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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04_금요일_05:00pm
전시기획_고원석
관람시간 / 11:00am~06:00pm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www.brainfactory.org
존재와 부재간의 가상적 영역 ● 심사라는 것이 갖는 물리적 환경에서 이배경의 포트폴리오는 한눈에 시선을 끌어 당기는 화려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다루고 있는 시공간에 관한 관심이나 작품의 형식적인 구성, 주제와 매체간의 유기적이면서도 절제된 조화 등에서 견고하게 구축된 자기 구조와 작가적 역량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독일에서 필름과 비디오 및 미디어 아트를 전공한 그는 귀국 후 2006년 갤러리 정미소와 노암 갤러리에서의 개인전과 몇 개의 단체전을 가졌고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10년 가까운 독일에서의 체류기간 동안 작업보다 수학에 더 충실했다는 이배경의 본격적인 국내 활동은 2003년 발표한 두 개의 작품으로부터 파악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 이배경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상호작용의 과정을 거쳐 확보되는 관객의 존재성 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관객의 존재적 상황을 감지, 기계적 과정을 거쳐 조정되고 변형된 시공간적 상황을 관객의 눈 앞에 투사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2003년작인 '파도(Videochapel)'는 관객의 개입으로 인한 시공간의 변형을 비교적 강한 시각적 효과와 소리로 구성한 작품이었고, 같은 해 발표한 '셀프타임(Selftime)'은 관객의 존재론적 특성을 데이터로 환산, 시간적 변형값으로 치환하여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이었다. 2004년작 '섬(Island)'에서는 관객의 모습과 관객이 존재하지 않는 야외 거리의 풍경을 각각 촬영하여 관객의 물리적 형상 속에 일정한 수학적 과정을 거쳐 치환된 외부 풍경을 레이어 형태로 변형된 이미지로 투사하였다. 2006년작 '빅뱅이 있기 전(Before the big bang)'에서는 3차원의 반투명 지도를 투사시켜 놓았는데, 그 지도는 전시장 밖 공간으로부터 전송되는 이미지와 소리에 실시간 반응하여 투명도와 형태의 변이가 이루어진다. 2006년에 발표한 '그 시간(That time)'에서는 별도의 외부 공간과 전시장 내부의 촛불의 움직임을 연결, 촛불이 흔들리거나 움직이는 반응을 외부 공간의 풍경 위에 적용하여 풍경이 변이되는 모습을 투사함으로써, 이미지와 물질성 간의 이중적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브레인 팩토리에서 보여줄 이배경의 작품은 기존의 작품들에 비해 더 단순해 보이는 인터페이스를 적용하고 있다. 전시장 내에는 거리와 창문이 조합된 어떤 공간이 투사되고 있다. 관객의 개입이 있기 전 그 공간에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건물, 유리창 등이 존재하고 있다. 관객이 작품 앞으로 다가가면 그 풍경 속에 관객이 삽입되어 보여지는 데, 관객의 모습은 그 풍경의 중심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여러 모습들 중 일부가 되어 어디엔가 희미하게 존재한다. 나라는 모습은 거울에 비친 정면이 아니라 창문넘어 어렴풋이 보이는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인 것이다. 관객의 물리적 구조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소리인데 관객의 움직임이나 물리적 형태의 특성을 파악하여 데이터값을 산출, 효과음으로 나오는 심장박동소리에 적용함으로써 관객의 존재에 따른 소리를 생성한다. ● 전시의 기획자로서 그의 작품에 대해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내러티브의 부재'이다. 이는 최근의 미디어아트 작가들 중에서도 이배경이 가진 차별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내러티브가 부재하는 이유는 그가 설정한 시공간의 개념 - 작가가 시공간 연속체(Time-space continuum)라고 명명한 - 때문이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상호 결합된 실재로 인식하는데, 시간은 선형적 구조를 가지지 않고 공간은 물리적 존재성을 상실하고 있다. 시간의 선후구조가 부재하므로 내러티브가 발생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다. ● 그의 작품을 읽을 때 작가가 파악하고 있는 시공간의 연속체적 개념이 작가가 확보하고 있는 정신적 영역의 핵심이라는 사실과 그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 장치해 놓은 구조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존재와 부재의 물질적 근거가 없다. 다만 내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존재와 부재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구조일 뿐이다. 시간은 나의 존재성으로 존재하고 공간은 나의 존재론적 물질성으로 성립된다. ● 나를 둘러싼 시공간의 총체적 이해의 차원을 넘어 존재 그 자체의 물질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작품의 제요소를 컨트롤한다. 변형된 구조는 작가가 파악하고 있는 시공간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새로 구축한 구조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그의 작품은 시공간의 연속체적 개념의 핵심을 구현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요소가 있는 모든 것들을 제거했다. 전시장 공간 내부에서 관객이 서있는 바로 그 장소와 벽면에 투사된 비물질적 이미지의 존재론적 물질성을 조합하여 성립된 구조는 평론가 정용도가 지적한 '왜곡(Distortion)'의 과정을 통한 '가상성(Virtuality)'의 획득이라는 미디어 아트의 미학적 쟁점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브레인 팩토리가 갖는 공간적 속성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개념적 함정에 너무 함몰되어 작품의 정서적 측면이 너무 묵과되는 것에 제동을 걸 필요성을 느낀다. 작가의 이러한 개념적 표현은 지극히 개인적인 정서적 체험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러한 정서의 체험이 작가적 상상력의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면 이번 전시에서 그가 보여준 작품에서 '나'라는 존재론적 의미가 시공간적 의미로 확대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번뇌하는 중생의 모습에도 전우주(全宇宙)의 모습이 담겨있다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가르침을 상기하기도 했다. ● 이번 전시를 통해서 나는 이배경이 수년간 구축해온 그의 작품세계를 요약, 정리하고 있으며, 앞으로 짚어 나갈 지점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제 앞으로 그가 제시할 것들은 기존의 형식적 면모와는 차별성을 갖는 그 무엇일 거라는 생각이다. 다만 이제까지 그가 견지했던 개념적 영역과 형식적 요소간의 유기적인 연결과 존재적 물질성의 유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미디어의 속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여전히 유효성을 획득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고원석
Vol.20070507f | 이배경 영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