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7_0511_금요일_03:00pm~05:00pm
주최_사무소_몽인아트센터 주관_사무소 후원_아트선재센터
아트선재센터 B1 아트홀 서울 종로구 소격동 144-2번지 Tel. 02_739_7098
포스트모던 미술을 총정리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강연회가 될 것입니다. 미술 투자가 활발한 요즘 작품가격 이면에 숨어있는 예술가의 작업에 대한 순수한 열정, 의지 그리고 작업 과정을 진지하게 살펴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 작가의 긴 미술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존 암리더는 어떤 하나의 스타일을 다른 것에 비해 편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첨가와 나열을 한다. (...) 이러한 작업들은 존 암리더에게 여러 다른 방식들, 비평적 분석들, 연속적인 예술 운동들을 넘어서서, 작품들 사이에는 모순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들이 꼭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도록 허용하였다."(베로닉 바슈타) ● 이것은 등가의 원칙에 따라 작품들은 서로 모순적이지 않고 서로 교환되거나 소통할 수 있으며, 고급 예술/저급 예술의 구분도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작품의 순수성, 신성성, 독자성, 완전성이라는 모더니즘 개념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이로부터 작품에 대한 거리두기, 아이러니한 냉소적 태도가 나온다. 이러한 태도는 작가들을 일상생활이나 태도, 작품 속에서 항상 드러나게 되어 있으며 실제로 한 작가의 성격을 결정하는 좋은 척도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술이나 학문이 무슨 대단한 것인 양 존경하고 숭배하는 사람 (순진한 심각파)이 있는가 하면, 그 중요도에서 일상의 평범한 것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이 생각하고 그 신성성을 가지고 냉소적인 농담이나 해학으로 만들어버리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같은 작가도 있는 것과 같다. 그 역시 예술에 보편적인 하나의 진실이 없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예술의 중심은 공허하며, 그 빈 중심을 뭔가 새로운 가정이나 시뮬레이션으로 채우고 다시 그것을 냉소적으로 비웃고 허무는 작업을 계속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처럼 재현의 진실과 허구를 가지고 하는 작업도 이와 관련해서 동일한 논리 아래서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존 암리더는 한편으로는 고전적이고 모던적인 예술지상주의적 관점과 태도를 채택하고 차용하면서 자신이 정통 예술가임을 주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의 위치를 돌려세우거나 파괴, 조롱함으로써 자신이 순진하게 속고 있지 않으며, 항상 새로운 다른 것을 추구하고 있는 진정한 예술가라고 주장한다. 사실 누구든 이 원칙을 염두에 두고 약간의 기교만 부린다면 당장 우리시대 예술의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존 암리더는 스펙트럼이 넓고 복합적인 작가이다. 그는 1969년에 제네바에서 플럭서스 Fluxus 운동에 관심을 둔 예술가들과 에까르Ecart(멀어짐, 거리두기) 그룹을 창설하였다. 따라서 그의 1970년대는 플럭서스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활동으로 특징된다. 특히 네오다다Neo-Dada적이고 유희적인 퍼포먼스들과 설치물들, 해프닝들 속에는 당시의 서구 사회를 휩쓸던 비순응주의적이고 반형식주의적인 철학이 스며들어 있다. ● 1980년대부터 그는 추상미술 쪽으로 경도되어, 국제적인 추상미술 경향인 "네오지오Neo-Geo"의 선두에 자리하였다. 존 암리더의 추상은 고답적이고 무거운 상징적 의미로부터 떨어져 나와 참신하고 쇄신된 힘을 가지고 있다. 사선으로 전개된 세 개의 붉은 점들은 그의 대표적인 추상회화인 바, 우리는 여기서 그가 점들의 작가로 잘 알려진 프란시스 피카비아와 추상의 근원을 언급하고 있음을 느낀다. 점들은 어떤 개념이나 대상을 지적하지 않는다. 점들은, 담론을 이끌어 가기는 하지만, 제로의 기호들이기 때문이다. 수평 또는 사선으로 정렬된 그의 점들은 간결함과 공허함의 효과를 강조한다. 이러한 간결한 추상 회화 외에도 존 암리더의 회화는 정반대의 효과를 겨냥하는, 그가 많은 다른 화가들로부터 빌려온 '얼룩' 시리즈들을 제공한다. 공들이고 섬세한 외양을 부르는 유약과 옻칠 처리는 우연과 불안정, 부조화를 부르는 물감의 흘러내림, 붓기, 얼룩, 기포들에 의해 정지되고 뒤집힌다. 그를 통해 존 암리더는 어떤 '실패'를 즐기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회화는 경쾌한 가운데 하기 쉬운 어떤 것으로 제공된다. 다양한 회화적 실천을 통해 일견 무질서할 정도로 복합적인 그의 회화 속에서 우리는 아이러니, 초연함, 느긋함, 회화적 즐김, 지성, 섬세함, 회화적 조건들의 통제를 읽을 수 있다. 어쩌면 우리시대 회화사 전체를 요약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식적인 것을 통해 예술작품을 평범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인용을 통한 거리두기는 그의「가구-조각Furniture sculpture」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가장 흔하게는 회화와 결합되거나, 회화에 대한 직접적인 암시이다. 그리고 단순히 대상들을 자리바꿈으로써, 존 암리더는 플럭서스적인 태도를 추상적인 형태들의 목록과 교차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개방은 그에게 추상의 도그마티즘, 그리고 또 유행적인 현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사실, 「가구-조각」은 대비와 균형, 자기 것으로 취하기와 비판하기, 유희와 형식적인 가능성들의 무한한 총체를 허락한다. 존 암리더는 또한 필연적인 것과 상대적인 것, 스타일과 비스타일, 참여와 자아비판 사이에서 절묘한 피하기 놀이를 즐기고 있다. 우리는 명백히, 그가 잠시 한 순간 동화되었던, 80년대 말의 '네오지오' 운동을 생각할 수 있다. 어려운 점은 이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데 있었다. 존 암리더는 추상에 대한 이 새로운 열망에 대해 자신의 위치를 잡는 것이었다. 바로 그만의 독특한 'Wall painting'이 그것이다. ● 조금 더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는 마르셀 뒤샹의 '우연'에 맡기는 그 여유로움을 재발견한다. 그의「흘러내리기 회화Pour painting」시리즈,「가구-조각」 등, 그리고 또 그는 라즐로 모홀리나기와 앤디 워홀을 본 따,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가장 좋은 방법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가구들」, 색채들, 그리고 회화의 모티프들의 선택이 타인들에 의해 수행된 것이 꽤 있다. 그래서 항상 세상의 관찰자로 존재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존 암리더를 예술가라기보다는 그 예술가를 지휘하여 세상의 것들을 예술 작품으로 연출시키는 연출가로서 이해하기를 원한다.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그의 삶인 존 암리더의 예술 여정을 함께 추적해 보자. ■ 사무소
Vol.20070512f | 존 암리더 John M. Armleder 특별 강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