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dentified Fine-art Object

진시우 개인展   2007_0518 ▶ 2007_0531

진시우_Inter-View_나무, 버블랩, 한국 들 잔디 씨, 혼합재료_가변크기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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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18_금요일_06: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가갤러리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89번지 Tel. 02_792_8736 www.gagallery.co.kr

임의적 착륙과 '차이'로의 이륙 ● 진시우의 작업을 읽는 것은 카오스와 프랙탈의 구조쯤을 갖춘 기묘한 지형도를 해독하는 듯한 코드브레이킹의 재미가 쏠쏠하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은 만큼 무릎을 치며 대뇌 전두 연합령(前頭聯合領)의 어느 구석에선가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일어남'의 순간을 맛보는 재미 말이다. 단토가 서둘러 예술의 종언을 선언한 이후에도 예술의 한 켠은 물질성의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고 철학과 개념으로 날아올랐고, 그 아찔한 비행(飛行)의 대열에서 진시우의 예술 또한 가치를 발현한다. ● 'Unidentified Fine-art Object(미확인 순수예술 오브제)'라는 범상치 않은 제목은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미술(Fine Art) 자체를 작업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얼마간은 미술에 대한 미술이라는 메타적 속성에 대한 단순한 기대치를 품게 되긴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우리는 그가 '잠자리의 눈'을 가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육안으로는 감지 할 수 없을 만큼의 빠른 속도로 날갯짓을 하며 공중에 떠 있는 잠자리의 눈은 겹눈과 홑눈, 그리고 겹눈을 구성하는 수 천 개의 낱눈이라는 중층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는 연필심으로 여리게 그려진 진시우의 드로잉「정찰기Reconnaissance Plane」는 눈이 부각된 잠자리의 형상을 담고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의 눈의 변용태이자, 작가가 투영하는 세계의 현상들이 결코 합리성의 단일한 창으로는 해석되지 않음을 암시한다.

진시우_A knot_천에 바느질_53×63.1cm_2007

잠자리의 눈. 이는 보르헤스의 끝없이 갈라지는 시간들의 미로, 혹은 불교에서 중중무진법계연기(重重無盡法界緣起)를 설하기 위해 비유되는 인타라망(因陀羅網) 그리고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 등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확장된 사유의 언술일지라도 그것이 예술 작품에서 정언명제처럼 반복될 때만큼 지루한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러한 사유의 증폭과 미적 대상물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진시우의 작가적 환타지가 매우 유연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임시 착륙Temporary Landing」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가 외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는 지극히 임의적(任意的)이다. 뿐만 아니라「Concept」,「Self-reference」와 같은 자전적 작업들은 작가가 스스로와 맺고 있는 관계조차도 임의적임을 드러내는 듯 하다. 사실 작가가 지닌 트라우마-그가 어린시절 입양되었으며, 그 시간들이 결국 그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되지 못한 채 잔인한 파국으로 치달았다는-의 무게를 아는 이들은 이 같은 암시와 작고 날카로운 핀으로 종이를 뚫어서 혹은 천에 바늘로 한 땀씩 떠내는 작업의 집요한 몇몇 과정들을 그것과 직결해서 해석하고픈 욕망을 느낄 것이다. 물론 작가의 물적 토대가 되는 현실적 삶의 조건은 때로는 빈약한 작품 해석을 보족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진시우의 경우, 이 같은 접근은 천공(天空)의 시간성까지 포섭하고 있는 다채로운 작업의 진폭을 사적(私的)인 기록물로 단순화시킬 위험이 있다. 일례로「아틀라스의 게임Atlas' Game」은 대형 세계 지도를 무작위로 구겨서 만든 지구본에 끈을 달아 만든 일종의 놀이기구다. 여기서 작가는 단지 '구겨짐'이라는 소박한 사건으로 단숨에 지구를 새로운 지형을 지닌 마술적 원더랜드로 변모시켜버린다.

