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지 않은 그림

김현철 동양화展   2007_0509 ▶ 2007_0610

김현철_사인암 2(舍人巖)_한지에 수묵담채_41×6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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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09_수요일_06:00pm

갤러리 벨벳 기획초대전

갤러리 벨벳 서울 종로구 팔판동 39번지 Tel. 02_736_7023 www.velvet.or.kr

그림 시장이 과열되고 있다. 작고 작가 누구의 그림이 얼마에 팔렸고, 젊은 작가 누구의 그림이 솔드 아웃됐다는 등, 예전에는 주택복권에서나 겨우 듣던 '억' 소리가 심심치 않다. 경기가 좋다보니 호가 높은 원로들의 작업량은 부쩍 늘었고, 할 일 없던 극장 간판장이들마저 위작 일에 동원된다.

김현철_관란정(觀瀾亭)_비단에 진채_36×45cm_2005
김현철_청량산(淸?山)_한지에 수묵담채_32×90cm_2005
김현철_두타청옥무릉계(頭陀靑玉武陵溪)_한지에 수묵담채_38×91cm_2005

어느새 그림을 현찰로 보는 것만 같은 세태에 뜬금없는 의문도 든다. 조수들의 손을 통해 가내 수공업처럼 집단 제조되는 일부 원로들의 명품 그림들과, 그들의 눈을 피해 지하에서 위조되는 짝퉁 그림들과의 간극은 뭔가? 영국과 미국이 주도해온 앵글로 색슨식 자본주의 하에서는, 미술 작품도 그저 돈으로 샀다가 되파는 단순한 상품으로서, 상표등록권자와의 계약 체결 여하에 따라 주문자 생산 방식의 정품과, 무허가 불법복제품으로 단순 분류되는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을 거라 믿는다. ● 대량 생산과 대량 납품이라는 영미식 미술산업 시스템에 부응하는, 대형화되고 개념화되고 브랜드화 된 주류 작품들 틈에서, 여전히 작가의 정념이 실려야 하고 손때가 묻어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착오적 작품에 대한 갈증이 있을 것이다. 하여 갤러리 벨벳에서는, 고작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몇 번이고 가파른 산을 오르고 몇 년을 허비하기도 하는, 김천일, 권기윤, 김현철 세 작가에 대해 일찍이 경의를 표한 바 있다(진경, 그 느림의 미학, 2005. 05.21-06.10, 갤러리 벨벳). ● 또한 일방향으로 치닫는 서구 현대미술에 대한 반향으로, 우리 고유의 산수적 전통에 압축된 미학과 정신세계를 선보이기 위해, 영국의 고도 윈체스터 미술대학에서 김천일, 문봉선, 김범석의 작품들로 전시와 심포지움을 진행한 바도 있다(The sansoo, 2005.10.19-10.26, Winchester school of art).

김현철_범섬_한지에 수묵진채_30×59cm_2005
김현철_불국서색(佛國瑞色)_비단에 수묵진채_53×157cm_2006

따라서 어언 7년여 만에 서울에서 개최되는 이번 김현철 '개인전'은, 작가 개인사적으로도 의미가 깊겠으나 본 갤러리가 오래도록 풀어가야 할 과제의 한 지점으로서 논의하고 싶다. 곧 발간될 무크지를 통해 철학자 홍가이, 비평가 심상용, 갤러리 벨벳 디렉터 정형탁 등과 지속적으로 토의하게 될, 한국 미술의 정체성 문제와 영미식 미술 유통에 대한 대안 찾기의 일환으로 말이다.

김현철_두타산(頭陀山)_한지에 수묵담채_38×59cm_2007
김현철_옥순봉2(玉筍峯)_한지에 수묵담채_27×60cm_2007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김현철의 방식이 옳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이 옳은 길인가를 되묻고 싶을 뿐이다. ● 그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그리지 않는 그림'으로 정했고, 소재는 산과 구름이며, 기법적으로는 진경산수로 화폭을 채운다. 엄격한 임모와 사생으로 단련된 진경 기법으로 산들이 그려지나, 실제로는 여백으로 남겨지는 구름을 그리고자 했으며, 그를 통해 관자의 상상력이 투영되어 온전한 그림으로 완성되는 방식을 택했다.

김현철_도담삼봉1(島潭三峯)_한지에 수묵담채_47×89cm_2007

주목할 점은 그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이, 오랜 수련 끝에 얻은 진경의 기법이 아니라 여백이라는 점이다. 김현철의 이전 전시가 성취의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전시는 버림의 과정이 될 것이요, 이번 전시를 통해 확보된 여백에 앞으로 진경 외적인 것이 채워질 수도 있다는 전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길을 더 계속 가야 하는지, 아니면 모든 걸 버리고 백지에서 다시 시작해야할지의 갈림길에 서서... ● 지필묵을 사용하되 소재적으로는 베트맨과 나이키 로고를 블랙홀처럼 흡수하고, 기법적으로는 한지 이겨 붙이기와 먹물 뿌리기로 무한확장이 되어버린 한국화의 현 시점에서, 그의 개인적인 행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것이 과연 '개인전'의 차원일까? ● 그에게 물어보라. 대체 언제까지 산수화를 그릴 건가... ■ 갤러리 벨벳

Vol.20070509a | 김현철 동양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