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김진혜 갤러리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516_수요일_05:00pm
김진혜 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9번지 2,3층 Tel. 02_725_6751 www.kimjinhyegallery.com
슬프도록 아름다운 방희영의 '꽃' ● 예전 동양화가들 사이에는 '입의'라고 불리 우는 소중한 덕목이 있었다. 화가가 작품 제작을 하기에 앞서 몸을 정갈히 한 후 마음을 가다듬고 머리를 맑게 하여 순백의 상태에서 작품에 임하는 것을 일컫는다. 무엇을 위하여 작품을 제작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무슨 대상을 어찌 보이게 제작할 것인지 등에 관하여 미리 확고한 자신의 의지와 뜻을 수립하는 일종의 기획단계라고 보면 되겠다. 이러한 '입의'의 자세는 전통적인 장지 기법처럼 수많은 공정과 오랜 시간을 거쳐야 하는 작업일수록 더욱 중요한 가치로 부각된다. 종이를 떠내고 약초나 과실 따위를 이용해 천연 안료를 추출하는 과정 틈틈이 몇 번이나 '입의'에 들어간다. 접착성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안료를 종이에 안정적으로 올리기 위해 아교라는 접착제를 수차례 덧칠하고, 채취한 안료를 수십, 수백 번 씩 덧칠하는 과정은 예술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경이로운 노동이다. ● 아무래도 이러한 장인정신으로서의 예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모양이다. 작가 방희영이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제작 방법이 바로 서양의 전통기법이라 할 수 있는 템페라이다. 종이 대신 판넬이나 캔버스를 사용하고 모제로써 아교 대신 계란 노른자를 사용한다는 점 정도를 제외한다면 신기하게도 묘하게 일치하는 구석이 있다. ● 마천을 아교를 이용해 판넬에 붙인 후 그 위에 대리석 같은 면을 만들기 위해 천연 젯소를 만들어 칠하고 갈아내고를 반복한다. 물감을 사용할 때 마다 그날 필요한 양 만큼을 직접 제조해 사용한다. 중첩된 색채의 은은한 발색을 위해 마르고 칠하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양질의 안료가 아니면 발색과 착색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안료의 선택과 사용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디움의 사용에 있어 원하는 광택의 정도나 발색의 효과 등을 고려해 다양한 첨가물을 혼합하기도 한다. 짤막하게 정리만 해 보아도 가슴이 답답할 만큼 복잡한 공정이다.
그렇다면 방희영은 왜 굳이 이렇게 까다롭고 힘든 제작 과정을 고집하는 것인가. 그것은 작품제작에 임하는 작가의 양심과 결부되는 문제라 본다. 분명히 훨씬 더 좋은 발색과 오래도록 변치 않는 재료들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단순히 작가의 편의를 위해 아무 제품이나 구입해 사용한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얼굴 화끈거리도록 부끄러운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는 철저한 기법 적 고증과 더불어 자칫 고리타분해 질 수 있는 중세의 표현방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끊임없이 본인만의 방향을 모색한다. 새로운 모제를 유추해 내고 용량을 바꿔가며 시행해 보고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도록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연구한다. 어찌 보면 방희영의 이러한 '사서하는 고행'은 예술가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 일반적으로 꽃그림이 표피적 심미주의를 탐닉하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예술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방희영의 꽃은 오히려 형태의 아름다움보다 작가의 독특한 감성으로 풀어낸 내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일례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배경은 사생을 통한 표현이 아니라 꽃의 이미지만을 차용해 작가의 심상 속에서 새롭게 재구성한 후 캔버스에 옮긴 경우라 볼 수 있겠다. '등꽃'이라든지 '양귀비'라는 식의 꽃의 생물학적 분류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꽃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그것이 시들면 사라지는 것과는 달리 그 향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듯이 작가는 꽃의 겉모습을 표현하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생명의 향기를 그리려고 노력했다. ● 이것은 방희영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 남들이 보기엔 멋지고 화려해 보이는 예술가의 삶이 실제로는 고독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연민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그녀의 페르소나인 것이다. 그런 연유로 작가는 더더욱 자신의 표피가 아닌 향기를 남기기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금번 전시에서 새롭게 시도되는 전통 기법에 좀 더 근접한 금박 작업들은 그녀의 작업에 또 다른 가능성과 방향을 제시해 준다. 2층의 화려한 꽃향기와는 대조적으로 3층에서 만나게 될 중세의 고풍스러운 정취는 관람객에게 풍요로운 마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 작가는, 길게는 몇 달씩이나 소요되는 힘겹고 긴 작업과정들이 오히려 마음을 닦을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주며, 작가 자신에게 세상을 조금 더 수월하게 견딜 수 있는 힘을 준다며 환하게 웃는다. ● 방희영의 '꽃'은, 처음 취지나 과정 보다는 단순히 결과물로 제시되는 이미지에만 열광하는 현대인들에게 '느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다. 고단한 작품과정을 알게 되었다 해서 작가에게 미안해 할 필요는 없겠다. 그녀의 작품을 보며 환하게 웃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그녀가 작업을 하는 이유이므로. ■ 윤상훈
Vol.20070519f | 방희영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