진시우_Concept_종이에 연필_42×29.7cm_2007

사실 진시우의 어법이란 그가 가장 내밀한 자신의 내러티브를 주시하는 듯 보일 때조차도 양가적(兩價的)이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되었던 그의 비디오 작업「Anyway, I'm so sorry」는 짐짓 심각해 보이는 고백적 혈서(血書)의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오로지 눈치 빠른 관객들만이 의도된 편집의 조악함과 펜의 잉크를 짜내는 듯한 손의 움직임을 알아채고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된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작가가 자신의 외부 혹은 내부와 맺고 있는 관계항의 임의적 속성은 그가 타자의 언어를 구사하며 동일자, 보편자의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소격하는 기호 게임을 즐기고 있음으로 읽혀진다. ● 메시지가 아닌 '코드'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 위에서 진시우 식의 소심한 듯 신랄한 유머는 꽤나 효과적인 도주 장치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특히 그의 주변을 떠도는 작가-미술-미술판(Art Field)이라는 대표적 언표들 사이에 존재하는 가치의 전도, 부조리와 모순, 부재의 현전을 넌지시 꼬집는다.「저글링Juggling」은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에게 배달된 전시 리플렛을 R(Red), G(Green), B(Blue)의 색깔로 분류하고 세 가지 색의 종이죽을 만든 뒤, 각각 애완견을 위한 공, 부메랑, 개 껌으로 만든 작업이다. 결국 이 오브제들은 튀어 오르지 않는 공, 씹지 못하는 껌, 돌아오지 않는 부메랑으로 개조차도 가지고 놀기에는 역부족인 정체불명(Unidentified)의 무엇이 된다. ● 「저글링Juggling」이 여전히 과부하인 예술의 아우라를 파괴하고 스스로를 해체하는 자조적인 농담이라면,「Inter-view」와「Conversation」은 예술의 소통불가능성에 대한 지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의한 소통의 희망이라는 양가성(兩價性)을 대화라는 역설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또다시 우리의 허파를 자극한다. 「Inter-view」는 백남준의 인터뷰에서 추출한 삼단논법의 세 문장, 즉 '사회가 썩으면 예술이 잘 된다, 한국사회는 썩었다, 그러므로 한국예술은 잘 된다'를 작품 포장에 사용하는 버블랩(Bubble Wrap) 안에 글자 모양대로 한국 들 잔디의 씨앗을 채워 넣어 만든 작업이다. 한편「Conversation」은 그의 정신적 멘토이자 실제로 한때는 그의 스승이었던 박이소와 김홍석, 두 작가에 대한 오마주(Homage)의 형식을 취한다. '대화'는 박이소의「북두팔성」에 헌정하는 비디오 작업인「I'm missing the one star」와 김홍석의 가짜 똥을 조합해 쓰여진 문장「Jesus, I'm restless」의 대구(對句)인「Jesus, he needs rest」로 구성된다. 결국 그가 꿈꾸는 대화란 설명과 이해, 주장과 설득의 차원에 있지 않으며 고도의 정신적 담금질을 지속해온 자들에게나 주어지는 촌철살인의 선문답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이것은 태생적으로 내성적인 작가가 고집스레 쥐고 있을 수밖에 없는 유일한 소통수단인 예술가들의 화법이다.

진시우_Untitled (From China)_컬러인화_68.6×100cm_2007

여담이지만, 그의 경제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았을 재료의 금욕적 선택조차도 그의 작업이 지닌 다층적인 태도와 맞물리며 빛을 발하는데「I'm missing the one star」의 별은 그가 잠시 스튜디오로 사용했던 갤러리의 조명등이며, 김홍석의 독백을 위로하는 진시우의「Jesus, he needs rest」는 칼로 조심스레 잘라낸 버터(!)일 뿐이다(그에게 일용할 식사를 제공하는 중국음식점의 그릇들로 조합된 또 다른 작업「Starship」을 보라). ● 그가 만들어낸 허허로운 우주선에 동승하여 그물처럼 엮어진 '차이'의 미로를 탐색하는 유쾌한 여정을 계속하는 동안 불현듯 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처연함은「A Knot」에 대한 작가노트가 설명을 대신해줄 지도 모르겠다. ● '혼자 노는 아이가 꿈꾸는 완전한, 혹은 안전한 결속력의 이미지다. 이런 정도의 조인트라면 낙하산 없이 10,000피트의 상공에서 뛰어내려도 아름다운 유영(遊泳)을 펼치며 땅을 밟을 수 있을 거란 상상을 한다.' ● 어쩌면 그는 이 거친 세속의 미술판을 견뎌내기에는 지나치게 섬세한 영혼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그를 이곳에 단단히 잡아맬 매듭(Knot)이 될지, 혹은 매듭의 부재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그게 무엇이든 좀처럼 말랑해지지 않는 관습의 허를 찌르는 역설의 환타지로 가득한 그의 작업을 계속 탐닉하게 해주길 바랄 뿐이다. ■ 장지이

Vol.20070522c | 진시우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