

정재호_논화마(論火魔)-논기류(論機類)_한지에 먹_39×69cm_2007

그려진 전투기 그림들은 지. 필. 묵으로 이루어진 매우 고전적인 기법이 사용되었다. 묵화(墨畵)라는 고전적 형식속에서 첨단의 전투기들은 마치 문인화의 소재들인 양 천연덕스럽게 널부러져 있다. 전혀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고전과 현대를 이어 붙인다는 쾌감에서 그랬거니와 불편한, 또는 어울리지 않는 어법이 전투기의 숨겨진 속내를 엉뚱한 모양으로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특별히 문인화적 화면을 구성하기도 했는데 각종의 전투기를 그리고 글을 쓰고 낙관을 덧붙이면서 어떤 서사를 만들고자 했다. 글의 내용은 한문고전의 문장형식을 빌었다. 종종 대구(對句)와 반어(反語)법으로 이루어진 고전(古典) 문장은 전투기를 서술함에 있어 그 껍질속에 감추어진 속내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유용한 틀을 제공해 준다. ■ 정재호

Vol.20070530f | 채널 channel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