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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7_0504_금요일_06:00pm
갤러리 터치아트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235번지 예술마을 헤이리 ㈜터치아트 Tel. 031_949_9437 www.gallerytouchart.com
고통과 결합된 쾌락, 공포와 교차하는 자유 ● 전시 부제가『PARTY』라서 그런지, 이미지들은 이전보다 훨씬 화려해지고 다채로워졌다. 언뜻 보면 몇 명인지, 어떤 자세인지 잘 파악이 안 되는 뒤엉킨 군상들에 복잡한 무늬가 가세한다. 촬영된 모델에 스킨을 덧입힌 것이 아니라, 몸 자체가 3D로 만들어지고 굴곡된 형상을 따라 상품의 표피 이미지를 붙이는 과정을 통해 무늬와 인간이 보다 일체화 되었다. 인간의 머리를 떼어내고, 명품의 아이콘보다는 그 피부만을 빌려온 김준의 작품은 이항대립의 상황-가령 주체와 대상, 몸과 마음, 유기체와 무기물, 전체와 부분 등-을 벗어나 또 다른 차원으로 수렴되고 있다. 배경과 연속되는 무늬를 가진 인간이나, 지퍼가 달린 몸, 하나의 몸에 여러 손이 뻗어 나온 작품, 스케일이 다른 사지의 조합 등은 이미지의 인공성과 유희성을 강조하면서 인간과 접속되는 낯선 타자들을 드러낸다. 크리스찬 디오르, 프라다, 심지어는 딸의 배냇저고리 무늬들로 뒤덮인 몸체는 자신의 동일성identity을 교란시킨다.
문신처럼 새겨진 무늬는 차이로 직조되는 그물망으로, 실재의 환영simulacrum이다. 김준의 작품에서 몸체의 동일성은 껍데기 같은 타자성alterity에 의존한다. 실재는 타자의 변이형들에 의해 잠식되고 있다. 가상현실이 현실을 대체하는 고화질 미디어의 시대에서 몸이라는 실재는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신체의 곡선을 따라 변화하는 무늬의 계열은 가능한 한 빈 곳을 적게 하고 형태를 많게 하면서 몸이라는 광활한 공간을 채워나간다. 들뢰즈는「주름」에서 물질은 구조와 형태들을 가질 뿐만 아니라, 텍스처들을 갖는다고 말한다. 표피의 주름이 투사된 김준의 작품은, 들뢰즈가 바로크 시대의 초상을 분석한대로, 단순히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신체에 작용하는 정신적 힘의 강렬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 힘은 신체의 방향을 틀고 그 내부의 정형을 떠낸다. 사물의 표피를 둘러쓴 몸은 구조화되거나 기능화된 실체성을 잃고, 예기치 않은 곳에서 절단되거나 연결된다.
단일한 몸보다 더욱 생기 있으며 다수성으로 가득 차 있는 몸체들은 들뢰즈의 '기관 없는 몸'이라는 개념처럼, 인간의 몸을 탈자연화시키고, 그것을 다른 것들과 직접 관계 지으려는 시도이다. 김준의 작품에서 몸은 부분과 전체, 표면과 심층 간의 관계는 복합적인 표면으로 해체된다. 그것은 정신적인 내부나 비밀스러운 내부가 없는 몸을 환기시킨다. 모든 것들이 육체라는 표면으로 떠올라, 몸의 표면은 텍스트처럼 읽혀진다. 기호로 가득한 문명인의 몸은 '문화적으로 직조되는 자연의 산물'(E. Grosz)이다. 육체적인 각인 양식을 통해 몸은 만연된 권력의 요청에 적응하게 된다. 권력이 작동하는 장인 몸은 사회의 훈육체계라는 그물코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정교한 컴퓨터 작업과 야성적인 감각성이 결합된 김준의 작품은 순응성만이 아니라 전복성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 속의 주체, 그 거대한 서사적 질서가 의심되고 해체되는 시대에, 어느 날 문득 몸이라는 공간적 범주는 시대의 첨예한 화두가 되었다. 김준의 작품에서의 몸은 본질이나 유용성이 아니라, 가상성이나 유희성과 관련된다. 『PARTY』라는 전시부제는 집단적인 금기 위반과 전복의 의미가 강한 축제와 비견된다. 상품의 표피를 둘러쓴 그들은 원시인이나 야만인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되어 보인다. 머리 없이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간 몸체들이 자율적이고 확고하게 정의된 인간, 그리고 유용한 이성적 수단에 종속된 몸통을 벗어나 맘껏 욕망을 구가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들과 그들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것은 오직 욕망일 따름이다. 이러한 욕망은 오로지 '자기 증식과 자기 확장이라는 목적'(들뢰즈)만을 가진다. 욕망은 언제나 새로운 결합과 연결을 실험하면서 사물을 생산한다. 여기에서의 생산은 지속과 축적이 아니라, 순간적인 폭발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소모와 더욱 가까운 것이다.
탈주하는 선들의 운동으로 휘감겨있는 그들은 실체가 아니라 과정이다. 여러 몸체가 접합되어 놀고 있는 그것들은 이성의 한계를 넘나드는 도착적인 감각성으로 충만하다. 김준의『PARTY』는 디오니소스적인 통음난무의 비전을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는 착란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잉의 절정에는 황홀과 더불어 죽음의 그림자가 내비친다. 죽음의 예감은 극단적인 감성적 삶을 추동하게 한다. 문신이 고통과 쾌락의 결합이듯이 김준의 작품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컴퓨터상에서 정교한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김준의 작품은 방만한 자유가 아니라, 극도의 통제와 연관되어 있다. 성의 실험을 통해 사물의 정상적인 문법을 전복시키려 했던 사드(Sade) 후작이 그러했듯이,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삶을 즐길 수 있다. 통제되지 못한 것은 두려움과 공포를 가져온다. 사드나 김준같은 부류에게 있어 통제의 수단은 바로 예술이다. ■ 이선영
Vol.20070504f | 김준 개인展