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 투영된 인간군상

황남규 조각展   2007_0509 ▶ 2007_0619

황남규_내 마음의 풍경-강아지풀_동, 브론즈_13×20×67cm_2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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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09_수요일_05:30pm

관훈갤러리 / 2007_0509 ▶ 2007_0515 갤러리 오딘 / 2007_0516 ▶ 2007_0619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www.kwanhoongallery.com

갤러리 오딘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 404-7번지 Tel. 031_559_1515 www.galleryodin.net

로댕은 그의「젊은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유언」에서 "부지런한 노동자처럼 일하시오!"라고 했고, 헨리 무어는 조각가 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육체노동을 감내하는 성실성을 꼽았다. 생활 속의 노동과 노동 속의 생활. 이러한 삶의 조건 속에서 조각가들의 보편적 외양은 외모에 대한 후천적 무신경에서 비롯된, 먼지 묻은 신발과 허름한 작업복 차림새로 나타나게 된다. ● 그러나 근자에 들어오면서 영상 디지털 작업의 보편화와 유행처럼 되어 버린 공장 주문제작으로 조각가에 대한 종래의 인상은 어느 정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스케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제작 시스템. 깔끔해진 용모와 반질반질하고 세련된 매너. 현대미술 담론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식과 달변. 보다 윤택해진 경제적 조건. 이러한 것들이 다수의 조각가들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작금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거칠고 투박한 외양과 언동의 조각가를 만날 때 우리는 더욱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황남규는 이제까지의 고전적 조각가 상에 가장 잘 들어맞는 조각가일 것이다. 그야말로 로댕과 무어의 주문에 부응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황남규_내 마음의 풍경-구름_동, 브론즈_54×26×55.5cm_2006~7
황남규_내 마음의 풍경-나를 짖다_동, 브론즈_20×20×180cm_2006~7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노동집약적이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려 3000개 이상의 인물상을 만들었다. 종일해야 고작 이십 여 개를 만들 수 있는 데 3000개를 만들려면 휴일도 없이 하루 여덟 시간씩, 꼬박 백일을 일해야 된다는 계산이다. 5~6T의 동판으로부터 인물을 오려내어 토치램프로 가열한 다음, 그것을 모루위에 올려놓고 망치로 두들겨 가며 원하는 형태와 포즈를 만들어 낸다. 그가 일하는 모습은 숙달된 대장장이의 모습이다. 가죽 장갑을 끼고 일하지만 집게를 잡고 있는 왼손과 망치를 든 오른손에는 모두 물집이 잡혀 있다. ● 이렇게 단조기법으로 제작된 조그만 인물상들의 군집은 원기둥, 사각 기둥, 화분, 구름, 풀꽃, 나무 등의 다양한 일상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들의 두드러진 형식적 특성을 보자면, 덩어리를 강조함으로써 야기되는 꽉 차고 묵직한 형태, 강인하고도 권위적인 매스를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신에 곡선을 강조하고, 속을 비워내며, 외계를 향해 열려있으며, 외부 공간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풍만한 볼륨을 선택하고 있다. 인물이 지닌 날카롭고도 단단한 매스와 인물과 인물 사이의 부드러운 공간이 절묘하게 배합되면서 바삭바삭한 프랙탈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과거 모더니즘 조각의 이상이었던 견고한 남성적 형태, 유클리드 기하학에 기반 한 불변의 구조와는 그 조형적 가치의 축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황남규_내 마음의 풍경-민들레_동, 브론즈, 오석_13×20×65cm_2006~7
황남규_내 마음의 풍경-빛이 되다_동, 오석_24×24×106cm_2006~7

그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에 인물상을 투사함으로써 인간과 사물이 중첩된 이중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의 인물 군상들이 빚어내는 표정은 일견 트리나 포올러스의『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카툰 동화를 연상하게 한다. 부질없는 욕망과 세속적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정상으로 기어오르는 인간. 포올러스는 이러한 인간군상을 애벌레에 비유한다. 무수한 애벌레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둥-바벨탑. 죄악과 허영의 도시 소돔. 황남규가 그녀의 작품을 읽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으나 인간과 문명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그녀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다만 그가 인식하고 있는 인간과 세계를 텍스트와 카툰 대신에 자기의 언어인 조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그녀와 다를 뿐이다.

황남규_내 마음의 풍경-자소상_동, 알루미늄_32×32×52cm_2006~7
황남규_내 마음의 풍경-화분_ 브론즈, 오석_24×24×93cm_2006~7

비록 황남규가 기본적으로 인간과 세계를 죄악과 욕망으로 뒤엉킨, 풀 수 없는 실타래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는 이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삶에 대한 긍정을 포기하려하지 않는다. 한 그루의「나무」. 어느 오후 자신의 집「베란다에서」 발견한 화분. 들판에 홀로 핀「민들레ㅍ와 「강아지 풀」. 창공을 떠가는 한 조각「구름」. 그는 이러한 일상적 사물들이 지닌 소박한 아름다움을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그의 얼굴 표정과 그의 작업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 그의 생활과 작업태도를 지켜보면서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되돌아보게 된다. ■ 오상일

Vol.20070509e | 황남규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