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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23_수요일_06: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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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만큼, 느낀 만큼 - 진채 화조화의 현대적 가능성 ● 전통에 대한 여러 회생 방안이 시도되고 있다. 기존처럼 서양미술의 전파에서 전통을 계승하고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오거나, 과학적인 서양문화에 대해서 정신적인 동양문화의 우월성을 피해의식적으로 강조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과 다르다. 최근의 경향은 전통을 대상화시켜서 자유롭게 다루면서 서양현대미술의 새로운 대안으로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소재나 주제, 사상뿐만 아니라 기법이나 재료의 재발견도 포함되고 있다. ● 가장 흥미를 끄는 경향은 전통의 소재화를 들 수 있다. 형식적으로 보면 동양화이나 내용적으로 보면 현대적인 작업이다. 이들은 현대미술의 팝이나 개념, 설치적인 경향을 띠면서 전통을 소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원화되고 있는 현대미술에서 하나의 대안적인 제시로서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상당히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진부한데, 전통 그 자체를 목적으로서 다루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전통을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단순화할 수 있다. 이는 일본에서 보존수복이나 중국에서 공필화 작업과 비슷하게, 우리 대학에서 전통적인 임모를 강조한 것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과거에 이 임모는 기법이나 재료의 숙련에 한정되었지만, 지금은 현대미술의 한 가능성으로서 제작되는 경향이 짙다. 다만 한국근현대미술에서 전통화의 임모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진부한 작업의 연속이란 선입감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진부하기에 너무나 새롭다고 하는 것은 역설적일까.
이들 작업은 대체적으로 전통적인 채색방법에서 시작하고 있다. 오늘날 볼 때 여기에는 뚜렷한 특징 하나를 들 수 있는데, 그것은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제작과정과 표현의 절제성이다. 전통 채색화는 어떤 장르보다 재료를 다루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석채를 가는 일에서 수십 번 색을 입히는 과정은 차라리 고통에 가깝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참을 수 없이 강렬하게 밀려오는 작가의 표현력을 가혹하게 억제하는 일 또한 되풀이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작업은 채색화이지만 그렇게 자극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너무나 담백하다. 그렇다고 밋밋하지 않다. 오래된 과정과 절제된 표현이 함축적으로 미묘하게 여운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작업이 오늘날 속도가 앞서고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강조되는 세상에서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세삼스럽지 않다. 명나라 말기 동기창이 중국 산수화의 흐름을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누면서, 사대부들은 채색화 위주의 북종화를 배울 만한 것이 못된다고 단정을 지었다. 그는 남종화를 선종에서 한번에 초월하여 곧바로 부처의 경지에 들어가는 돈오에 비유한 것과 달리, 북종화를 수련방식이 너무 금욕적이고 고통스러우며 긴 시간을 들여 수행을 쌓아야 비로소 보살이 되는 것에 비유하였다. 손쉽게 목적에 이르려고 한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여서, 오늘날 세상의 부정적인 태도가 새롭게 문제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런데 오늘날 속도의 시대에서 보다 손쉬운 작업으로 나갈 수 있음에도 이러한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에 무엇보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유경숙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작가이다.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중국에서 공필화를 배우고 나서 다시 우리 전통의 진채에 매료되었다. 조각과 진채 특히 석채 작업은 서로 이질적인 것 같지만 그녀에게서는 서로 연결점이 있는 듯하다. 조각을 통해 체득된 신체 노동이 채색의 석채 작업에 요구되는 오랜 시간의 인내와 절제에 바탕을 이루고 있다. 