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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훈 개인展   2007_0525 ▶ 2007_0614 / 월요일 휴관

정기훈_marking_사진_80×8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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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25_금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안공간 풀 서울 종로구 구기동 56-13번지 Tel. 02_396_4805 www.altpool.org

근대적 규율의 경쾌한 용도변경 놀이 ● 정기훈의 작업은 진지하면서도 유쾌하다. 그의 작업은 두 가지 경로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사진 속 행위나 장면을 구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사진이나 드로잉으로 옮기는 것이다. 2006년「정수리」 연작은 장대한 하늘을 배경으로 사물의 정점을 기념비적인 시선으로 포착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도로교통 표지물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작가는 도시인들의 안전과 질서를 보장하는 공공 기물을 유쾌하면서도 희화적인 오락의 대상으로 삼는데, 그것도 매우 지속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한 행위를 반복한다. 한편 집요하면서도 엉뚱하기 그지없는 용도변경 놀이를 사진으로 찍어 기록으로 남기고, 그것을 다시 드로잉으로 옮겨 제3자의 동참을 유도하는 매뉴얼처럼 능청스럽게 제시한다.

정기훈_marking_사진_80×53cm_2007
정기훈_marking_사진_60×90cm_2007

정기훈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차량의 진입이나 주정차를 차단하는 러버콘(rubber cone)과 볼라드(bollard), 굴러가는 자동차를 제지하는 안전턱, 검문 검색을 위한 바리케이드, 교통 신호체계를 통제하는 컨트롤 박스,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경계석 등 도로교통 표지물들이다. 이것들을 필터링해낸 유형학적 시선은 노란색과 검정색으로 눈에 잘 띄게 제작된 공공 기물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의당 경계나 차단, 금지를 의미하는 이러한 기물들은 사진적 장치와 부분 채색의 드로잉으로 제도적 규율의 의미를 한층 강조했다. 이 선을 지키면 우리의 안전은 지켜지지만 선을 넘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혼란과 무질서, 법적 제재와 응징이 찾아온다. 정기훈은 이러한 장치들로 푸코가 근대 사회에 내재된 제도적 규율이라고 지적한 권위와 힘을 뒤틀고 재구성하는 제도비판적 작업을 수행한다. 작가의 작업실에는 러버콘들이 여러 개 수집되어 있다. 건설 현장이나 도로에서 차단이나 금지의 제한선을 구성하는 이 물건들을 정기훈은 흥미로운 오락물처럼 수집하여 애장한다. 공공 기물을 개인적인 유희나 창작의 소재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위반을 위반하는 행위인 셈인데, 흥미로운 것은 그 임의적인 용도변경 행위를(우리는 이것을 일반적으로 '절도'라고 부른다) 사진과 드로잉을 통해 반복적인 행위로 입증하면서 원래 위반의 의미가 아리송하게 희석되고 만다는 것이다.

정기훈_marking_종이에 아크릴채색_28×37cm_2007
정기훈_marking_종이에 아크릴채색_28×37cm_2007

제도적 규율에 맞서는 정기훈의 제스처는 엄중한 권위의 무게가 무색해질 만큼 가볍고 엉뚱하다. 드로잉 중 하나처럼 그의 작업은 그야말로 '무거운 공공기물에 풍선을 묶어 날려버리는 행위'인 것인데, 무거움을 전복하는 작가의 행위는 무해하고 애교스럽기 조차하여 보는 사람을 당황시킨다. 제도적 권력을 엎어보고 뒤집어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드는 그에게 그것은 일상적인 스트레칭처럼 매일 반복하는 몸에 밴 행위일 뿐이다. 그것을 사진으로 찍는 행위는 위반의 알리바이를 스스로 증명하는 물증이 된다. 현실의 사실적 기록이라는 사진의 기능을 반어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정기훈_marking_종이에 아크릴채색_28×37cm_2007
정기훈_marking_종이에 아크릴채색_28×37cm_2007

몇몇 평자들이 그의 작업에서 소극적 가벼움을 지적하지만, 정기훈은 무거움을 감히 가벼움으로 극복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기발한 착상은 용의주도한 개념적 완결성보다는 경쾌한 무의미함으로 단순히 반복됨으로써 제도적 중압감을 일상의 것으로 털어버리고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 옆에 두는 제스처로 마무리된다. 무거움에 맞서는 무거운 위반의 행위는 그야말로 범죄가 된다. 그의 작업에서 용의주도한 개념적 이데올로기의 전복을 기대하는 것은 제도적 권력 앞에서 주눅 들던 지난 세대의 강박관념이나 중압감은 아닐까. 무거움을 무목적적이고 소극적이지만 지속적인 유희의 대상으로 삼아 곁에 두는 것, 그래서 어이없어서 그것이 위반인지조차 불분명해지는 지점이 정기훈이 자신의 세대에 어울리는 방법으로 제도화된 권력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이다. 일단 그를 따라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가 드로잉으로 제안하는 매뉴얼을 따라 위반의 행위가 도시민 전체에게 반복적으로 파급된다면 권위와 규율, 제도와 권력은 경쾌한 놀이와 오락의 대상으로 재구성될 것이다. ■ 권영진

Vol.20070525d | 정기훈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