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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16_수요일_06:00pm
갤러리 스케이프 서울 종로구 가회동 72-1번지 Tel. 02_747_4675 www.skape.co.kr
흩날리는 휘장 뒤에 존재하는 것 ● 채우승의 작품을 굳이 장르로 구분하자면 조각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항상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전통적인 조각의 영역에서 부수적인 부분으로 간주되는 조각의 대좌 또는 인물을 감싸고 있던 옷자락일 뿐이다. 그런 불완전한 빈자리를 주목하는 빗겨가기의 시선에 잘 어울리게도 대개 그의 작업은 조각은 조각이되 배경의 벽의 존재가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운 부조(浮彫)의 형태를 취한다. 그의 작업은 벽을 중심으로 이쪽과 저쪽, 저 너머로 사라져 버린 것과 이쪽에 남아 있는 것, 그 사이를 불온하게 넘나든다. 작가의 시선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지칭하고 있고 또는 보고 있다고 믿는 것의 허상을 드러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은 갖지 못한 제3의 눈이라도 가진 것일까? 그의 작업은 늘 예기치 못한 순간의 포착, 또는 기대했던 것의 소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있으되 없는 것, 없으되 분명 존재하는 것을 생각하고 떠올리게 만든다.
불어오는 맞바람을 헤치고 멋지게 내려앉는 니케 여신의 옷자락, 대좌 아래로 폭포처럼 펼쳐지는 부처님의 가사(袈裟). 동서양을 막론하고 조각의 장르가 일정한 양식으로 발전할 때에는 늘 주인공을 감싸는 옷주름의 패턴이 시대와 양식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왔던 것을 기억한다. 펄럭이는 옷자락은 여신의 아름다운 몸을 묘사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고, 일정하게 정돈된 패턴으로 떨어지는 부처님의 가사는 현세를 초월한 부처님의 감미로운 신체를 묘사하기 위한 필연적인 요소였다. 여기서 채우승은 부처님이 사라진 빈 대좌, 벽을 뚫고 날아가 버린 여신의 옷자락 말미만을 보여준다. 분명 중요한 존재를 위하여 의미심장하고 장대한 주름으로 준비된 대좌 위에는 덩그러니 빈 공간만 남아 있고, 여신은 벽이 미닫이 문이라도 되는 듯 긴 옷자락의 끝만을 남기면서 스르륵 저켠으로 사라져 버린다. 채우승의 조각은 고정된 실체이되 진행되는 움직임의 과정, 벽의 이쪽과 저쪽, 또는 한 순간의 삼차원과 사차원, 사라진 것과 남은 것을 오가는 유동적인 이행의 통로에 존재한다. 사라져버린 성스러움과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관능성이 빈 공간 혹은 벽 저켠의 세계를 통해서 제시된다. 분명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조각가인 채우승이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 조각적 형태지만 그것을 보는 우리의 상념은 또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떠돌게 된다. 이것이 채우승 조각의 마력인 셈인데, 성(聖)스러움과 성(性)스러움, 고귀한 것과 불손한 것, 장난스러움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그의 백색 옷자락들은 그래서 거듭하여 목격할수록 유동하는 의미의 진동이 더욱 커질 뿐이다.
채우승의 백색 옷자락들은 고전기 그리스 여신의 풍요로운 드레이퍼리, 불상조각이 크게 성행하던 중국 남북조 시대의 패턴화된 가사자락 사이의 어디쯤엔가를 떠돈다.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애매하게 가로 지르는 채우승의 조각들은 이탈리아 유학보다 유학 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의 생경함이 더 컸다는 작가의 회고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조각가인 채우승은 순결한 백색 대리석 또는 견고한 화강석 등 조각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백색의 조각적 실체로 작업을 하다. 그러나 그가 그 실체로 지시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의 허상,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의 빈 껍질, 증발해 버린 고귀한 존재의 빈 흔적일 뿐이다. 우리는 이곳도 저곳도 아닌 곳, 동양도 서양도 아닌 곳, 과거도 현재도 아닌 곳에서 부유하고 있다.
허나 흥미로운 것은 여러 가지 트릭으로 우리는 속이는 마술사의 마술시범에도 어김없이 멋진 휘장이나 손수건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천의 흩날림 뒤로 우리는 몸이 절단되는 아름다운 미녀, 계란이 비둘기가 되어 날아갈 순간을 기대한다. 그리고 마술사가 그 천을 멋지게 한번 흔들어주면 다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 것을 믿고 있다. 채우승의 작업은 많은 상념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것은 그가 합성수지로 떠내는 단단한 조각적 덩어리를 통해서 시발된다. 연일 정교하고 한편으로 상투화된 주름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합성수지로 떠내 깔끔하게 마감 처리하는 그의 손길은 성스럽고 고귀한 것을 묘사하는 조각가의 양식적 수법을 계승하는 동시에, 우리가 천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뒤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못해 마음 졸이며 바라보는 마술쇼를 준비하는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유혹적인 손짓과도 유사하다. ■ 권영진
Vol.20070519d | 채우승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