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n · Scape

김애숙 회화展   2007_0516 ▶ 2007_0522

김애숙_Skin · Scape_캔버스에 유채_116.7×116.7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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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16_수요일_05:00pm

모로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8-16번지 남도빌딩 1층 Tel. 02_739_1666 www.morogallery.com

'정신은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말한 마그리트는 우리의 눈을 어떻게 하면 '타자'화 할 수 있는가를 탐구한 셈이다. 그는, 확실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혼란케 함으로써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정신의 습관에 이의를 제기하고, 어떠한 형상이 재현될 때 그 사물과 동일시하는 관습적 태도를 지양하고자 한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적 사물인식을 곧잘 부조리하게 비틀어주는 결과로 보여준다.

김애숙_Skin · Scape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07

우리가 체험하는 이 현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이미 한 몸으로 짜여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보는 눈'은 대상을 넘어서 느낄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을 통한 읽기를 놓치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시각의 단편성에 갇힌다. ● 그러나 일상의 익숙한 오브제가 그들의 상징적이고 유용한 기능으로부터 멀리 떼어져 일상의 결합에서 벗어나게 되면 인위적이며 관념적인 체계를 포기하고 정체 모를 이상한 존재―스스로 부조리해짐으로 타자가 되는―로 등장한다. 이것이 우리의 인식 주체를 비판하는 그의 전략인 것이다. ●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가 파괴되는 상태를 '고립'이라 하는데 이는 우리의 감각을 혼란시켜 합리적 인식이나 논리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게 한다. 예기치 못한 경이와 충격은 신비감을 자아내고 교육받은 정신의 시스템을 흔들어 놓는다.

김애숙_Skin · Scape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07

현실적으로 거리가 먼 오브제들 간의 우연한 결합(만남), 재배치, 변형 또는 위치변화, 고립, 합성, 이중이미지의 방식으로 만나게 되면 합리적 질서는 무너지고 사물과 이미지간에 부정적 관계가 형성되므로 서로 상이한 성격을 강화, 교란시키게 된다. 이로써 파생되는 부조리와 불합리한 이미지요소들은 불쾌감을 유발시키고 소통의 부재를 경험하게 한다. 그것은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사유에는 한계가 있어 조화의 해체는 개념의 무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설과 모순의 개념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비합리적 부조화 세계의 '숭고'를 느끼며 점차 쾌감을 낳게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부조리를 통한 타자의 탄생은 세상과의 험난한 화해를 꿈꾸는 것이다.

김애숙_Skin · Scape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07

이미지는 인간(존재)의 죽음(부재)으로부터 탄생되었고, 불멸을 꿈꾸며 하나의 생명력으로 우리 곁에 존재해 왔다. 죽음은 곧 '이미지재현'을 이루며 정신적 인지와 시각적인지(거울단계)를 근원으로 이미지는 생성되었다. 진정한 생명은 (허구적) 이미지 속에 있었다.

김애숙_Skin · Scape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07

skin scape는 과일 피부에 대한 이미지 고찰이다. ● 피부(skin)는 생명체의 몸과 바깥의 환경이 접하는 바로 그 지점의 접점이다. 고정된 의식도 아니고 움직이는 육체도 아닌 표면의 경계에 존재한다. 삶/죽음, 내적/외적, 의식/무의식, 현실/상상, 과거/미래가 서로 다르지 않듯 피부는 하나의 화합물로 통합될 수 있음을 말한다.

김애숙_Skin · Scape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07

사과 한 알 ● 이 이미지는 정치하게 재현하려면 할수록 재현을 넘어서 어느덧 다른 것이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사과는 피부의 확장을 통하여 스스로의 이미지로 증식하면서 전혀 다른 것이 되어간다. 본래 재현된 대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이질성들이 창출하는 탈주의 공간을 동경하면서. ● 낯설음으로 다가오는 것은 여기와 저기, 정확, 부정확, 내부, 외부의 어디에도 안주하지 않는 양극성 도는 중간자적 성격을 띤 것으로 이질적인 시선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 한 가지 오브제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슴겨졌던 측면의 오브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오브제의 그늘 속에 가려져 잇지만 누군가가 발견해 주길 바라는 그런 욕망의 주름진 그늘일 것이다.

김애숙_Skin · Scape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07

과일 껍질 - 풍경 ● 우리 몸의 감각기관이 얇고 예민한 실핏줄처럼 그물망 쳐져 잇는 피부 공간을 더듬어 가는 것은 내 스스로 느끼는 억압된 감정, 반자연적인 것에 대한 회의, 심리적 불안, 미래의 혼란, 애증, 덧없음의 흔적이지만 이제 그것은 나의 범주를 떠난다. ● 예술작품은 더 이상 창조자의 미적주체물이 아니다. ● 그것은 현실의 법칙에서 벗어나 부조리와 소외된 형태로 남겨져 이 사회에 편안하게 동화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존재하며 최종적 이해나 궁극적해석이란 있을 수 없다. ■ 김애숙

Vol.20070520d | 김애숙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