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엮는 책

지희승 북아트展   2007_0509 ▶ 2007_0515

지희승_걷다..서다._2005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bookstory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7_0512_토요일_04: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_한국공예문화진흥원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제1전시장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2-2번지 Tel. 02_733_9040 kcpf.or.kr

천천히 걸어가기..찬찬히 바라보기 ● 기호소비사회로 불리는 현대는 먹고 마시는 생활필수품 대신 더 많은 지적생산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등으로 설명되는 네트워크와 복제의 가능성에 힘입어 문화산업, 지식기반산업이라 부르는 컨텐츠 산업은 자신들의 가치를 증식하려 한다. 이에 따라 의사소통의 한 축이며 정보의 그릇이었던 책은 미래 문화에 형식적 경험의 미덕을 물려줄 수 없는 퇴화의 위기감을 안고 있다. 어쩌면 지위의 일정 부분 이미 디지털 매체 환경에 빼앗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디지털 복제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가 뿌리를 두고 있는 책의 전통적인 정보 복제와 전파라는 문화적 가치와 전망은 여전히 살아있는 매체로서 보다 원초적인 가능성을 열어가기 위해 과거가 아닌 미래지향의 역설적 지위를 찾아 선회하고 있다. ● 따지고 보면 책은 복제 매체이기 전에 예술품이었다. 유럽의 수도원에서 수도사가 베끼는 방식으로 만들었던 책은 그림과 장식과 제본 등 형식과 색상, 활자 등에서 완벽한 수준을 가져 여러 사람들에게 수집되는 소중한 대접을 받았다. 인쇄가 대량화와 속도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평민들의 지적 권리와 행복을 위해 책은 아우라를 포기하고 철저하게 커뮤니케이션의 물리적 도구로서 기존의 권위를 포기했다. 좀더 많은 것을 쉽게 공유하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해온 책의 역할은 이제 디지털 매체가 대신하게 되었고 급기야 책은 냉대 받는 거북한 자리를 걱정하게 된 것이다. ● 대량복제로 가상의 세계와 그에 대한 열광이 간과하고 있는, 혹은 제거하고 있는 책의 감성적 생명력은 전통적인 물성에 대해 애정과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손끝에서 다시 발견되고 구현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도래할 수도 있는 부재의 세계, 가상의 세계에서 얻을 수 없는 자유를 책에서 찾도록 해야 한다. 아름다운 책, 만질 수 있는 책, 그것을 사유하고 공유할 수 있는 매체로 만들어진 책의 새로운 면모에 적극적으로 방점을 찍는 행위는 디지털 매체가 줄 수 없는 기운을 담을 뿐 아니라 주체로서의 저자인식에도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지희승_illusion Ⅱ_235×230cm_2007

작가 지희승은 웹 디자이너다. 그는 화가다. 그는 책을 만든다. 그가 웹 디자인을 시작한 이유는 어쩌면 자신이 몸담아 사는 세상에 풍요를 가져다줄 복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겠지만 거기서 동시에 산란하게 부서지는 무수한 매트릭스의 조직과 그 그림자를 보았을지 모른다. 긴 사막이거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모자 속에서 나온 비둘기는 허공 속으로 날아가야 하는데 디지털 공간의 마법은 모든 것을 만질 수 없게 만든다. 작가는 손으로 만지고 만들어서 이 허상을 되돌리려 한다. 아니 가상의 공간에 대한 고해를 치르려 한다. 책의 형식은 그러한 예식에 가장 잘 어울린다. 선언도 운동도 세상을 바꾸는 데는 부족하지만, 오래 말하고 보여주고 다시 말을 거는 작가의 작업은 사람을 설득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단서를 보여주려 한다. 그것을 조용히 말하려 한다. 현대 사회는 다양하다. 과거와 달리 유연하고 예측불가능하고 변화하는 특징을 보이면서 그 다양성은 대체로 미래를 지향한다. 실제 다양성은 복잡한 사회의 체험을 안고 가는 현대인의 군상을 암시하고 있다. 속도에 대한 다른 버전의 표현일지 모른다. 다양하지만 깊이가 없는 것, 즉흥적인 것들이 묵인되고 있다. 지희승의 작업은 다양하다. 하지만 깊이를 버리지 않는다. 즉흥적인 것은 거기 보이지 않는다. 그가 무엇을 책임져할 이유도 없으나 무언가 시대가 저지르는 오류나 미학적 범행을 대속의 자세로 바라보고 있다.

지희승_아름다운 우리 옛 책_185×235cm_2004
지희승_빛깔담기_170×165cm_2004
지희승_天·地·人_90×90cm_2004

그는 전통의 냄새를 맡는다. 최근 북 아트 작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대부분은 가죽이나 서양식, 또는 문구류의 형식에 눈과 마음이 머문다. 지희승은 이 현상의 의미를 경계하며 동시에 잘 이해하고 있다. 책이 책으로 남으려면, 그러기 위해 형식과 내용과 내러티브의 구조를 바꾸려면 응당 알아야 하는 스스로의 기원과 선행적 경험 필요하다는 것을. 이것이 지금 당장 무엇에 영향을 줄 것인가를 물을 이유가 없다. 지희승은 서둘러 말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표현하면서 빚어질 정서와 감정의 남발을 걱정한다. 그것은 이미 작가의 심중에 들어있는 것이다. 악기 연주자가 어린 시절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기법을 익히듯, 연후에 영혼을 울리는 곡을 들려줄 수 있듯, 작가의 작품은 서서히 우리의 옛 향기와 기술로부터 시작한다. 책가를 만들고 거기 꽂힐 책의 형태와 장정, 제본 등을 정성껏 만들어 놓고 심히 그들의 집합을 내면의 공력으로 점화시킨다. 전통적 형식미를 수수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작가만의 새로운 느낌과 비례를 더해 '새로운 옛것'들을 다양하게 지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손과 심중의 조화가 한 발짝 생각의 앞에 놓이면서 이미지와 미학적 해석을 담은 이야기가 책으로 엮어지는 것이다. 걷다...서다. That time That place, illusion 등은 서서히 현(絃) 위에 실어진 음처럼 사람들에게 기억과 잔상, 추억과 감동을 전해준다.

지희승_가까이 두고 벗하다._340×145cm_2007
지희승_冊衣 책이 입는 옷 - 우리 옛 책의 표지문양_245×145cm_2007

작가는 작은 것들로 커다란 전시 공간을 채우려 한다. 이것은 규모에 대한 도전이며 동시에 새로운 화해와 담화의 시도다. 전시 공간은 어쩌면 그동안 너무 벽을 따라 2차원의 권위에 집착해왔다. 책은, 더구나 지희승의 작은 책들은 미술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작가를 비롯한 사람들의 화법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시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가 날마다 다루고 있는 디지털 공간과 화랑의 실제 공간이 구분하는 전혀 다른 세상의 중간에 서서 작가는 어느 쪽이 자신을 더 당기고 있는지 어느 쪽이 어떤 이야기를 걸어오는지, 그리고 이것들은 작가 자신을 통해서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하려 시도한다. ● 지희승의 작품을 보는 이들은 아마 이들의 통합된 이유에 대해 아주 쉽게 이해하려 들거나 아니면 대단히 어렵고 힘겹게, 때론 고통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기술과 역사라는 씨줄과 날줄, 두개의 얽힌 구조가 사소하며 표피적인 관찰에 대해 은유적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성찰이며 어디부터 소통이고 전망인지를 답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 송성재

Vol.20070509c | 지희승 북아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