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nk Polaroid

이가경_이정민_필승_주승재_홍남기展   2007_0522 ▶ 2007_0703

이가경_Frame No. 202 from Day Series 2_영상설치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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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22_화요일_05:30pm

키미아트 서울 종로구 평창동 479-2번지 Tel. 02_394_6411 www.kimiart.net

인간은 어떠한 현상을 겪게 될 때 실재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목격되는 순간 개인이 지닌 기억이나 상상력에 의해 변형되어 다른 존재로써 각인되어진다. 과거가 됨과 동시에 실재와는 다른 허상이 되는 것이다. 듣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주입된다는 점에서 객관성을 지닌다. 반면 온전히 자신의 사고로만 판단하는 본다는 그것이 지니는 주관성 덕분에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현상으로 소유된다. 다른 한편으로, 본다는 것은 자신으로부터의 정직한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기에 듣는 것이 가질 수 없는 왜곡 없는 순수성을 지닌다. 실제로 한 잔의 와인일지라도 음미하는 대상이 가진 내면의 기억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의 사건으로 남겨진다. 그 자체의 진실을 보기 위해서는 개인이 가진 상상력과 기억의 세계에서 벗어나 와인을 존재하게 한 넓은 포도밭, 그 안의 포도나무를 스치고 간 시원한 바람, 커다랗고 어두운 드럼통 안에서 향을 찾아가는 과정 등을 봐야 한다. 그러나 개인이 사유하게 되는 와인의 존재는 (자체의 진실과는 다를 수 있으나) 내면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과 기억이 혼합된 채 남겨 진다. 이번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다라는 의미는 대상을 마주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감각 너머에 있는 정직한 진실을 보는 것을 뜻한다. PINK라는 색상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은 본다라는 것이 가진 주관적인 면모를 가장 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다. Pink라는 색상은 따뜻함, 유아적, 섬세함 등의 외형적 의미말고도 유동적, 절제된 성적매력 등 독특한 감성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Polaroid가 가지는 순간성은 우리 안에 기록되어지는 기억을 뜻한다. 기억 속 과거와 사진 속 과거가 다른 이유는, 사진은 현상을 기록할 뿐이지만 인간의 감성은 그것을 마음으로 흡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에 따라 다르게 존재하게 되는 순수한 진실을 무엇보다도 잘 대변할 수 있고, 기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Pink Polaroid인 것이다. ● 이가경은 1인칭 서술자의 눈으로 일상을 이야기한다. 연필드로잉은 끊임없이 더해지고 지워지며 움직임을 갖는다. 여기에 일상에서 직접 추출하여 녹음되어진 사운드가 함께 어우러지며 마음을 동하게 하는 힘이 발휘된다. 의도된 지운 흔적들은 반복되는 일상의 이어짐을 더 극대화시킨다. 반복되는 일상이 담겨진 영상들 속에는 작가만 아는 작가 자신에 대한 연민이 스민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왠지 익숙하게 다가온다.

이정민_silence was only broken by the ticking of the clock_캔버스에 유채_2006

부드러운 바람이 불 것만 같은 한 때를 차갑고 고요한 색채로 묘사해낸 이정민의 작업 속에는 텅 빈 마음의 공허, 그 안의 결핍이 가져오는 평화로움이 존재한다. 바쁜 현대인들의 삶 속에는 외로움 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안정과 결핍의 감성이 혼합되어진 정지된 회화 너머에는 마음 속 폐허의 끝에서 불어오는 자유가 서려있다.

필승_2007

필승은 우연히 부도난 공장에서 버려진 수많은 핑크미니카를 발견한다. 작가는 효용가치를 상실한 미니카에게 새로운 목적을 부여함으로써 전혀 다른 미적 가치를 창조해낸다. 밀폐된 고립에 있던 미니카는 시선의 비껴감만으로도 현실감과 비현실감이 공존하는 매혹적인 가치를 구현한다. 세상은 보는 데로 존재한다 했던가. 마음먹기에 따라 한없이 즐거울 수도 있는 세상이 바로 이곳에 존재한다.

주승재_무제_디지털 프린트_2007

주승재는 우리에게 친근한 맥도날드 아저씨의 범죄현장을 희극적으로 재구성한다. 사진 속에서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는 그를 정작 사진 속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사진 밖에서 그 현장을 지켜보는 우리는 일탈이 주는 반전의 기쁨과 동시에 얽매여있던 관습의 해소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다. 바니시로 마무리를 한 작업은 유화 느낌을 주면서 작품 자체가 허구임을 강조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곳에서 더 현실적인 씁쓸함을 맛본다.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의 재현을 통해 현실을 확인하는 것은 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숙명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홍남기_Mr[1].hong_영상설치_2007

홍남기도 같은 맥락에서 작업이 이루어진다. 영상 작업 속에서 그는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아기의 몸을 하고서 음악에 맞춰 의미 없는 율동을 계속 한다. 권위주의 사회에는 이미 권위가 없다. 존경이 사라진 그 곳에는 그저 명령하는 자와 따르는 자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명령하는 자는 체면이라는 가면이 무겁다. 따르는 자 역시 자유가 그립다. 홍남기는 이러한 복합된 감정들을 유쾌라는 한 단어로 혼합하여 세상에 내놓는다. 한번 살다 가는 세상 무거운 걱정거리 다 던져두고 그저 즐거우면 그만인 것이다. ● 작가들은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은 자신이 지닌 내면의 기억에 따라 공감하거나 혹은 과장되게 느끼는 등 각기 다른 관점에서 그것을 받아들인다. 관객들은 작품 안에서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면 그만이다. 그것이 바로 진실에 대한 아이러니이며, Pink Polaroid 전의 목적이다.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약간의 즐거움과 잔잔한 희망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다. ■ 키미아트

Vol.20070527c | Pink Polaroid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