아니, 이러한 이력이 자신의 예술형식과 맞아떨어졌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이러한 작업은 생활화되어 내적 즐거움에 이르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전통 계승의 의무감처럼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작업임에도 그녀는 즐거워한다. ● 이번 작품전은 그녀에게 세 번째 개인전에 해당하지만, 사실상 첫 개인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개인전은 모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교 습득을 위한 임모작이 중심이었다. 작품에서 한결같이 나오는 기교의 완벽성은 흠잡을 데가 없지만, 아직 자기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무미건조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개인전은 그녀 자신의 새로운 소리가 울려 나온다. 그녀와 진채 작업이 생활 속에서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자신을 옭아매놓은 과거에서 벗어나 자신의 현재적 세계로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조심스러우면서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 유경숙의 작업세계는 "본 만큼, 느낀 만큼"으로 요약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평번한 말인 것 같지만 그녀의 삶과 예술을 함축한다. 그녀의 작업이 긴 시간을 갖고 천천히 작업하여 완성으로 나아가는 '점오(漸悟)'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말에는 목적성을 갖는다. 따라서 이번 전시 작품은 거대한 작업 로드맵의 한 단계로서 현재적 자신을 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본 만큼, 느낀 만큼"은 그녀의 현재적 실존을 함축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본 만큼, 느낀 만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번에 출품한 작품들은 주로 일상생활에서의 꽃을 소재로 삼았다. 모란, 민들레, 물옥잠화, 수국, 박꽃, 능수버들, 질경이 등 친숙한 소재들이다. 이것은 작가 특히 모든 서민들에게 삶에서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남겨준 꽃, 주변 꽃 가운데 눈길이 쏠리는 것들이다. 그녀는 심지어 이것을 손수 재배하면서 몸으로 느끼면서 "본" 것에 "느낀" 것을 일치시키려고 하였다. 그녀가 다루기 어려운 천연적인 안료와 염료를 선택하여 표현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장 자연적인 것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은 시각적으로 '본' 것이 바탕이 되고, 이 위에 진채를 통해 자신이 "느낀" 것을 푸는 것이다. 현실에서 보고 느낀 과정과 같이, 진채 작업 역시 오랜 시간을 요구한다. 본 만큼, 느낀 만큼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능성을 시도하였는데, 사실상 비단이나 종이에 석채를 수십 번 덧칠을 하면서 그것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그녀의 작업을 규정하고 있다. 그녀는 처음에 느낌에 적절한 색을 표현하기 위해 우연적인 효과에 매달렸다가, 나중에는 이것을 과학적으로 정량화하여 나갔다. 그러나 결국 최종적인 선택은 손의 느낌과 입의 맛으로 귀결되었다. 그녀는 진채의 배합과 느낌의 표현에 대해 손으로 만져 느끼고 입으로 맛 본 뒤 그 적절한 색감을 찾아낸 것이다. 옛날 『장자』의 윤편이 수레바퀴를 만들면서 손으로 만져 완성하였던 것을 연상시킨다. 지금까지 꽃을 재배하면서 보고 느낀 모든 과정이 응축된 몸이 작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 그녀의 작품은 정갈하다. 이는 꽃이 갖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작가 자신의 심성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 어디 세상사에서 복잡하지 않겠는가. 정갈하다는 것은 이면에 노력과 절제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북종화를 오랜 수련에 비유하였듯이, 그녀의 작업도 오랜 점오(漸悟)적인 성격을 갖는다. 현실에서 보고 느낀 것을 진채로 찾아가는 작업과정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억누르고 자연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에 따라 자신의 현실적인 감정도 하나하나 덜어내어 '무'로 돌아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본 만큼, 느낀 만큼"은 현실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녀와의 대화에서 "이 만큼만"이라고 자주 강조하는 것을 느꼈다. 이번 작품들은 더도 덜도 아닌 자신의 현존 모습 그대로라고 역설하는 것 같다. ● 그런데 "이 만큼만"이란 말은 다른 한편으로 앞으로도 오랜 시간을 갖고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점오'에서 나오는 시간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의 자신감이다. 이전과 비교해서 이번 작품전에서 보여주는 변화가 그녀의 미래 작품을 예상케 한다. 하나하나 점차적으로 완전한 것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은은하게, 서둘지도 않고 차근차근 옮겨가는 그녀의 작품에서 놀라운 힘을 느낀다. ■ 조송식
Vol.20070524b | 유경숙 진채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